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선거정국을 맞아 방송들이 앞다퉈 ‘대통령 모시기’식 보도를 일삼고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중 하나임은 상식이다. 더구나 선거정국에서 대통령은 가장 많은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할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은 오래전에 이런 역할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역할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

최근의 대통령 관련보도를 보자. 임금을 올려 달라는 한국통신 노동자들을 국가전복 세력으로 몰아간 것은 상식밖의 일이다. 그러나 방송은 아무 비판없이 대통령의 ‘말씀’을 받쳐주기에 급급했다. 지난 4월 28일 대통령이 대구참사지역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가 허둥지둥 취소했을 때나 내년총선때 대통령이 민자당 지원유세를 하겠다고 했을때도 방송은 적절한 비판을 하지않았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법률 근거도 없이 미국 대통령 흉내내기를 계속하는 것은 정말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방송은 이런 사실을 한낱 해프닝으로 돌리고 있다. 야당대표가 이런 식의 번복을 계속했다면 그때에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돌렸을까. 번뜩여야 할 언론의 칼날이 왜 대통령 앞에서는 번번이 녹슨 칼이 되고 마는 것일까.

대통령은 분명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적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대통령 특별담화에서 대통령은 이번 지방자치선거를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것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현재 여권이 불리한 상황에서 중간평가로 이해되는 것을 막으려는 다분히 정치성 발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한 다른 정당의 반론기회는 어느 방송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통령 모시기’식 보도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뉴스가치와 상관없이 대통령 관련기사들이 계속 다뤄지고 있다. 5월 17일 MBC 뉴스데스크는 대통령과 관련된 아이템을 3건이나 방송했다. 대통령이 ‘오페라 안중근’을 관람했다는 것과 서울 국제도서전을 관람했다는 내용, 민자당 후보들에게 공천장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어느 것 하나 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전혀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 이런 동정이 세계화를 하자는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아직도 계속 보도되고 있다. 특히 민자당 후보들에게 공천장을 줬다는 보도는 이미 후보선정 사실이 나간 뒤여서 국민의 관심대상이라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야당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단순 동정까지 계속 보도를 하다보니 지난 5월 한달동안 KBS 9시 뉴스는 대통령 관련보도를 43건 방송했고 MBC는 41건 방송했다. 지난 4월 외국 유명방송사의 대통령 관련 아이템보다 무려 8배나 많은 수치다. 또 대통령 동정기사는 행사자체 보다 대통령 중심으로 작성되고 화면도 대통령 중심으로 편집되는 변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보도태도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보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모든 것의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한다는 그릇된 태도가 방송사의 뉴스에서 그대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대통령 관련보도. 이것은 앞으로 우리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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