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IPI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과문한 탓으로 IPI가 어떤 단체인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신문은 저마다 대서특필하면서 IPI를 키우는 일에 급급했다. 정부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IPI 행사를 도운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아마도 근정전 행사가 아닌가한다. 근정전에 IPI 회원들을 모아놓고 총회 개막식을 여는 장면은 우리 국민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과거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 선전용으로 유치한 국제 미인대회에서 각국 미인들이 향원정에서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다. 또 그 정권이 취임기념 파티를 경회루에서 했던 일도 있다.

하지만 그 뒤로는 그같은 시설 사용이 극도로 억제되었다. 가만 내버려 두어도 오랜기간 풍상에 파손이 돼가는 문화재시설에서 행사를 여는 모습을 국민들이 결코 곱게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IPI 총회가 그런 문화재중의 하나인 근정전에서 열린 근거는 무엇인가. 언론은 이제 권력 조차 국민의 눈치를 봐야하는 일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소불위의 권위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인가.

그 비슷한 행사가 열릴때마다 모두 문화재 시설을 이용하려 한다면 과연 그같은 요구를 어떻게 다 수용할 수 있을까. 이번 IPI의 근정전 행사는 그런 의문에 적절한 대답을 던져주기 힘들 것이다. 그림 하나를 제대로 보전하기 위해 각종 첨단 장비를 개발하고 관람 시간을 제한하거나 모조품 관람으로 대치하는 문화선진국의 IPI 회원들이 이번 총회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갔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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