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의 북한 영상자료에 대한 지나친 통제(본보 4호 보도)에 대해 한 방송사 북한담당기자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앞으로의 대안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필자의 요청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사례1> 지난 2월초 김정일 당비서가 1월말 열린 9차 군 선동원 대회에 참석,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화면을 제공받았다. 9시 뉴스에 김비서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이 대회에 참석했다는 관련 리포트를 내보냈다.

다음날 아침 안기부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만 쓰라고 제공한 화면인데 당초 제공의도와 다르다. 테이프를 다시 갖다달라”고 요구했다. “무슨 소리냐. 그러면 북한 관련 화면은 일반 뉴스에 전혀 쓰지 말란 소리냐”고 따지자 “아랫 사람이 무얼 알겠습니까”라는 답변.

<사례2> 평양시내에 있는 높이 1백70여 미터의 주체사상탑에 오르면 평양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찍은 화면이 방송사에 있다. 그러나 평양시가지 화면은 늘상 우중충한 옷을 입은 북한사람 몇명이 지나가는 모습이 방영된다.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평양시 관련 화면도 이 정도인데 다른 화면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두가지 사례를 통해 안기부가 어떤 의도로 북한 영상자료를 통제하고 있나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안기부는 냉전적, 체제경쟁적 관점에서 북한 영상자료를 통제하고 취사선택하여 방송사에 제공하고 있으며 이 영상조차도 세부지침을 내려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만약 이를 어기면 “더 이상 테이프를 주지 않겠다”는 위협을 듣기가 일쑤다.

북한관련 기사나 프로그램을 만들때 부딪히는 문제는 적합한 화면이 없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거금을 들여 관련 화면을 구해도 안기부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쓰지 말라면 못쓴다. 도대체 안기부의 시계는 몇시인가. 김부자 우상숭배와 주민이 못 사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국가안보에 유리하다는 말인가. 북한 주민의 일상 생활을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왜 주지 않는가.

근본적으로 북한 영상자료의 안기부 독점의 틀을 깨거나 최소한 이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사가 조선중앙TV를 직접 수신, 공개에 관한 자율지침을 만든뒤 이에 따라 수신자료를 이용하게 하는 안이 고려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집된 자료의 공개여부는 방송사내 심의기구나 방송위원회를 통하거나 혹은 관련 정부기관과 언론사, 시민대표도 참여하는 공개심의제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북한 영상자료가 갖는 ‘선전성’을 인정한다해도 이를 보고 그대로 믿는 국민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현재와 같이 안기부 담당자 몇명이 북한영상자료를 방송사에 제공할 것을 결정하는 구조는 국민의 알권리, 정보접근권에 대한 근본적 침해다.
이 문제를 공론화한 뒤 여론의 뜻을 따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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