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기술선진국인 독일에서 일반 국민들 상당수가 미디어 기술발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독일국민의 많은 수가 텔레커뮤니케이션시대를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한 조사결과가 밝히고 있다.

여가시간연구소(B.A.T ― Freizeit Forschung-sinstitut)가 최근 14세 이상 2천6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새로운 매체등장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이중 50세 이상의 53%가 두려움을 더 심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미래정보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층에서조차 적지않은 수(36%)가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소 의외의 결과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학생인 필립 베르츠바하(28)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 이유는 누구든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들이 어떤 내용을 갖고 있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용한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그는 새로운 매체들이 갖는 위험, 곧 정보통제를 통한 사회통제나 인간관계 단절 등에 관한 연구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사생활이 감시당할 소지가 있는 것도 불안의 한 요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한편 새매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없다는 점과 매체구입을 위한 재정능력에 따라 정보의 빈부격차가 심화될 우려가 있는 점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는 달리 공무원 데들레프 슐츠씨(42)는 “정보고속도로니 멀티미디어 등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아는 바도 별로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중산층에 속하는 그는 현재 갖고 있는 전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전축, 그리고 석달전 구입한 컴퓨터로도 가족의 매체욕구가 충분히 만족되고 있다며 더이상 새로운 매체를 구입할 돈도 의지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관련 슐츠씨는 “기업이야 매체가 어떤 영향을 끼치건 또 소비자들이 구입의지나 재정능력이 있건말건 이윤을 남기는 상품을 만들어 팔려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 것때문에 매체홍수가 일어날 뿐 일반 국민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조사결과도 있다. 유료 텔레비전 방송인 <프레미에레>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새로운 매체를 위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고, 20%만이 기껏 월 1만2천원(20마르크)까지 더 지출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현재 3천3백50만명에 이르는 텔레비전 시청가구중 단지 4%만이 유료 텔레비전 가입이나 비디오 테이프 구입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인 베르츠바하나 공무원인 슐츠씨의 생각이 독일국민의 의식을 전적으로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보통국민’들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기술선진국인 독일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무관심은 기술발전 과정에서의 소외나 무력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보면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미래 정보사회’가 구호만큼 밝지만은 않으리라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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