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흥행 이후 쿠테타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를 현 정부의 2인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빗댄 칼럼들이 나오고 있다. 19일, 중앙일보는 한 장관이 제2의 6·29 선언을 각오해야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한겨레에는 이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3호 인재로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총경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전 총경을 영입했다. 조선일보는 류 전 총경이 경찰의 중립성이 훼손되면 신뢰가 무너져 경찰 조직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조선일보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5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이 기록한 사진들이 5.18 진상 규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감사패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1980년 5월 사진부 고(故) 이영배, 구자호, 유남희 기자 등이 광주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230여장을 지난 3월 진상조사위에 제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진보언론 ‘르몽드’지가 1944년 12월18일 창간했다. 르몽드(Le Monde)는 세계(The Worl)라는 뜻이다. 르몽드의 창간자는 위베르 뵈브 메리였는데 뵈브 메리는 1861년 창간해 1942년 폐간한 프랑스 일간지 ‘르탕’의 편집국장 출신이다. 이에 르몽드 논조나 편집 관련해 ‘르탕’의 후신이라는 평가도 있다. 1944년 나치 독일 점령에서 프랑스가 해방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나치와 비시 정권에서 활동한 모든 언론사를 해체하고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을 사형시키거나 추방했다. 히틀러에 적극 대항하지 않았
원고 : 산업통상자원부피고 : 경향신문사사건 : 정정보도 청구의 소주문 :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선고일 : 2023년 12월15일 재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민사부 재판장 송승우, 판사 이슬아, 판사 한광수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 관련 경향신문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 소송을 진행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경향신문은 ‘정부가 원전 비중이 줄어 한전 적자가 누적됐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원전(핵발전소) 가동이 늘었다’면서 정부 주장이 사실왜곡이라고 보도했다. 산자부는 경향신문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보수진영 내에서 전두환과 선을 긋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에 뿌리를 두고 있고, 보수정당 안팎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야당에서 검찰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 인사들을 전두환 ‘하나회’에 비유하면서 보수진영 내에선 전두환을 척결한 김영삼 전 대통령(YS) 관련 인사가 현 여당의 주류 인사라는 목소리를 뒤늦게 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 정치부 기자의 기자수첩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언론인권상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장애아동 학대사건을 추적하고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을 해왔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14일 뉴스타파 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진행한 제22회 언론인권상 시상식에서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인권침해 보도에 대응한 정치하는엄마들에 언론인권상 특별공로상을 줬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7월부터 ‘용인 장애아동 학대사건’ 관련해 다수 언론사가 특수교육 시스템의 문제나 장애 특정에 대한 이해를 생략하고 해당 아동의 언행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사건과 관련 없
1924년 12월17일, 국내 최초의 민간 무선전화방송(라디오방송) 실험이 성공했다. 이날 조선일보가 주최한 한국 최초 민간 무선전화방송실험을 직접 보기 위해 서울 종로 우미관 앞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이미 실험방송을 했기 때문에 이날 실험은 ‘민간 최초’이며 한국인이 주관했다는 점에서 ‘국내 최초’였다. 무선전화방송은 라디오방송의 과거 표현이다. 당시 방송 진행자는 조선일보 최초 여성 기자인 최은희 기자였고, 처음 전파를 탄 사람은 독립운동가인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윤극영의 동요 ‘반달’과 홍난파(홍영후
김기현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직을 내려놓자 ‘한동훈 비대위’ 출범이 힘을 얻고 있다. 16일자 대다수 신문에선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두고 여권 내 공방을 보도했다. 경향신문 등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은 바뀌지 않고 여당에만 희생을 요구한다고 비판했고, 조선일보는 한동훈 장관이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성장한 배경에 야당이 있다는 점을 분석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는 전국 7개 시도 중 충남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비판했다. 한동훈이 위기 뚫을 분 vs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이하 독자위원회)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정부 탓만 하지 말고 언론도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5일 조선일보가 공개한 지난 11일자 독자위원회 회의를 보면 “해외 주요 언론들이 엑스포 유치 판세를 전망할 때 사우디 우세가 압도적이었고, 외교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유치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우리 언론은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며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 정부 탓만 하지 말고 언론도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해
동아일보가 국내 최초로 2000년 12월15일 ‘신문박물관(프레시움-Presseum)’을 개관했다. 프레시움은 프레스(Press)와 뮤지움(Museum)의 합성어이다. 장소는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3~4층에 마련했다. 2012년 10월, 바로 옆 일민미술관건물 5~6층으로 이관했다. 당시 미국·일본·독일·네덜란드 등에 신문박물관이 있었다. 한성순보 이래 117년의 신문역사를 가진 한국은 해당 신문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8번째 신문박물관 보유 국가가 됐다. 개관 당시 신문박물관은 언론사적 가치를 지닌 5000여 점의 자료를 보유하
조선일보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기사에 대한 반론을 실었다. 지난달 20일 조선일보는 이란 기사에서 최민희 전 방통위원 내정자에 대해 “정보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지낸 점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 “관례상 여야 합의로 추천하게 돼 있는데 민주당 단독으로 추천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 발언을 보도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장(전 방통위원 내정자)은 해당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중재위 조정을 거쳐 반론보도를 실었다.
지난 13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지난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약 두달 만이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 언론 내에서도 미묘한 논조 차이가 드러났는데 이는 곧 국민의힘 안팎에서 나오는 의견들이기도 하다. 14일 동아일보는 사설 에서 “내부 총질 등을 이유로 전임 이준석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뒤 윤심(尹心)의 지원을 받아 당권을 거머쥔 김 대표의 사퇴로 용산 대통령실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며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을지, 공천 등 총선 준비를 어떻게 꾸릴지
서울의 봄을 짓밟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집권기가 끝나자 전두환 정권에 대한 각종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5공 청문회’가 1988년 11~12일 두달간 진행됐고, 12월13일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 장강재 한국일보 사장, 이종기 중앙일보 사장 등 4개 언론사 사주가 증인으로 국회 문공위원회에 출석한 ‘언론문제진상규명에 관한 청문회(언론청문회)’가 열렸다. 뉴스타파가 읽기 쉽게 활자화해 공개한 이날 회의록을 보면, 언론청문회에서는 ‘친일행위’, ‘1975년 언론자유수호운동’
1988년 12월13일, 국회에서 ‘언론문제 진상규명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 4대 언론사 사주인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 장강재 한국일보 사장, 이종기 중앙일보 사장이 참석했다.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1988년 열린 언론청문회에서는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 언론탄압 진상을 알리며 언론사주와 권력의 유착 등을 다뤘다.언론청문회에선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행위에 대한 질의가 나왔는데 방우영 사장은 “어떻게 조선일보가 과거 일제 앞잡이를 했다고 모독할 수 있느냐”며 전면 부인했다. 조선일보는 일제
1961년 5월16일 새벽 5시, 박정희 등 쿠데타군은 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을 통해 자신들의 ‘혁명공약’을 알렸다. 실제로 3권(입법·행정·사법)을 전부 장악하진 않았지만 주요 정부기관과 함께 방송국을 점령해 대국민 선전에 나서 마치 모든 권력을 얻은 듯한 착시효과를 거뒀다. 쿠데타는 곧 주요 권력기관과 방송사를 접수하는 일이었다. 참고로 박정희의 쿠데타 당시 쿠데타군의 자칭 ‘혁명공약’을 읽었던 KBS 아나운서 박종세는 1964년 동양방송(TBC)이 개국하면서 이직했고, 신군부 쿠데타로 언론통폐합이 진행될 때 TBC 고별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 선택’과 공동창당을 선언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1일 “내가 속한 진영의 모든 것이 언제나 옳았다고 할 수 없다”며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는 명제에 기초해 페미니즘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연대를 열어놓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일부 보수매체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 등 수사기관이 움직이지 않자 비판사설이 나왔다. 12일 한겨레는 사설
윤석열 대통령이 특수부 검사 출신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임으로 지명한 것에 대해 10명 중 6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지난 8~9일 여론조사꽃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에게 실시한 전화면접조사에서 ‘가짜뉴스가 심각하므로 검사 출신 기용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29%, ‘언론과 무관한 검사 출신 지명은 방송 장악 의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은 60.1%으로 나타났다. ARS 조사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여론조사꽃이 같은 기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에게 실시한 A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이 참여해 만든 잡지 가 올해 창간 100주년이다. 는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환경에서 1923년 3월호를 시작으로 1935년 7월까지 12년간 총 122권을 내면서 존중의 뜻을 담은 ‘어린이’란 표현을 널리 알렸다. 가 어린이의 ‘놀 권리’를 주장하며 어린이를 주체로 설정한 잡지로 평가받는데 관련해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의 정신을 담아 2005년 12월 보리출판사가 창간한 어린이 잡지 에 주목해봤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린이문화연대와 국회에서 지
1991년 12월9일 서울방송TV가 개국했다. 서울방송TV는 현 SBS(주식회사 에스비에스)다. 당시 대한뉴스는 “새로운 민간방송인 서울방송 SBS 텔레비전이 개국했다”며 “채널 6, 50킬로와트로 TV 첫 전파를 발사한 서울방송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방송’을 방송지표로 내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국 당시 SBS는 가시청권이 서울·경기 전역과 충청남북도·강원도 일부 지역으로 제한된 수도권 방송이었다. 또한 대한뉴스는 “SBS TV가 출연하면서 1980년 방송 통폐합 이후 11년 만에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공존하는 TV 삼국시대
독립언론 뉴스타파에는 제목에 ‘[변화]’라고 달린 기사들이 있다. 뉴스타파는 ‘변화’ 코너를 만들어 이 기사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누리집에선 “‘진실의 수호자’ 뉴스타파 후원회원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해당 기사들을 소개했다. 뉴스타파가 독립언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뉴스쿨(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 출신 신생 매체 ‘뉴스하다’ 누리집에도 똑같이 ‘변화’ 코너가 있다. 뉴스하다는 지난달 ‘변화’로 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뉴스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