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고 관련 재판에서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후 구조인양 작업 중 인양업체에서 최초에 함미를 체인 두 줄로 감아 수면까지 끌어올린 뒤 인양해 바지선으로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해군이 돌연 천안함을 수면 아래로 내리고, 함미를 침몰지점에서 백령도 해안 부근으로 옮겨 사흘간 지체하면서 체인 한 줄을 더 걸도록 한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부착하는 작업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양업체의 체인설치팀이 함미 선체로부터 벗어나 아예 대청도(육상)로 나가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함미 이동부터 함미 인양한 날까지 사흘간 함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함미를 인양했던 88수중개발의 체인 등의 설치준비작업을 지휘했던 권만식씨는 9일 오후 천안함 의혹제기를 했다가 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 합조단 민간위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5차 공판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애초 현장에서 지시를 받은 것은 ‘함미에 체인 두 줄을 걸라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권씨는 지난 2010년 4월 3일부터 백령도에 합류해 함미 인양을 위한 체인설치 등의 지휘를 했으며, 같은 회사인 88수중개발의 정성철 대표가 모든 인양작업의 지휘를 하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권씨는 함미를 최초로 수면까지 올렸던 지난 2010년 4월 12일까지 함미에 체인을 두가닥 걸어놓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88수중개발은 함미(선체와 물의 무게 포함)의 무게가 1000톤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고, 이를 들어올리려는 해상크레인은 2200톤급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함미 선체 무게와 들어있는 물, 물먹은 나무 등을 합쳐 넉넉히 계산했을 때 무게가 1000톤 안팎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진술은 지난해 11월 13일 천안함 4차 공판 때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이 당시 함미의 무게를 선체 624톤, 물 무게 1160톤 등 모두 1800톤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는 진술과 배치된다. 특히 권만식씨는 당시 작업 현장에서도 김진황 대장의 증언과 같이 함미 무게(총 1800톤)가 나갈 것이라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인 두 줄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4월 12일 함미를 수면까지 들어올리기 전까지 한 줄 더 걸라는 지시를 받은 일도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권만식씨는 “(최종 지시는) 두줄(을 걸라는 것)이었다”며 “세줄 걸라고 지시했으면 세줄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은 지난 2010년 4월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와이어 두 줄로도 충분히 인양이 가능한 상황”, “일반 상선이었다면 와이어 두줄로 바로 들어 (바지선에) 올리면 된다…1000톤 이상 되는 상선을 인양할 때도 보통 이런 식으로 한다…부산말로 같잖은 일(너무 쉬운 일)…(이는) 인양업계의 상식”이라고 밝혔었다.

권만식씨는 재판에서 이를 두고 “현장 상황이 바깥과 틀리다. 사고가 났기 때문에, 완벽하게 인양하려고 했고, 날씨도 안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과 (실제가) 상반된다는 것이냐’는 재판장의 추궁에 권씨는 “올릴라고만 하면 올린다. 하지만 유족 문제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고, 날씨도 좋지 않아 더 좋은 조건으로 하자고 한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4월 12일 수면까지 들어올렸다 내린 경위에 대해 권씨는 “너무 많이 들면, 저항 때문에 톤수가 많이 늘어나고, 파도가 치니 다시 낮추라고 해서 낮췄다”며 “수면 아래로 조금 더 낮추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애초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함미 침몰지점에서 용트림 바위 쪽으로 이동한 것과 관련해 권씨는 “(4월 11일 저녁 때) 날씨가 안좋다고 해서 수심이 낮고 파도가 안치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재판에서 해군과 해난구조대장(김진황씨)는 파고가 높고, 기상상태가 안좋아 저수심 지대인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으로 옮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역은 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했다는 제3의 부표(KBS 보도) 지점과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걸게 된 경위에 대해 권씨는 “두 줄 걸고 난 뒤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킨 날(12일)과 들어올린 날(15일)의 공백기간에 한 줄 더 보강하자고 어디선지 연락이 와서 보강했다”며 “아마 13일엔 기상악화 때문에 안한 것 같고, 14일에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씨는 이런 작업을 할 때를 빼놓고는 함미를 이동시킨 이후 작업팀이 아예 대청도 육상에 가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함미를 옮겨놓은 뒤 우리(88수중개발팀)는 대청도 섬으로 피항갔고, 산에도 올라갔다. 작업자들은 섬으로 갔고, 바지선과 크레인 작업팀은 대기했다”며 “함미는 용트림 바위 부근 저수심지대(25m)에서 바닥으로부터 한 1~2m 떨어진 위치에 체인으로 걸어서 지탱하도록 해뒀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양작업을 담당했던 88수중개발팀이 함미가 이동한 이후 모두 빠진 채 현장에는 해군과 해상크레인(삼아해운)팀만 사흘간 남아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두 줄로 걸었다해도 4월 12일 끌어올렸을 때 곧바로 바지선에 싣고 시신수습한 뒤 평택으로 가면 되는 일”이라며 “그런데 해군이 ‘체인(케이블)을 한 줄 더 걸어야 안전하다’면서 굳이 저수심 지역으로 끌고가려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짙게 든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왜 저수심지대로 끌고 가려 한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그 저수심지대에서 해상크레인의 작업을 필요로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