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명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는 방안이 담긴 주민등록법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난여론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 더해 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할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자주민증 왜 도입하나?

정부가 발의한 주민등록법일부개정안의 핵심은 개인 정보를 주민등록증의 IC칩에 삽입하는 내용의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는 것이다. 정부가 설명한 전자주민증에는 성명, 성별, 생년월일, 주소, 사진, 주민등록번호, 지문, 발행일, 발행번호가 표시된다.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 주민등록증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점차적으로 갱신하면서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행정안전부는 전자주민증 도입 필요성에 대해 "현 주민등록증은 위변조가 쉽고, 표면에 주민등록번호, 지문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개인정보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며, 육안확인용으로 제작되어 인식오류가 과다하게 발생하고 있으므로, 새롭게 경신되는 주민등록증은 민감한 개인정보는 IC칩에만 수록하고 위변조 여부를 리더기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전자주민증 형태의 주민등록증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또 "리더기로 읽어낸 개인정보는 화면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만 하고 저장, 수집하지 못하도록 운영할 계획이고 기술적으로는 정보의 저장, 수집 등 유출방지 기능을 적용하여 주민등록증 리더기 전용 소프트웨어를 보급하여 이용하도록 하며, IC칩 안의 정보를 소지자의 동의 유무와 관계없이 저장, 수집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일축했다.

삼성·한국조폐공사 보고서대로 전자주민증 만드나?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주장과 반대로 전자주민증이 개인정보 유출에 취약하고, 개인정보들이 집적될 위험성까지 안고 있어 범죄에 이용될 수 있고 나아가 정부가 개인정보를 통제해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전자적 수록의 방법, 수록된 정보의 타인에 대한 제공 또는 열람 방법, 보안 조치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해 전자주민증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자주민증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출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셈이다.

다만, 지난 2006년과 2007년 행정안전부가 외부에 용역을 의뢰한 보고서를 통해 전자주민증의 모습을 일정 부분 알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보고서는 오히려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을 담고 있어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2006년 5월 당시 행정자치부는 한국조폐공사와 삼성SDS, 에스원이 구성한 한국조폐공사 컨소시엄에 용역을 의뢰해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연구'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IC 칩 형태의 전자주민증 도입을 전제로 기술적인 문제점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전자주민증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라는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 개인정보 집적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전산 자원의 장애에 대처하기 위해 백업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나와 있다.

재해·재난 시 발생될 수 있는 자료 유실을 위해 백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인데 백업센터를 두는 것 자체로 해킹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장애·재해 발생 시 최단시간에 조직, 정보, 시스템 데이터 등을 복구해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는 공간이 백업센터라면서 외부 기업들이 센터를 구축해 운영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보안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다.

 

보고서에서는 또 개인 신원의 인증 방법으로 바이오인식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단 이용자가 등록된 다음 이용자를 인증할 필요가 있을 때 센서의 의해 이용자의 생물학적 특성이 획득되고 센서로 획득된 아날로그 정보는 디지털 형태로 변환돼 이 디지털 정보는 등록 시 저장된 바이오 인식 형판과 비교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이오 정보는 프라이버시 침해문제와 직결돼 있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 수 있다.

전자주민증에 REID 방식을 채용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방식은 각종 물품에 소형 칩을 부착해 사물의 정보와 주변 환경 정보를 무선 주파수로 전송하고 처리하는 비접촉식 인식 시스템을 말한다. 버스카드와 같이 일정 거리에서 기기에 갖다대면 정보가 인식되는 형식이다.

보고서에서는 RFID 방식의 주민등록증 적용 가능성에 대해 "원거리 인식 특성으로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자주민증 활용해 국민 감시한다?

전자주민증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보인다. 보고서는 전자주민증 활용 방안으로 전자 투표와 건강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일례로 전자투표시스템에 대해 "선거인 명부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중앙시스템과 직접 연결해 단말이 있는 전국 어디서나 쉽게 컴퓨터 망을 통해 무기명 투표를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07년 7월 행정자치부가 삼성SDS와 에스원에 의뢰해 만든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2단계 기술적 타당성 연구 시스템 개발 구축 부문 최종보고서'를 살펴봐도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주민등록DB의 일관성 유지 방안 추천안'으로 주민등록정보센터를 만들어 전국 주민등록 데이터를 하나의 통합 DB로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보가 한곳에 모이는 시스템인데 해킹을 당할 경우 유출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보고서에는 또한 행정자치부 서버와 연동해 온라인 발급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 전산정보는 인터넷 영역이 아닌 국가정보통신망 내에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전송 정보는 암호화 및 보안 USB를 사용하는 등의 필요한 보안요소를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특히 정부는 전자주민증의 다양한 활용 방식에 대해 "현재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은 주민등록증 기능에 충실하도록 신원확인에 필요한 항목만을 수록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번 개정안의 아이디어가 두 보고서에서 나온 만큼 향후 전자주민증 안에 다른 개인정보를 구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 주민과 관계자는 "2006년도 보고서에서 전자주민증을 활용하는 부분을 고려했었지만 현재로서는 활용할 방안이 갖고 있지 않다"면서 "보고서에 나온 내용 중 보안 분야만 기준으로 참고하고, 향후 보안 규정은 비밀로 취급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하지만 "정부는 뒤에서 다른 개인정보를 추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법안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다른 정보를 전자주민증에 추가해 정부가 국민의 개인 정보를 활용할 위험성을 지적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또한 "기존에는 주민등록증을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이 끝이었지만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비밀번호를 제시하거나 지문날인 방식으로 주민등록번호상 본인임을 인증해야 한다"며 "결국 국가가 인권침해가 되는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시민단체와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전자주민증이 일단 도입되면 나중에는 칩 안에 건강보험도, 운전면허도, 이것저것 넣자는 계획들이 넘쳐날 것이다. 삼성과 조폐공사의 본래 아이디어가 그러했다"면서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실시간 감시도 가능하다. 정부는 그럴 일이 없다고 믿어달라고 하지만 그 장담을 보장할 법률 조항은 법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이런 정보가 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에 수시로 제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규범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시사회의 미래가 멀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

민주통합당 합의 처리 비난 봇물

전자주민증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와 별개로 이번 개정안을 여야가 합의처리하면서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3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이 의결되기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고, 행안위 전체회의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백원우 의원이 전자주민증에 혈액형 정보를 빼자고 요구했을 뿐이다.

민주통합당은 합의처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고 해명했지만 개정안 도입의 첫 출발부터 합의처리해준 것은 개정안을 막을 의지가 없다는 비난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 전자주민증 도입을 내용으로 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법안심사부터 전체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면서 "많은 논란이 있던 이 법안이 별다른 토론도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된 데에는 정부와 여당의 법안 강행 뿐 아니라 법안 처리를 합의해준 민주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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