이른바 ‘이정현 녹취록’을 폭로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2년 전 길환영 당시 KBS 사장으로부터 사표 제출 요구를 받으면서 ‘대통령의 뜻이라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김 전 국장은 당시 보도국장 사퇴 과정에 대해 “청와대가 보도개입을 넘어 신분개입까지 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은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권기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징계무효확인소송 항소심 변론준비기일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김 전 국장은 이번에 항소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2014년 5월9일 상황을 다시 상세히 전했다. 그는 “당일 예정된 14시 기자회견을 35분 남기고 길 전 사장이 날 호출했다”며 “기자회견하지 말라고 하면서 ‘청와대 지시가 내려왔다, 사표 내라 3개월 동안 있으라’, ‘대통령 뜻이니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여기서 합리적 의심을 할 필요가 있다”며 “전날 세월호 유가족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 하도록 결정하고 임원회의에서 추인까지 한 사안을 기자회견 35분을 남기고 사표를 제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왜 그런지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날 바로 해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박준우 당시 정무수석이 박영선 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KBS에 전화를 넣은 결과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직하게 됐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며 “길환영 사장도 실토했고, 박준우 수석까지 얘기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정현 녹취록 대화내용을 들어 김 전 국장은 “그해 4월21일 대화 내용을 보면, 이 수석은 내게 ‘며칠 후 해경을 비판하라’고 했다”며 “그런데 9일 뒤 8개 아이템으로 비판하니까 그 때 다시 전화와서는 ‘대통령이 봤다’며 봐달라고 했다. 앞뒤가 안맞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실제로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차례 걸쳐 이 수석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6일 오후 KBS를 상대로한 징계무효소송 항소심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에 들어가기전 전에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이후 2014년 5월5일 9시뉴스에 다시 해경 비판보도가 올라오니 이를 알게 된 이정현 수석이 내게 얘기해봤자 안먹힐 것 같으니 길환영 사장에 전화한 것”이라며 “길 사장은 휴일임에도 보도본부장실에 와서 긴급회의를 소집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등을 모아놓고 해경을 비판 하지 말라고 요구해 보도 내용이 엉뚱하게 나갔다”고 전했다.

김 전 국장은 “이번 재판이 민사재판이지만, 하나의 판례가 될 수 있다”며 “방송의 이익과 밀접히 관련돼 있고, KBS의 이익, 공적 이익을 위해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의 소송대리인인 김선수 변호사도 항소이유에 대해 “재판부가 김시곤 전 국장의 주장 중 허위라고 지적한 부분이 불분명하다”며 “청와대 인사개입을 허위로 본 것 같은데, 길환영 전 사장이 (기자협회 총회등에서) 말을 바꾼 과정과 박준우 수석의 발언, 이정현 수석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구체적인 요구를 했던 점을 비춰보면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김시곤 국장이 사익적 목적으로 사퇴압박을 면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벌였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김 변호사는 “폭로하지 않고 침묵했으면 오히려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징계에 이를 것을 각오하고) 방송의 공정보도를 위한 공익적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 내부의 인사가 공정보도를 위해 권력이나 사장의 부당한 지시가 있을 때 굴종하지 않고 문제제기 하는 것이 징계사유로 인정된다면 스스로 공정보도 노력이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며, 원심 판단 잘못이기 때문에 항소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측 소송대리인으로 나온 김현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를 부적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6일 오후 KBS를 상대로한 징계무효소송 항소심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에 들어가기전 전에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의 발언이 사익적이냐 공익적이냐이다”라며 “(김 전 국장의 폭로회견이) 길환영 사장의 부당한 압력에 항거한 것인지가 쟁점이었는데, 최근에 다시 제출한 녹취록 내용을 보면, 오히려 이정현 수석 쪽하고 치밀한 관계에서 협조하는 부분도 나온다. 과연 원고가 길환영의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원심(1심) 재판부의 판단은 보도개입이 사실이라 해도 김 전 국장의 (2년 전 기자회견) 발언은 부적절했고, 징계사유가 정당하다는 것”이라며 “이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이며, 징계사유가 정당하며 양형 역시 정당하니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덧붙였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서 '이정현 녹취록이 이 수석과 치밀한 관계에서 협조하는 전화였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통화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화 내용이 중요하다”며 “안부 전화 받는 것이라면 못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 무슨 요구를 했는지, 그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김 전 국장은 법정에 출두하기 전 서울고법 1층 법정 출입구에서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녹취록 파문에 대해 “단순한 이해관계 내지는 정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대안을 찾고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현 수석의 전화를 보도압력이나 보도통제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어제 우리 후배들이 성명서 썼는데 제가 기자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지 않았느냐”며 “생각은 비슷하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보도개입이 언제부터 이뤄졌느냐는 질의에 대해 김 전 국장은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개입은) 인수위 시절부터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보도국장직 사퇴까지 불러온 이 사건의 성격에 대해 “청와대 보도개입을 넘어 인사개입, 신분개입까지 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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