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7일은 KT 2세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긴 하루였다. 이들 대부분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이십여 년간 KT의 2세대 PCS 서비스를 이용해 온 비교적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KT측으로부터 서비스를 3세대로 바꾸든지 다른 이통사로 옮기든지 하라는 압력에 줄곧 시달려왔고 당일 자정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2세대 망 철거로 이동전화번호와 단말기가 하루 만에 먹통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벼랑 끝까지 몰린 처지였다. 다행히 법원이 “(이용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방송통신위원회의 2G 종료승인)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극단적 상황은 중단됐다.

통신 이용자와 기간통신서비스 사업자 간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소동을 불러오게 한 방통위의 2세대 서비스 종료승인 결정은 불과 보름 전인 지난 11월 23일 이뤄졌다. 이 결정은 요약하자면 16만 명에 가까운 KT 2G 이용자들은 앞으로 14일 내에 다른 대체 서비스로 전환해야 하며 하지 않을 경우 망 철거에 의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고, 이는 KT의 LTE(4세대 이동통신서비스) 투자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용자 입장에서 자신이 이용하던 서비스와 동등한 조건을 전제로 등가 서비스만 제공될 수 있다면 기술의 진화발전에 따라 낡은 서비스를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로 전환하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대체서비스로의 전환이 이전 서비스의 계약 조건과 동등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소비자가 상당한 피해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이라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서비스 전환에는 항상 전환 지체의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환 지체의 문제는 동등한 이용 조건만 구비돼 있다면 대부분 전환 시 소비자 불만과 관련된 기술적이며 부수적인 문제들을 잘 처리하면 해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방통위나 KT가 목청 높여 강조하듯이 일본이나 호주에서 있었던 2G 전환 사례보다 우리 잔류 이용자 수가 적었다는 얘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한 잔류 이용자들은 우리 경우처럼 서비스 전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을 원하고 있음에도, 전환을 위한 다른 여건들(해당 지역의 망 설비나 바뀐 단말기의 공급 등)에 미처 접근하지 못한 데에서 생겨나는 기술적인 불만 때문에 전환을 못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KT 2세대 이용자들이 방통위의 2세대 종료승인 결정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소송까지 제기하고 나선 것은 근본적으로 방통위의 이러한 결정이 “동등한 이용조건”을 전혀 보장하지 않으면서(정당한 이유도 없이 번호를 무조건 바꾸라고 하면서) 소비자가 피해를 감수하도록 통신망 차단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 소비자를 강제로 압박하는 데에서 비롯됐다. 즉, 현재 2세대 이용자들은 방통위의 정책 결정 자체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1680만여 명의 이용자가 2세대 서비스 이용자이기 때문이다. (방통위 발표 10월31일 기준)

말할 것도 없이 이용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등 이용조건”은 이제까지 사용해 온 이동통신번호(01X로 지칭되는 011, 016, 017, 018, 019 등과 같은 번호)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2년 후 번호 변경을 전제로 해 지금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번호를 변경하라는 것이며 당장 서비스를 전환하도록 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또 다른 “동등 이용조건”은 서비스 전환 시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온 포인트, 할인혜택 조건과 할인요금 상품의 요율 적용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 이동 통신사들이 내걸었던 할인요금 상품의 계약 조건을 유지하라는 것으로서 계약 당사자로서 계약조건의 준수를 요구하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에 해당한다.

방통위와 KT는 입을 모아 LTE와 같이 진화하는 이동통신 기술로의 전환이 2세대 망을 유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2세대 1.8GHz 주파수 대역이 아니더라도 KT의 차세대 서비스를 위해 방통위가 이미 작년 초 900MHz 20메가 대역을, 올해 6월에 800MHz 10메가 대역을 할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도대체 차세대용으로 쓰도록 할당한 주파수는 어디서 잠자고 있길래 기존 이용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차세대 서비스를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방통위와 KT가 희소 자원인 주파수를 어떻게 낭비하며 공익을 해쳐 왔는지 정말로 철저히 따져 볼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