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신임 사장이 임명 당일인 지난 12일부터 본부장, 국·실장, 부장 등 72명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14일에도 부장급 중심의 102명 인사 발령을 했다. 일부 뉴스 진행자들에게는 문자로 하차를 통보했다. 그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충격적 인사 조치를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21세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례가 없는 대학살이라는 점은 너무 분명하다. 박 사장이 말하는 공정성은 자신만이 선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향해 “어린 놈”, “건방진 놈”이라고 공격했다. 한동훈 장관의 탄핵을 주장하는 맥락이었다. 이에 한동훈은 11일 송영길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하며 국민들을 가르치려 든다”며 입장문을 내 반박했다.내가 주목한 점은 한동훈이 본인의 입장문에서 송영길의 발언은 ‘혐오스피치’라고 규정한 점이었다. 혐오스피치, 더 정확한 말로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
허위조작정보 폐해를 말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대통령선거 투표조작설 명예훼손 사건이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폭스 뉴스 기자가 많이 보인다”며 “올해 7억 8700만달러 배상금 때문에 공짜 식사를 거절할 수 없어 왔다”라고 꼬집은 그 사건이다. 사건 개요를 짧게 요약하면 트럼프 측 인사들이 2020년 대선 당시 폭스뉴스에 출연해 도미니언보팅시스템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선거를 도둑맞았다’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 도미니언보팅시스템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결과 약1조원의 배상 판결
‘서울은 아직 작다.’ 내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문장이다. 박수영 국민이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이 일곱 글자에 나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지역신문에 일하면서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자는 구호는 수없이 봤다. 그런데 수도권 일극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주장은 처음 봤다. 웬 말인가 싶었다.서울쪽 일간지를 살펴보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이 ‘수도권 위기론’에 휩싸이자 반전카드로 ‘김포 서울 편입’ 의제를 꺼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분도 있단다. 국제도시로써 서울의 경쟁력
얼마 전, 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탈고했다. 조만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박재영 고려대 교수, 김창숙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원과 함께 조사하고 집필했다. 더 보완하여 일련의 연구논문으로 발표할 무렵에 상세 내용을 적기로 하고, 오늘은 그 일부만 소개한다.연구팀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좋은 기사를 평가하는 독자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을 ‘규범의 필터 버블’ 바깥에서 찾고 싶었다. 기사의 공정성을 평가해달라고 독자에게 주문하고, 독자가 이를 낮게 평가하면 ‘공정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 참여해 희생자와 유가족, 피해 생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온전한 진상규명과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감시위원회 활동으로 발표하는 이번 보고서는 민언련이 작성해 11월 8일(수) 발표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10월 25일, 포털과 언론사에 참사 1주기 보도 댓글창을 닫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6일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올해 2월
언론사를 장악한다고 언론을 장악할 수 있을까. 여러 정권에서 목격한 언론탄압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탄압 강도가 높을수록 저항이 거세진다. 겉으로 장악한 것처럼 보여도 밑바닥에서부터 저항은 꿈틀거리고 결국 그 정권은 파국을 맞는다. 윤석열 정권의 특징은 언론장악에 대한 저항의 틈새를 한치도 내주지 않기 위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 고지를 시작으로 공영방송 이사의 잇따른 해임 의결을 보면 대안 마련이나 법적 문제 발생 같은 뒷수습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KBS사장 선임 문제만
일찌감치 총선 강풍이 불고 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위기를 느낀 윤석열 정권의 색다른 승부수다. 갑자기 백인이 나타나 ‘전라도 사람’을 자처하며 집권당 ‘혁신’에 나섰다. 더 색다른 모습은 윤석열의 표변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주기를 맞은 그는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고 언죽번죽 말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함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 ‘깊은 위로’를 한 곳은 유족들 앞이 아니다. 뜬금없이 성북구의 교회를 찾아 ‘추도
검찰이 최근 경향신문을 압수수색했다. 경향신문은 2년 전 검찰 중수부가 대장동 대출 브로커였던 조우형 씨를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검찰 중수부 과장은 윤석열 현 대통령이었다. 검찰은 수사 무마 의혹에는 증거가 없다며, 경향신문이 의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향신문은 합리적 의심을 할만한 상황이라고 맞서고 있다.언론의 보도는 형법과는 다르다. 형법에서 유죄가 성립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은 검찰과 달리 강제 수사권이
지난달 25일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난해한 작품이라는 혹평이 이어진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 통상 그렇듯 이번에도 이야기 개연성보다는 정서적인 감흥을 극대화하는 환상적인 모험에 방점을 뒀는데, 전하려는 말이 뜬구름 잡듯 추상적인 데다가 그 전개가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대목이 있어 관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30년대 일본,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자라온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큰 화재로 어머니를 잃어 슬픈 날을 보내고 있다. 이모 ‘나츠코’는 아버지와 재혼해 동생을 임신
몇 년 전 ‘자폐증 소년의 시선으로 본 세상’ 영상이 화제였다.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을 맞아 영국 국립자폐협회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다. 봉지 닿는 소리, 빨대로 음료 마시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고 주변 시선이 크게 느껴지는 등 작은 움직임이 과도하게 증폭된 영상이다. 자폐증을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자폐를 이해하게 됐다’는 공감의 댓글이 달렸다. 치매환자의 시야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떨까. 빛이 번쩍하고 비쳤다 사라지거나 배경은 흐려지는데 특정 대상이 또렷해지기도 하고, 골목길을 잘 걷다가 길이 사라지는 것처럼 시야 왜곡·협착이 일어나기도 한다. 치매를 단순 기억력 상실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인터랙티브 기사를 보고 깨닫게 된다. 그들이 어떤 감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공감하면서 치매환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가상 치매 체험 인터랙티브’부터 GPS를 통한 치매배회 분석, 치매실종자 가족 인터뷰, 선진국 사례 취재, 치매환자 실험 등 취재방법을 총망라한 ‘대한민국 치매실종 보고서’가 한국일보에서 나왔다. 마지막 순서인 치매환자 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해챌린지’는 SNS를 타고 문화예술인, 정치인을 비롯해 시민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치매라는 주제를 갈고닦아 치매 ‘배회·실종’을 다룬 다양한 기사를 선보였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와 연인이었던 전청조 씨의 진실 공방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남현희 씨가 10월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데 이어 같은 날 전청조 씨는 채널A와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재벌 3세와 스포츠 스타의 열애로 시작된 이슈는 전청조 씨 사기 사건이 알려지며, 세간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거짓 성별, 성적 문제, 폭행 사건 등 두 사람의 자극적이며 적나라한 논란은 끊임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대중의 불쾌감마저 일으키고 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자제력을 잃은 채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1일부터 4박 6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국빈 방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순방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사업을 수주했다며 언론은 ‘잭팟’, ‘오일머니’, ‘중동 붐’ 등 해외순방 성과를 부각했습니다. 그러나 156억 달러(21조원)에 달하는 양해각서(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질적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계약의 상당수도 기업에서 이미 체결했거나 최종 사인만 앞둔 계약으로 확인되고 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를 과장 보도한 언론 문제를
국내 34개 여론조사업체가 가입한 한국조사협회는 10월23일 ‘정치선거 전화여론조사기준’을 제정하고 가입사에 준수를 요구했습니다. 핵심은 ‘ARS조사 금지’입니다. 대부분 언론은 한국조사협회 입장을 보도하면서 ‘ARS여론조사 퇴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그러나 한국조사협회에는 이미 면접조사를 주로 하는 업체만 가입돼 있으며, 주로 ARS조사를 하는 업체는 별도로 ‘한국정치조사협회’에 가입돼 있다는 점에서 마치 특정 조사협회 입장이 여론조사업계 전체의 입장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최근 면접조사보다 ARS조사에서 야
매체 보도는 콘텐츠 생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와 독자의 반응을 살피고 이끌어내야 하고 그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는 게 일상화됐다. 댓글 관리부터 차단 여부까지 매체 책임자 업무도 늘었다. 콘텐츠 수용자를 알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광 혹은 실망케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뉴미디어가 환영을 받는 것은 콘텐츠 반응에 대한 실시간 대응을 잘하기 때문이다. 반면 콘텐츠 소비자 만능주의에 따른 몰지각한 콘텐츠 남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선정적 콘텐츠에 대해선 ‘원하는 수요가 있다’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국제적인 주시 속에 벌어지면서 언론의 전쟁 보도, 전쟁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평시 언론 보도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객관성, 진실성 등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 참사 보도는, 전쟁위기가 높은 한반도 상황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실태의 적절성 여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쟁 저널리즘은 인간의 행위가운데 가장 참혹한 전쟁을 보도하는 것으로 언론에게도 최악의 상황이다. 전쟁은 상대를 죽이는 과정으로 살인은 애국행위로 칭송되며 적군은 악,
최근 종영한 ENA드라마 은 매력 있는 드라마지만, HIV/AIDS에 대한 부정확하고 낡은 묘사 때문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어릴 적 일종의 의료사고 때문에 HIV에 감염된다. 1990년대에 어떤 비밀스러운 치료로 완치되었다가 성인이 된 현재 다시 발병했다는 설정도 비과학적이었지만, 가장 용납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의 피로 상대방을 전염시키면 복수가 완성될 것이라고 여기는 장면이다.HIV/AIDS가 처음 알려진 1980년대와 달리, 의학기술이 발전해 현재는 감염되어도 꾸
검찰이 10월 26일 오전부터 경향신문 전‧현직 기자 2명과 뉴스버스 전직 기자 1명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경향신문은 2021년 대선 당시 (2021년 10월 7일), 뉴스버스는 (2021년 10월 21일)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검찰 재직 시절인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장동 대출 브로커였던 조우형 씨를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지난 주말 친척댁에 갔다. 그간 이모에게는 기별만 겨우 건너 전하던 터였다. 봉오리 맺힌 이야기가 활짝 펴 한참 화기애애했다. 그참에 “미디어오늘에 고정 칼럼을 쓰게 됐다”고 넌지시 뽐냈다. 이모는 속삭이는 자랑을 크게 맞받아쳤다.“오, 김 기자! 드디어 서울로 진출하는거야?”나는 일단 짐짓 반달눈을 지었다. 그러고는 “하하, 그렇게 됐네요”라고 답했던가.며칠 뒤 회사 선배 차를 얻어타고 가던 중이었다. 약간은 깔깔대며 이 일화를 말해줬다. 선배는 저의를 알아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얼추 20년 된 이야기가 봉인 해제됐다. 요컨대
10월7일 이스라엘 남부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 가자 지구를 거점으로 한 무장단체 하마스의 대대적 침공으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하마스의 침공 이유로는 이스라엘 정부가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의 서안지구 불법 점거와 2023년 4월 벌어진 이슬람-기독교-유대교 공동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충돌이 꼽힙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를 지지해온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흐름 속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경제난 속에 지지율이 30%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