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은 삼성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을 둘러싸고 향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특검은 “삼성과 대통령 간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었다”며 1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 근거를 전면 반박했고, 삼성 측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계를 두고 어떻게 정경유착을 논하냐”며 완전 무죄를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 변호인단은 12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1회 공판에서 “1심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유착이라는 특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증거재판주의 원칙이 밀려났다”며 “(삼성은)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고 삼성이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삼성은 다른 기업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이미 유착관계가 형성된 이후 재단 출연 요구를 받았기 때문에 재단 지원을 경영권 승계 작업의 대가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이 2014년 9월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단독으로 만나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삼성 현안을 염두에 둔 채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을 요구했다고 판단했다. 재단 출연 요구를 받은 2015년 10월은 이후 시점으로, 상호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형성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특검은 재단 출연이 공익적 지원임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내세운 공익적 명분 만으로 피고인들이 공익적으로 재단에 출연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정치 발전을 명분으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데 실제 자금 지원 성격을 그 명분으로 판단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특검은 근거로 “(대통령이) 안가에서 이뤄진 은밀한 단독면담에서 이재용에게 지원을 요구했다”면서 “공익적 목적이라면 교육문화수석실에서 주도했어야지 대기업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경제주석실이 주도했다. 이를 잘 아는 피고인들이 직무와 별도의 기부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은) 이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얼마를 출연해야 하는지는 관심없었다”면서 “다른 대기업도 재단에 출연했다는 사정은 양형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그룹 재단출연금 204억 원은 특검이 특정한 뇌물규모 433억 원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거액이다. 1심 재판부가 출연금을 뇌물에서 배제하면서 유죄로 인정된 뇌물 규모는 89여 억 원으로, 횡령 금액은 298여 억 원에서 80여 억 원으로 줄었다. 2심 재판에서 재단 출연금이 뇌물로 인정된다면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될 여지가 줄어든다.

안종범 수첩 깎아내려 이재용 살리기

삼성 변호인단의 주요 공략 대상은 ‘부정청탁’의 존재 여부다. 부정 청탁은 재단이라는 ‘제3자’를 통해 박근혜·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제3자 뇌물공여죄 구성요건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현안을 개별적 현안과 포괄적 현안으로 구분,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에 한해서만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증거에 의해 확인할 수 없는, 팩트가 아닌 가공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포괄적 승계 작업은 김상조 공정운영위원장이 공부한 내용이 바탕”이라며 “삼성은 그걸 수용한 적도 없고 유사한 내용을 계획하거나 추진한 적도 없다. 김상조 위원장의 의견을 마치 그 동안 삼성이 추진해온 것인양 틀을 바꿔 인정한 것”이라 반박했다.

삼성 측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상호 묵시적으로 삼성 현안을 인식했다는 1심 판결에 대해 “임의적으로 구성된 청탁 대상에 대해 공통된 인식과 양해를 나눈다는 것이 과연 현실세계에서 가능하냐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첩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둘러싼 공방전도 향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수석 수첩에는 대통령 독대 시점을 전후로 해 승마·재단·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대한 지원 요구 정황이 기록돼있다. 금융지주회사, 삼성 바이오로직스 등 안 전 수석 수첩에 기재된 삼성 개별 현안은 삼성이 대통령 측에 명시적으로 현안 지원을 요구했다는 간접 증거로 제출됐다.

변호인단은 “안종범 수첩의 본질은 원진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작성한 재전문증거에 불과”해 증거능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무면허 운전을 사례로 들어 “A(이 부회장)가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됐고 그는 자신이 운전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수사기관이 C(안 전 수석)라는 사람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했다”며 “이 진술은 ‘내가 B(대통령)로부터 A가 차량 운전하는 것을 봤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안 전 수석 수첩이 독대 당시 상황을 입증하는 근거로 쓰였다며 원진술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명 혹은 법정증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증거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형사소송법 제313조를 지키지 않아 증거로써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검은 “(수첩이) 간접 사실을 증명한다면 진술사실에 대한 전문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서 “재판부는 수첩에 기재된 내용과 법정 증언, 관련 증인 진술, 객관적 증거를 모두 종합해 (유죄의)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다른 간접사실과 결합해 간접증거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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