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특정계층 옹호는 국민 우롱행위

요즘 한국통신 노동조합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언론의 편파보도에 그 한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한국통신 노조가 국가전복 의도를 가졌다는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아무런 여과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사실 하나만 봐도 그렇다.

사실 언론 보도양태의 편파성은 새삼스러운 것도, 노사문제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언제나 국가경제를 갉아먹는 행위나 이기적인 폭력행위로 오도돼 왔다.
현대자동차나 한국통신문제와 관련된 기사들을 살펴보면 사태발생의 원인이나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집단행동의 불법성만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한통노조의 쟁의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고 때로는 굴욕으로 보일만큼 인내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노조의 불법성을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기업과 정부의 불법성에는 눈을 감고 있다.

또한 신문들은 이번 노사문제로 엔고 호황기를 맞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한국통신문제는 국가통신망 사업의 미래에 관한 중대한 문제제기(한국통신 민영화 반대)가 한 원인이었음에도 불구,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접근조차 하지않았다.

미디어크라시라는 말이 나올만큼 언론은 강력한 파급력과 권력을 갖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언론이 특정 계층만을 옹호하는 것은 언론의 공익성을 외면하고 대다수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아닐까.
정지연(한국외국어대학교)

미국배우에 열광하는 것 사대주의 아니다

미군폭행사건과 연결한 <시사만화읽기>는 편견

<미디어 오늘>의 4호 ‘시사만화 읽기’에 게재된 스포츠신문 5월 26일자에 실린 미국과 미군에 대해 바라보는 우리국민의 이중구조의 시각을 따끔하게 비판한 시사만화에 대한 글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한다.

미군이 한국인을 폭행한것과 부르스 윌리스의 한국방문에 열광하는 팬들을 대조시킴으로써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모순된 이중구도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국수주의쪽으로 편협된 비약이 아닌가 싶다.

부르스 윌리스라는 배우는 미국인이기에 앞서서 세계적 배우이고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수억의 팬들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영화인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의 팬이다.그렇다고 해서 나는 물론 우리 국민들이 주한 미군의 비윤리적 행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르스윌리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미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배우로서 좋아할뿐이다. 그것은 홍콩배우를 좋아하는 것이나 유럽 배우를 좋아하는 것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 그런데 그 두가지를 마치 모순된것으로 묶어서 비아냥거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 기사를 읽고 부르스 윌리스를 좋아하는 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나같은 사람을 사대주의자로 모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한국배우 강수연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대주의자라고 말할수 없듯이 한국인이 부르스윌리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김영태(하이텔 he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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