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노숙인들의 비보가 들린다. 22일 언론이 보도한 것만 2건이다. 부산 낙동강 둔치와 광주 무등산에서 잠을 자던 노숙인들이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노숙인들이 몸을 뉠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탓이다. 서울시가 100여 일 전 서울역 노숙인들을 퇴거 조치하면서 이들은 가장 추운 새벽 1시 반부터 4시 반까지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한국에서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이들에게 겨울은 계절이 아니다. 하루고 일 년이다. 그러나 서울역 등 공공역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올겨울 노숙인들은 유독 더 춥다. 바로 지금 이들의 얼굴에 부딪히는 공기, 싸구려 옷에 파고드는 돌바닥의 온도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23일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노숙인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체계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겨울에 접어들수록 노숙인들의 죽음이 더 잦아질 것으로 봤다. 다음은 이동현 집행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겨울이다. 물리적으로 추운 계절이다. 노숙인들의 죽음을 자주 목격하고 있다. 노숙인들에게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
“한해 300명 이상의 홈리스가 사망한다. 사망률은 여름과 겨울에 정점을 이룬다. 얼추 비슷하지만 겨울에 최고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여름과 겨울이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노숙인들이 계절 변화에 취약하다는 거다. 노숙을 하면서 건강이 열악한 상황에서 집이 없이 노상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를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여름에는 선풍기, 에어컨을 틀고 겨울에는 난방을 하는 게 보통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인데 그걸 못하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아진다. 겨울철 사망률이 높다는 건 노숙인의 삶이 한계적이라는 거다."

- 서울역 강제 퇴거 이후 노숙자들은 어디로 갔나.
"그나마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곳이 서울역 대합실이었다. 그곳은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그리고 지하도가 있는데 노숙인들이 서울역에서 퇴거를 당하면서 인근 지하도로 퍼져 있는 상태다. 박원순 시장이 되면서 만든 지하도 응급구호반에서 80명이 잘 수 있다. 200여 명은 여전히 거리와 지하도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평소 겨울에 100명 정도가 서울역에서 잤다. 이 인원이 탈 노숙을 한 거냐. 그게 아니라 주변으로 흩어졌다. 8월22일 시작한 강제퇴거 방침이 만들어지고 8월 한 달 간 서울역 거리 노숙인 숫자를 보면 8월 초 270~280명 정도고 말일에는 295, 305명 정도였다. 강제퇴거 방침이 내려지고 서울시가 후속대책을 내놨는데 임시 주거지원 100호가 고작이다.

그 사업은 강제퇴거 방침 이전에 시행했다. 그럼에도 줄기는커녕 소폭 늘었다. 그런데 서울시와 서울역은 ‘노숙인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줄었다고 하는 이유는 뭐냐면 8월15일 즈음 일주일 동안 콩코스백화점에서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이 자는 자리에 몽골텐트를 쭉 깔았고, 텐트 때문에 노숙인들이 쫓겨났다. 원래 거기서 70, 80명이 잤는데 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인원이 200명 이하로 줄었다. 이걸 보고 ‘서울시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한 것이다. 통계를 조작한 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통계를 인용했다.”

 

-노숙인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간혹 나오더라도 실제 보고 듣는 것보다 축소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통계도 취약하지만 노숙인과 관련된 통계는 정말 취약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부정적인 자료수집은 잘 안 하려고 한다. 똑같은 집단에 대해서 정보수집을 해도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복지부에서 민간에 연구용역을 준 결과, 서울 거리 홈리스 수가 1380명 정도가 나왔다. 근데 12월13일 박원순 시장과 정책워크샵을 하면서 서울시에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380, 390명 정도로 나와 있다. 천 명이 차이가 나는데 이게 말이 되나. 사망통계는 없다. 예전에 민주노동당 이수영 시의원에게 연도별 사망통계를 받아본 적이 있다. 2006년 20명, 2007년에 수십 명, 이런 식이었다. 시설에 있다 사망한 사람을 파악한 거다. 시의원이 자료를 달라고 하니까 공무원이 시설에 연락해서 자료를 받은 거다.

그 외 사망통계가 없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에서 통계청 사망 데이터와 노숙인 지원체계를 이용한 사람들을 교차시켜서 조사를 했더니 2009년 357명으로 나왔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건 유일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통계의 한계는 노숙인 지원체계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누락된다는 거다. 두 가지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밝히기 싫어 지원체계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빠진다.

노숙인 지원체계가 없는 지역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지역에서 사망한 노숙인은 파악할 수 없다는 거다. 충청남도는 대전, 천안 빼고 지원 체계가 없다. 충청북도는 청주만 있다. 경기도는 수원, 성남, 안양 빼고 없다. 다른 지역에서 사망한 노숙인은 통계에서 누락된다. 현실은 훨씬 몇 배일 수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홈리스는 주거의 열악성과 점유의 불안정성을 같이 보는 개념인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서울역, 영등포역뿐이다. 이곳이 아니면 지원받을 수 없다. 다양한 형태의 홈리스를 지역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지원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질 않는다.”

- 얼마 전 노숙인 복지 정책을 법률로 만들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나는 홈리스로 해야 한다고 주구장창 주장했는데 영어라서 안됐다.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노숙인으로 검색하면 딱 하나 나온다. 법률의 대상이 걸인, 시설이용자와 더불어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하게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후자는 의미가 넓어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서 규정해야 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단칸방에 생활하는 사람 또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대상이 ‘노숙인 등’이다. 노숙인은 거리나 시설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 맨 마지막 ‘주거 적절성이 낮은 곳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개념 규정을 안 했다. 이건 심각한 결격이다. 홈리스로 표현하면 다 되는데 영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법률은) ‘주거로서 적절성이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은 노숙인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달리 얘기해 범위를 넓힐 수 없는 정치적 노림수도 있는 거다. 홈리스로 하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사람 수십만이 지원 대상이 된다. 1인 가족, 2인 가족에 각각 해당하는 주거기준이 있다. 정책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두려운 거다. 그래서 이렇게 폭 좁게 규정한 거다.”

-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이 2005년 300명을 넘어 2009년에는 357명이다. 노숙인 지원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전체 노숙인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다. 미디어에서도 다루고 지자체에도 지원 정책이 있는데 이처럼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서울역을 통해 유입되는 노숙인이 한해 800명이다. 노숙인이 되는 사람은 한해 수천 명이다. 홈리스행동이 실태조사를 해도 6개월 미만 신규 노숙인이 25%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가 92명을 설문조사했는데 그 결과도 신규 노숙인이 27.5%다. 굉장히 많은 수가 노숙인이 되고 있다. 노숙인 수는 계속 유지되고 있고 사망률 또한 높다. 높은 사망률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료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홈리스 사망 문제를 보면 ‘다쳐서 죽는 사람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하면 안 죽어도 되는데 다쳐서 죽는다는 거다.

둘째, 의료지원체계에도 문제가 많다. 넓게 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문제가 있다. 최저생계 이하로 사는 사람의 생계를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게 법 정신이다. 그런데 여기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넣었다.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1차로 부양을 받으라는 말이다. ‘부양자가 없으면 우리가 해주겠다’는 엄청난 제한을 뒀다. 그에 따라서 의료급여법도 2008년부터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행려한 자에 대해서도 적용을 하게 됐다."

- 부양자가 있는 노숙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작년에 해프닝이 있었다. 국립의료원이 ‘노숙한 자, 행려한 자는 환자로 안 받겠다’고 지자체와 시립병원에 보낸 적이 있다. 왜 그랬냐면 2008년 의료급여법 사후 시행지침이 바뀌기 전에 행려한 자 진료를 해도 국가로부터 70~80%를 받을 수 있었는데, 지침이 바뀌면서 25% 정도로 줄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진료할수록 적자니까 못한다고 한 거다. 병원은 ‘행려환자’가 실려 오면 일단 치료를 한다.
 
그리고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연락해서 치료비를 받는다. 노숙인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치료비를 안 내는 경우가 있다. 이미 가족관계가 단절됐고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부터 치료 받기 어려워진다. 11월에 국립의료원 주변에서 거리 홈리스 홍모(38)씨가 변사했다.

 

이분은 부양의무자가 진료비를 체납한 적이 있어서 모 시립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받았다. 근본적으로 부양자 기준 때문에 진료를 못 받은 거다.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나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자 기준을 폐지하는 게 중요한 문제다. 노숙인은 밤에 아프면 119에 실려가는 방법뿐이다. 진료소가 문을 닫는다. 밤에 아프면 행려환자가 돼야 하는 건데 진료를 못 받는다. 노숙인은 밤에 아프면 안 되는 게 지금 실정이다.”

- 주거가 불안한 것 또한 높은 사망률의 원인 아닌가.
“그렇다. 현장에서 노숙인을 진료하는 의사들은 ‘노숙인에게 약보다 중요한 건 주거’라고 얘기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숙을 하니까 약발이 안 받는다는 얘기다. 치료에 있어 의술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주거, 생활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약을 잘 먹고, 잠을 잘 잔다는 건 불가능하다. 주거의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임시주거지원이라고 해봤자 한해 100~200호뿐이다. 아니면 ‘쉼터에 가라’는 거다.”

-박원순 시장도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서울시 노숙인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울시의 노숙인 정책에 깔린 생각은 ‘거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늘면 노숙인이 는다’는 거다. 그래서 서비스를 줄여서 노숙인을 줄이겠다는 건데 굉장히 구시대적인 생각이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정책을 보자. 특별자활근로를 보자. 급여가 38만5천원으로 저임금인데다 조건으로 ‘쪽방을 얻는 것’이 붙는다. 쪽방을 얻는데 20~25만원 드는데 그럼 나머지 10여만 원 가지고 한 달을 생활하라는 얘기다.

고용기간도 최장 6개월까지다.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는 거리 홈리스에 대해서는 의료진료를 안 해준다. 가족이 지역보험, 직장보험에 피부양자로 가입시키는 경우인데 실제로 부양하진 않지만 거기에만 올려놓은 거다. 하지만 실제로 가족관계는 단절돼 있고 가족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당신은 노숙인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거다. 이런 분들은 낮이고 밤이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 오세훈 전 시장이 노숙인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올 7월에 발표한 서울시 대책을 보면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노숙인은 진료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무호적자는 어떻게 하나. 진료 못 받는다. 또한 서울시는 입원기간을 최장 15일로 정했다. 큰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어떻게 하나. 퇴원하고 통원치료 해야 한다. 그리고 보건소와 무료진료소 이용을 강제했다. 보건소에 해당과가 없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 다니던 시립병원이 있으면 거기로 가면 되는데 보건소를 들러서 가야 한다.

해당과가 없는데 보건소를 왜 가나. 쉽게 말해 장벽을 높이는 거다. 의료서비스 이용을 복잡하고 귀찮게 만든 거다. 왜냐면 서울시 의료예산이 60억 정도다. 2004년에 20억 정도 됐는데 이걸 줄이는 과정에서 의료서비스 수혜자인 노숙인의 불편이 생긴다. 그러면서 도덕적 해이, 의료 쇼핑이라는 단어를 썼다.

병원에 함께 가면 그곳을 굉장히 불편해하는 노숙인이 많다. 검사도 싫어하고 대부분 ‘빨리 약 달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어떻게 환자가 의사에게 과잉진료를 부탁할 수 있겠나. 이런 의료지원체계의 부실이 사망률을 높인다고 볼 수 있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행려자라서 안 되고 부양의무자 라서 안 되고 결국 진료를 못 받고 쫓겨나게 되고 그러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

- 핵심을 ‘주거대책’으로 볼 때, 지금 주거대책의 현실은 어떻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임시주거지원사업이 2005년에 시작됐다. 민간단체들이 공동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제안해서 선정돼 올해까지 하고 있다. 최장 3개월, 재신청이 있으면 4~5개월까지 거리 홈리스에게 방을 얻어준다. 그리고 지원기간이 끝나면 다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게 도와준다든지, 일자리를 구해준다든지, 스스로 주거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다. 이중 80% 정도가 탈거리 노숙을 하고, 오래된 사람은 임대주택을 신청해 들어가서 주거 상향을 하고 있다. 정책효과성이 높다. 사회복지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모델이다.

계속 정부에게 압박을 했다. 작년에 서울시에서 200호 지원사업을 했다. 왜 했냐면 G20 때문이다. 거리에 노숙인이 많으면 안 되니까. 작년은 그렇게 끝냈고 올해 100호로 줄였다. 올해는 G20 안 하니까. (100호는) 올해 겨울에 쓸 계획이었다. 그런데 서울역 강제퇴거가 여름에 일어나니까 수습대책이란 이름으로 100호를 썼다.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고 200호를 더 마련했다. 올해 총 300호를 지원하는 거다. 얼마 전 복지부가 파악한 서울지역 거리 홈리스 수가 1380명 정도다. 그런데 임시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는 300명이다. 세발의 피다. 그러니까 서울시는 이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난처하다. 이걸 제외하고 쉼터에 들어가는 방법뿐이다.”

-그렇다면 쉼터를 더 확충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쉼터에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제일 많이 나오는 문제는 사생활 보호가 안 된다는 거다. 프라이버시가 대단히 고상한 권리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는데 한 방에 여러 명이 들어가 생활하는 게 피로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새벽 노가다 나가는 사람과 야간경비를 하는 사람의 생활사이클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쉼터에 주거공간으로서 기능을 보강해야 하는데 ‘한 방에 몇 명 이상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기준 자체가 없다. 한 교회 쉼터 같은 경우, 한 방에 수십 명씩 잔다. 그리고 보통 7~8명이 한 방을 쓴다. 주거기능이 취약하다. 그럼에도 그걸 참고 살았을 때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으면 참고 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쉼터정책의 효과를 단적으로 표현할 때 ‘회전문 현상’이라고 한다. A쉼터 갔다가 B쉼터 가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가 C쉼터를 가는 걸 말한다. 이 체계에서 빙빙 돈다는 거다. 쉼터에서 참고 견뎌도 좋은 일자리를 얻어 탈노숙을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지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쉼터를 안 갔나. 다 갔다 왔다. ‘가봤더니 내 삶이 나아지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거다. 부딪혀서 아는 사람은 설득이 안 된다. 쉼터에서 조사를 해봐도 임시 주거지원에 대한 욕구가 57% 정도 밖에 안 된다.”

- 결국 갈 데가 서울역 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혹자들은 ‘서울역을 열어라’, ‘(노숙인을) 서울역에서 재워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서울역에서 노숙인이 한 명도 없어도 강제퇴거 방침은 철회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역사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 철도공사는 서울역에 노숙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리는 서울역에 노숙인이 많아서 서울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뭐냐면 아까 말했듯 신규 노숙인이 28%라고 했다. 이들이 왜 서울역에 있냐면 안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쓸 수 있고, 주변에 급식소 있고, 어느 정도 따뜻하고, 비도 피할 수 있고, TV도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서울역에 있는 거다. 그건 옛날에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쫓겨나 보따리 하나 들고 와서 서울역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공공역사는 세계적으로 이렇게 빈곤층이 유입되는 유입로로서 기능해왔다. 아무런 정보 없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공기업으로서 철도공사가 할 일인가. 아니다. 철도공사는 노숙인이 노숙인 복지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프랑스는 1993년까지 노숙인들에 대해 폭력단속을 했다. 역무원은 역무원대로 기소되고, 노숙인들은 맞아서 싫고 이런 갈등이 커지자 ‘지원을 통한 노숙 탈피’를 구호로 걸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철도역무원들의 숙소에 노숙인이 잘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이력서 쓰는 법을 가르치고 구직활동에 동행하고 응급의료지원도 했다.

이렇게 바꿨다. 그랬더니 지하철 같은 경우 8년 새 노숙인이 3분의 1로 줄었다. 효과를 봤다. 이렇게 가야한다. 노숙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노숙인이 줄어야지 다른 방식으로 된다면 전형적인 님비(NIMBY)에 불과하다. 지금 지하도로 몰리고 있는데 지하철공사는 공기업 아닌가, 지하도는 공공의 장소 아닌가, 똑같은 거다. 철도역사 같은 경우 가장 중요한 건 위기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거다. 쫓아내는 게 아니라 노숙생활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루 빨리 제대로 된 복지체계를 만날 수 있게 연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기업으로서 철도공사의 사회적 책임이다.”

- 쾌적한 환경과 노숙인의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또 하나 철도역사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자역사화를 진행하면서 철도역사가 상업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민자역사는 전체 공간 중 역무시설이 10%뿐이다. 나머지 90%는 상업시설이 차지하고 있다. 기차 타러 가는데 백화점 가는 꼴이다. 상업자본의 이윤 창출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빈곤의 형벌화’ 조치를 계속하고 있는 거다.

가난 자체를 죄로 만드는 거다. 철도공사가 이번에 한 게 그거다. 몇 가지 사례를 침소봉대 하면서 ‘노숙인은 위험하다’고 한 것이다. 강제퇴거 방침을 얘기할 당시 공문에 어떤 얘기까지 들어갔냐면 ‘천안함 사태’, ‘오사마 빈 라덴’을 거론하면서 이런 문제와 노숙인을 동급으로 얘기했다. 철도공사는 이윤 추구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상업자본이 돈을 잘 벌게 해주기 위해 쾌적한 공간, 럭셔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숙인 등 구매력 없는 사람을 내보내는 작업을 한 거다.”

- 역사를 개방해야 한다는 말인가. 노숙인에게도?
“역사는 영업장이 아니다. 공공의 시설이고 공공의 장소다. 8월22일, 23일 서울역을 점거할 당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동대구에서 올라와 인터넷동아리 정기모임을 하고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려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있었다. 서울역에서 문을 닫으니까 이 학생이 어쩔줄 몰라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은 시간 규정이 있어 심야에 혼자 찜질방을 못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찜질방에 데려다 줬다. 여대생 한 명도 만났고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 파는 아주머니 한 분도 만났다. 가출청소년도 많이 있었다. 매 맞는 할머니도 서울역에 있었다.

서울역 안에 있으면 경찰도 있고 ‘보호 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 들어가지 못해서 ‘무섭다’고 하더라. 공공의 장소는 공공의 안녕을 해치지 않는 이상 저마다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때 서울시청 광장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듯이 쪽방에 있는 사람들은 한 평 반에 갇히기 싫어 서울역에 나간다. 가서 난간에 기대 사람 구경도 한다.

거리 홈리스 같은 경우 ‘벽을 타고 잔다’고 표현하는데 벽에 박스를 깔고 자는 거다. 대합실 중간에서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 안에서 음주를 심하게 하고, 노상방뇨를 하면 제재를 하면 된다. 노숙인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다. 그 동안 제재를 안 했나. 엄청나게 했다. 철도경찰에 의한 폭행도 많이 있었다. 대합실에는 철도경찰 분소가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바로 온다. 경찰권이 있고 유치장도 있다. 얼마든지 현장억제력을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심하게 대우했는데 이제는 영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강제퇴거한 거다.”

- 노숙인도 문제지만 집이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골방’에서 자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에는 기름 값이 아까워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자다 어린 장애인이 숨졌다. 빈부격차가 늘면서 ‘홈리스’가 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보나.
“재개발 문제가 심각한데 가옥주 포함해서 원주민 재정착률이 20%도 채 안 된다. 나머지는 외지 사람이 들어온다고 볼 수 있다. 재개발이 되려면 그 조건 중 하나가 ‘노후도’다. 집이 얼마나 낡은지가 그 기준이다. 그런데 낡은 집을 다르게 보면 ‘싼 집’이다. 가난한 도시 서민이 월세가 됐든 전세가 됐든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게 철거가 되면서 없어진다. 당연한 결과긴 하지만 재개발 이후 5000만 원 이하 전셋집이 없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로 가나. 서울 이외 지역으로 가기도 하고, 서울 내 단칸방으로 간다. 전세에서 월세로 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주거비 부담이 높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주택을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수준 정도 되면 임대주택 비율이 20%는 넘는다. 그런데 4%다. 장기임대주택은 3%대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택, 주거를 부동산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 이걸 공공재로서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거다.

물이나 공기처럼 주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모두는 아니더라도 공공이 공급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이 취약하기 때문에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주거까지 동시에 상실하게 된다. 노숙에 이르게 된 계기를 보면 실직과 질병, 가정해체 등이 굉장히 많다. 경제적 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삶이 우르르 무너지는 거다. 집이 없어지면 가정이 유지될 수 없는 게 문제다. 주거 불안에 대응할 수 있는 주거복지 정책이 허약하다.”

- 노숙인 복지정책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IMF 때 실직 노숙자라는 이름이 생겼다. 97년 11월 사태가 터지고 2001년에 상환을 하면서 정부에서는 ‘모범 졸업을 했다’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IMF가 그냥 간 게 아니라 사회체계를 다 변화시켜놓고 갔다. 홈리스의 과거 직업력을 보면 기계, 기능, 조립직 등 몸으로 뛰는 게 60% 정도 된다.

그런데 몸으로 벌어먹는 일이 사회 구조조정을 통해 많이 없어졌다. 쉽게 얘기해 ‘망치 잡던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라’는 건데, 이게 자활 이데올로기다. 공급되는 일은 서비스, 지식산업이다. 노숙인 평균 연령이 47세 정돈데 재교육을 받아서 변화된 산업시장에 안착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공장 같은 경우 OEM방식으로 해외로 옮겨가는데 이들이 어디서 일을 할 수 있겠나. 그러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제공되는 일자리는 초단기인데다가 임금도 낮다. 용돈 정도 되는 수준이다.

이런 일자리를 가지고 자활할 수 있나. 구조적인 위기에 봉착해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나라일수록 인구 대비 홈리스 비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계속적으로 낙오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잉여로 쌓인다. 가장 밑바닥에 홈리스가 있다. 주거정책, 일자리정책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런 사회질서에 대한 손질이 없이는 홈리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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