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재벌총수 이건희씨가 기업은 2류요, 행정은 3류요, 정치인은 4류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정치인이 집권해 대통령이 되고 장관 등 고급관리도 되는 현실에서 3류와 4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대체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정치가 잘못되고 행정이 잘못되었기에 건설회사들이 외국에 나가서는 시공을 잘 하는데 나라안에서는 부실공사 투성이인 것이다. 1등을 다투는 재벌의 우두머리조차 기업하기가 힘들다고 답답하게 느낄 정도니 중소기업하는 사람들은 오죽 힘들겠는가. 인허가권을 쥐고 도장 찍으면서 일생을 호의호식하는 부정공무원들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사회에 4류보다 못한 5류는 없는 것인가. 4류를 1류라고 칭송하고 그것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5류는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런 5류도 꽤나 있는 것같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보다 국무총리의 사표제출을 1면톱으로 올리는 신문사, 가스폭발 사고로 1백명이 사망해도 생중계를 제대로 안하는 방송사. 이런 것이 5류 언론의 모습이다.

언론도 변명할 구실은 있을 것이다. “세금문제가 걸려서 할 말이 있어도 자중하고 있소” 또는 “공보처가 내 목을 쥐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소”라든가. 그러나 이런 변명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것은 4류정부의 행태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문민정부니 개혁정부니 세계화니 자화자찬하는 정부에 맞장구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맞장구 치지 않으면 그것도 괘씸죄로 밉보이게 되오. 그것도 모르시오”라고 한다면 언론기관은 겉보기와 다르게 정권의 홍보매체에 불과한 것이고 언론고시니 뭐니 하면서 우수한 인재를 뽑아갈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닌가.

정보사회에 언론의 올바른 기능수행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50년대보다도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감이 든다. 상당수 언론이 재벌의 소유하에 있어 경제민주화를 논하지 못하고 더많은 언론이 유신정부 못지 않게 문민정부를 두려워해 할 말을 못하고 있다. 이것이 장기화되면 정경언 일체가 되어 사회의 자정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을까 두렵다. 후진국에도 드문 대규모 폭발사고와 붕괴사고가 발생하는 사회, 그러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사고의 진상조차 파묻혀버리는 사회, 우리는 이미 50년대와 60년대에 가졌던 얼마간의 자정력조차 대부분 잃었다.

언론조차 정부를 무서워 한다면 누가 하고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 있겠는가. 재벌총수와 전경련회장도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인데 서민들에게 언론의 자유는 그림의 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은행의 독립같은 문제는 2류인 재벌도 반대하고 3류인 재경원 관리들도 반대하고 4류인 집권세력도 공약 뒤집기하고 5류인 어용학자와 언론까지 가세하니 제대로 해결될 리가 없다.

1천여명의 경제학 교수가 서명을 해도 반대세력의 단합된 힘에 눌려 죽어버렸다. 대통령 면담신청도 묵살되니 근대조선 군주시대보다도 지식인에게 언로가 막혀버린 느낌이다. 4류정부를 3류, 2류로 끌어올리는 것은 재벌총수나 일부 지식인의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언론이 제 본분을 다 할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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