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교주가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신도들이 증언하면서 오리무중이던 일본 독가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일본언론이 일궈낸 개가였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옴진리교에 대해선 NHK를 비롯한 일본언론이 독가스사건 발생 이후 지난 한달여를 집중보도했고 이렇게 달궈진 여론은 결국 옴진리교를 진실앞으로 끌어낼 만큼 위력적이었다.

미국이 일제 고급승용차에 대해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시작된 미일무역전쟁도 사실 지난 십여년 미국언론이 쌓아올린 여론의 힘이 없다면 명분없는 감정싸움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미국 무역적자에 책임이 있다고 몰고간 미국언론의 일관적이고 집요한 보도가 미국정부의 결정에 뒷받침 됐음이다.

이제 우리 언론을 한번 보자. 우리 언론에는 끈질긴 맛이 없다. 무슨 일이 터지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신바람나게 떠들어 댄다. 그러다가 다른 사건이 터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쪽으로 몽땅 밀려간다. 우리 언론은 의제를 던질줄만 알지(그릇된 의제를 던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주워 담을줄 모른다.

특종도 좋고 독점보도도 좋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느냐이다. 다른 언론사 보다 좀 뒤지면 어떠리. 뒤지더라도 깊이가 있으면 되고 반짝 하루를 다루는 것 보다는 며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낫지 않을까. 대구 가스폭발사고가 언제였나 기억이 흐릴 정도로 우리는 언론의 반짝보도에 익숙해 있다.

최근 일어난 미군의 한국인 폭행사건을 한번 보자. 평소에도 주한미군이 연루된 불미스런 사건이 없지는 않겠지만 유독 이번엔 의정부에서 연달아 터졌다고 난리다. 과연 이 사건을 놓고 어느 언론이 감히 한미관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물고 늘어질까 지켜 볼 일이다.

그러면서 엊그제 서울 강남에 플래닛 할리웃이 화려하게 오픈했다는 홍보성 기사가 등장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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