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은 IPI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완전한’ 언론자유를 구가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언론 올림픽이란 의미부여와 함께 12억의 돈이 들어가고(이 가운데 8억원은 방송 광고 수수료인 소위 공익자금이었다고 한다) 언론의 대대적인 홍보가 뒤따른 호화로운 행사였던 만큼 마치 ‘완전한’ 언론자유가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수시로 언론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우리나라 언론이 선진국을 따르지 못하는 ‘수준미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예로 일본의 대지진, 미국의 오클라호마 폭발사건 때 일본언론이 보인 보도 태도를 들고 있다. 아주 차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큰 사고가 나면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지는데 우리나라에선 그 반대고 그 이유가 언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두가지 주장을 모아보면 정부가 언론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는데 수준미달의 언론이 그것을 남용해 사회를 혼란시키고 정부를 이유없이 곤경에 빠뜨리며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현장의 언론인들은 이런 논리가 매우 위험한 발상에 기초하고 있고 이 논리가 비약되면 군사독재 시절의 언론 탄압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갖고 있다.

이미 논리비약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 가스폭발 사고가 그 한 예다. 마치 사고가 언론의 책임인 것처럼 논리가 비약되면서 보도통제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또다른 비약이 나타나고 있다.

시작도 하지 않은 한국통신의 노사분규가 국가전복 기도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국가전복’ 보도는 ‘평화의 댐’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 언론이 수준미달인 점이 있다면 ‘국가전복’과 ‘평화의 댐’과같이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허위를 여과없이 전달하고 증폭해 ‘나팔수’ 노릇을 자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통령 역시 ‘평화의 댐’의 피해자였고 더 나아가 언론의 가장 큰 피해자중 한사람이었다. 지금 다시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당시 김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대항했던 사람들이다. 김대통령이 배덕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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