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방송사측이 지상파의 재송신을 중단해 1500만 명의 시청자가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가 20일 관련 방송사업자의 책임을 묻거나, 제도를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방통위측은 신중하게 조치를 취하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는 시기를 이미 놓쳤고 업계 분쟁에 대한 중재 능력이 의문시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20일 오전 전체회의 의결사항으로 ‘지상파방송 재송신 제도개선안’을 상정했지만, 의결을 하지 않았다. 시정명령 조치를 어기고 KBS 2 재송신을 계속 중단한 MSO(복수유선방송사업자, 티브로드, CJ헬로비전, 씨앤앰, 현대 HCN, CMB) 등에 대한 과징금·과태료 등의 제재 조치에 대한 안건은 이날 상정되지 않았다.

방통위는 “방송사업자 간 재송신 분쟁으로부터 국민의 시청자 피해 방지 및 방송사업자 간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심의했으나 심도 깊은 검토와 논의를 위해 의결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방통위 대변인실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제재 안건은 내달 1일 전체회의에서 상정될 것 같다”면서 “제도개선안, 제재조치가 보류된 것은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제도개선안은 지난해 발표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지난해 7월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 확대, 재송신 대가 산정 기준 마련, 분쟁해결절차 보완 등의 내용으로 하는 ‘지상파방송 재송신 제도개선안’ 발표한 바 있다. 이 제도개선안이 처리되면 KBS 1, EBS만이 의무재송신을 하고 있는 현행 방식이 수정돼, KBS-MBC-SBS의 재송신 대가(유상, 무상 여부 등)가 변동이 될 수 있다.

그동안 방통위 안팎에서는 이날 회의에서 제도개선안이 처리돼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 재송신 분쟁이 격화돼 케이블이 KBS 2의 재송신까지 중단하는 사태까지 왔기 때문에,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방통위가 연말에 이어 이번에도 제도개선안의 의결을 보류함에 따라 금명간 제도개선안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방송법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방통위가 개선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오늘 처리가 안 됐다면 이미 늦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총선을 앞둔 18대 국회 막바지에 처리될 수 없을 것”이라며 “재송신 계약이 연내에 마무리되는데 지상파쪽에서는 제도개선안의 개정을 반대하니까 국회 논의가 험난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지상파쪽 반발이 큰 상황에서 방통위가 섣불리 제도개선안을 내놓아 업계의 ‘공적’이 되기보다는 총선 이후의 정국을 보고 제도개선안을 던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협회는 지난 19일 발간한 지상파방송 재송신 정책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사업자들 간의 사적 계약을 통해서 도달하게 하면 된다”(강재원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주장을 싣는 등 제도개선안이 처리될 경우 재송신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큰 지상파쪽의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청자단체쪽에서는 이번 재송신 분쟁에서 중재에 실패한 방통위가 또 다시 ‘악수’(惡手)를 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늦어지더라도 신중하게 처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케이블 방송사가 막무가내로 지상파를 끊는 과정에서 방통위는 어떤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했고 케이블쪽에 시정명령을 내려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제도개선안 처리 과정에서 케이블과 지상파 이외에도 위성, IPTV와도 재송신 대가 분쟁이 불거질 수 있는데, 방통위가 지금 지도력을 잘 발휘해 시청자 입장에서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윤정주 소장은 “그동안 너무나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방통위가 돼 이제는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됐고 기관의 권위도 무시받고 있다”며 “제도개선은 시청자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 처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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