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룽장(黑龍江)성은 이름 자체가 범상하지 않다. 지명속에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넣는 것은 아주 특별하다. 더군다나 귀에 익숙한 ‘청룡’(靑龍)이나 ‘황룡’(黃龍)이 아닌 몸둥이가 검은 ‘흑룡’이라는 명칭을 쓴 것은 특이하다.

이것과 관련해 인상적인 경험을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2010년 8월 헤이룽장의 발원지 근처까지 가 본적이 있다. 하얼빈역에서 기차를 타고 꼬박 21시간 걸려 도착한 헤이룽장성 북단 모허(漠河)역에서 승용차로 2시간쯤 더 가면 러시아 국경을 타고 흐르는 헤이룽장의 원류(源流)를 볼 수 있다. 총길이 2,800㎞인 헤이룽장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우리 귀에 익숙한 아무르강(Amur river)이 바로 헤이룽장이다. 러시아어 ‘아무르’는 ‘사랑의 신’이란 뜻으로 ‘검은 용’과는 이미지에서 거리가 멀다.

당시 처음 본 헤이룽강 상류의 물밑은 검었고 굽이쳐 흐르는 물길은 저멀리 시선이 닿는 곳까지 뱀처럼 지그재그로 구불구불 흘렀다. 영락없는 ‘흑룡’(黑龍)의 모습이었다.

헤이룽장은 강 상류 일대에선 다싱안링(大興安嶺)이란 거대한 삼림지대를 통과한다. 길고긴 세월의 두께만큼 강바닥에 나뭇잎이 쌓이고 쌓여 물밑바닥의 색깔이 검게 변하면서 물빛이 검게 비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대평원을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검은 강의 형상은 ‘큰 뱀’,  즉 ‘용’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숨막히는 장면을 본 순간 ‘검은 용의 강’이라는 이름 외에는 달리 적절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물색깔이 황허(黃河)처럼 싯누런 황토빛깔이었다면 ‘황룡강’(黃龍江省)이 되었을 것이다.

헤이룽장은 사랑에 눈이 먼 흑룡이 변해 강이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오늘도 유유히흐른다. 전설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에 사는 용왕의 애첩 용녀를 탐내어 칼을 휘두르며 싸움을 걸었던 흑룡이 먼저 지쳐 누워버린 형상이 헤이룽장이라는 것이다.

도처에 하천과 습지 분포…기차가 지나가면 새떼들 날아올라 장관 연출

 

헤이룽장성의 북부지역을 기차로 여행하다보면 철도 양옆으로 광활한 습지(濕地)가 펼쳐진다. 기차가 습지를 통과하면 뭇 새떼들이 무리를 지어 하늘로 날아 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은 국가1,2급 보호 조류인 황새(白鸛), 검둥수리(金雕), 두루미(丹頂鶴), 원앙새(鴛鴦), 백조(大天鵝), 재두루미(白枕鶴), 참매(蒼鷹) 등과 동북호랑이 등 수십종의 야생동물들의 보고이다. 중국도 습지를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정하고 꾸준히 환경보호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지난 8월에는 전바오다오(珍寶島) 습지에 흰꼬리 바다독수리(白尾海雕)가 출현했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난 적이 있다.

 

특히 여름철인 7월 이곳에는 철새인 제비떼들이 난무한다. 어딜 적 그리도 흔하던 제비가 농약 오염으로 한국의 들판을 떠나 모두 만주벌판으로 이주했나 싶을 정도로 물찬 제비떼들의 힘찬 곡예가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곳에 습지가 많은 것은 성의 중북부에 광대한 ‘나무의 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동북-서남 방향으로 뻗는 다싱안링(大興安嶺, 길이 1200㎞, 폭 200~300㎞)과 서북-동남 방향으로 내리긋는 샤오싱안링(小興安嶺, 길이 500㎞) 등 양대 원시산림은 겨울에는 눈, 여름에는 비를 받아 사시사철 수분을 광활한 만주 평원에 흘려내려 비옥한 옥토를 만들어낸다. 이 평원을 헤이룽장, 넌장(嫩江), 우쑤리장(烏蘇里江)과 쑹허장(松花江)  등 4대강과 그 지류들이 휘감아 흐르면서 도처에 습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헤이룽장성 사람들은 이 비옥한 검은 땅을 부를 때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랑스런 손주들을 아끼듯이 다정하게 “우리들의 흑토지”(我們的黑土地)라고 부른다.

 

헤이룽장성은 농지가 성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하며 흑토, 흑개토와 저습지 면적이 성 전체 경작면적의 67.6%로 세계 3대 흑토지대 중 하나이다.

용은 풍년을 기원하며 탄생한 ‘복합적 가상동물’…“우르룽” 천둥소리가 이름으로

그러면 헤이룽장 사람들을 포함해 중국인들에게 ‘용’(龍)은 어떤 의미일까?

중국인들은 용을 신성한 영물로 여긴다. 중국 명나라의 유명한 약학서로 리스전(李時珍,1518~93)이 30년 걸려 완성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용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머리는 낙타와 같고 뿔은 사슴같고, 눈은 토끼같고, 귀는 소와 같으며, 목덜미는 뱀과 같고, 배는 큰 조개 같고, 비늘은 잉어같고, 발톱은 독수리와 같으며 주먹은 호랑이와 같다. 그리고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그의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것 같고 입가에 긴 수염이 있으며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고, 목 아래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에는 박산(博山:공작꼬리무늬같이 생간 용이 지닌 보물)이 있다.” <출처=네이버 포털사이트에서 인용>

“또다른 기록에는 용은 달리고 날 수 있으며 물속에 잠수가 가능하며 몸이 가늘게 굵게, 짧고 길게도 되며 몸을 숨길 수도 있고 강물, 바닷물 가리지 않으며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만능이다”라고 되어 있다.

실제 용의 형상은 아홉 가지 동물의 주요 특징을 복합적으로 짜집기한 모습이다. 그래서 용이 가진 내적인 능력은 무한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에서 용이란 가공의 동물이 탄생한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인 욕구에서 나왔다. 용은 과거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경제적인 바램에서 비롯됐다.

중국 학자들은 용이 중국 역사가 농경사회에 돌입하면서 창조된 일종의 허구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용의 탄생은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또다른 중국 기록인 <숴원>(說文)에서는 용은 평상시에는 물속에 있다가 절기중춘분에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서 곡식에 싹이 돋게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용’의 중국어 발음인 ‘룽’(龍)도 비와 연관되어서 탄생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여름철하늘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번개가 친 뒤에는 짙은 구름속에서 큰 황금색 뱀이 힘차게 춤을 추면서 단비를 내린다고 믿었다. 즉 그들은 “우르룽, 우르룽”거리는 천둥번개 소리를  “룽(隆)~룽(隆)~”으로 묘사했으며 그래서 ‘용’을 지칭할 때 같은 발음인 “룽”으로 부르고 쓸 때는 짐승의 등에 비늘과 꼬리가 달린 형상인 ‘龍’(용)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 중국어로 의성어 ‘우르릉, 꽈르릉’을 “룽룽”(隆)이라고 한다.

용이 바로 농경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최대의 곡창지대인 헤이룽장성은 안성맞춤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 ‘흑룡’을 끌어온 셈이다.

헤이룽장성은 황제의 땅…용은 8000년전 요하문명의 산물

헤이룽장성이 ‘용’이란 이미지와 어울릴만한 또다른 이유도 있다.

용은 봉건시대에는 황제의 상징이었다. 이전 중국 황제들은 요즘에 조폭들이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하는 용 문신을 몸에  새기기도 했는데 이후 용포에 용무늬를 넣는 것으로 대체된 것으로 전해진다. 용포 이외에 용안(龍顔), 용루(龍淚), 용궁(龍宮), 용좌(龍座), 용거(龍車) 등 황제가 사용한 물건에도 신성하고 위엄넘치는 ‘용’자를 반드시 넣었다.

실제 헤이룽장성은 역사의 고비마다 많은 나라가 피었다가 쇠락한 ‘황제의 땅’이다. 부여(扶餘), 발해(渤海), 금(金), 청(淸) 등 역대 왕조가 헤이룽장성에서 일어났다.

 

중국 최초의 용유적으로 공인된 신석기시대 ‘화하제일룡’(華夏第一龍) 유적이 헤이룽장 지역의 서남쪽 랴오허(遼河)지역에서 융성했던 요하문명(遼河文明)권에서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하제일룡’ 유적은 랴오닝성(遼寧省) 푸신셴(阜新縣)에서 발견된 흥륭와(興隆洼)문화 사해유적(査海遺跡)에서 발견된 것으로 역사가 8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용유적은 땅바닥위에 홍갈색의 균일한 크기의 돌덩어리(20t)를 평평한 땅바닥에 흩뿌려 길이 19.7m 길이, 폭 2m로 용의 형상을 예술작품 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요하문명은 이전까지 세계4대 문명중 하나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시원으로 삼고 자부심을 가져온 황하문명(黃河文明)보다 최소한 천년이상 빠른 사실이 1980년대에 알려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 학자들은 요하문명이 한민족문화의 원류와 깊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 국내에 존재하는 ‘용문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전문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한국도 임금이 입는 옷을 용포(龍袍),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했고 서울 한가운데에 용산(龍山), 마포구 용강동(龍江洞) 등 물과 가까운 지명곳곳에 ‘용’(龍)자가 들어간다. 또 사자성어로 화룡점정(畵龍點睛)과 ‘용두사미’(龍頭蛇尾)란 표현이 있고, 인간이 입신출세하는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또 내년은 임진(壬辰)년 용띠해다. 10천간중 검은색을 뜻하는 ‘임’(壬)과 12지지 중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결합해 60년만에 한번 찾아오는 ‘흑룡해’라고 한다. 이에따라 내년에 좋은 기운을 받아 출산을 하려는 예비부부들이 늘면서 비수기인 겨울 웨딩이 특수를 누린다는 보도를 봐도 한국인의 의식에 여전히 ‘용’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얼빈 시내에 용탑과 용그림 넘쳐….‘술병속의 용 한마리’ ‘용술’(龍酒)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헤이룽장’이란 단어는 청(淸)나라 때 등장한다. 1683년(강희 22년)에 새로 헤이룽장 장군할구(黑龍江將軍轄區)가 증설되면서 만주는 한족이 이주할 수 없도록 되었다. 1858년과 1860년 청 정부가 러시아에게 일부 땅을 넘겨주고 1932년에는 한 부분이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되기도 했다.  

1945년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면서 처음은 치치하얼(齊齊哈爾)을 수도로 서부지역만 차지하다가 1954년 하얼빈을 성도로 하는 쑹장성(松江省)과 합치면서 현재의 헤이룽장성을 이루게 되었다. 이에 따라 ‘헤이룽장’이란 이름은 청나라부터 3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헤이룽장성은 역사적으로 서주(西周)시대에는 숙신(肅愼)의 영토였으며 한(漢)나라때는 읍루(揖婁)와 부여(扶余)의 영토였다. 당(唐)나라때는 실위(室韋)와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가 설치되었고 발해(渤海)국이 이름을 떨친 곳이다. 명(明)나라 때는 여진(女眞)의 영토에 속하였다.

하얼빈 시내를 다니다 보면 ‘용’(龍)자가 들어간 간판과 힘찬 기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용그림이 유난히 많다. 헤이룽장성은 여전히 용들이 가득한 세계다. 하얼빈의 상징물로 서울의 남산타워에 해당하는 336m 높이의 철제 방송중계탑의 이름도 ‘용탑’(龍塔)이다.

헤이룽장성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술종류가 다양하다. 주로 도수가 높은 바이주(白酒)가 주종을 이루는데 룽장룽(龍江龍), 젠룽예(健龍液), 룽장바오(龍江堡), 전핀위촨룽주(珍品玉泉龍酒) 등 일일이 예를 들기도 숨차다. 특히 하얼빈의 고급주점에는 술병속에 ‘용 한마리’가 들어 있는 ‘용술’(龍酒)을 파는데 한 병 가격이 1천위안(약 18만원) 정도로 고가품이다. 외양상 한국의 ‘뱀술’과 모양이 비슷하다. 다만 한국의 뱀술은 실제 뱀이 들어 있지만, ‘용술’은 유리병 밑바닥에서 투명한 술을 헤치고 술뚜껑을 향해 승천하는 ‘유리로 만든 용’이 병속에 들어있다. 그 만큼 헤이룽장성 사람들은 일상 생활과 사고속에서 항상 ‘용’이 함께 하고 있다. 흔히 그들은 자신들을 지칭할 때 “용의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긴 “룽장런”(龍江人)이라고 부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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