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슬립스틱 코미디를 하고 있어요"

슬립스틱 코미디는 지난 9월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사진관에 수사관들이 들어 닥치면서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사회'라고 글자가 써진 모든 물품을 압수해갔다. 심지어 한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기념으로 가져온 ‘사회자' 명패까지 들고갔다. 그리고 수사관이 하는 말은 '당신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트윗 계정을 리트윗한 것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라는 것.

수사관의 말을 들은 그는 지난해부터 우리민족끼리를 팔로우하고 리트윗했던 당시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까지 나왔다. 북한 체제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조선로동당 반대'강령을 내건 사회당의 당원이기도 한 그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라니...웃음이 나올 수 밖에.

이 수상쩍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박정근(24)씨. 지난 9월 21일부터 경기지방청 보안수사대의 끈질긴 수사를 받았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리트윗하고 농담글 올렸다고 국가보안법 위반

압수수색 당시 경찰은 박씨가 리트윗했던 캡처자료를 보여주며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박씨가 운영하는 사진관과 자택을 수색했다.

경찰은 박씨의 트위터를 오랜 시간 동안 조사한 결과물을 내놨다. 경찰이 수사한 자료에는 박씨가 우리민족끼리 계정을 리트윗한 글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취득 반포'한 글로 둔갑됐고, 트윗에 멘션을 날렸던 글은 '이적 동조'한 글이 돼 있었다.

평소 박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 장소라든지 옥류관에서 새로 개발된 메뉴는 무엇인지 새로 나온 북한 가요 등 북한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북한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박씨는 우리민족끼리와 팔로우가 됐고 자연스럽게 관련 내용을 리트윗했다.

경찰이 주장하는 박씨의 이적 동조성 글도 일종의 농담 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김정은 체제로의 북한 세습에 대해 박씨는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사진관을 물려받았다며 자신을 '청년대장'이라고 빗댄 경우가 대표적이다.

농담성 글을 올린 대가는 컸다. 그는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경기지방청 보안수사대에 출석해 네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하루 5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받은 조사는 200여건이 넘는 글에 대해 박씨가 올린 게 맞는지, 그 내용에 동조하는지에 대한 일문일답으로 채워졌다. 수사관조차도 하루 조사를 마치면서 '드디어 끝냈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네 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오기도 생겼다. 박씨는 수사를 받은 중에서도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했다.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은 국가보안법 실적 쌓기에 바쁜 공안당국의 찔러보기식 수사에서 나온 것이며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폐해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여론몰이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박씨의 생각이다. 박씨는 압수수색 영장에서 본 '트위터는 팔로우가 4명만 되도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매체'라는 문구도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박씨는 경찰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수사하기 위해 '사찰 계정'을 만들어 자료를 수집하는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 박씨는 자신의 트윗글과 리트윗한 모든 글을 수집하고 있는 트윗 계정을 발견했는데, 경찰이 운영하는 트윗 계정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공안 당국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수사관이 가지고 온 압수수색 영장에는 박씨의 활동 경력이 적시돼 있었다. 박씨는 사회당 연대사업국 비상근직으로 일하면서 사회 쟁점이 된 두리반 철거 현장, 홍익대 청소 어머니 투쟁 현장, 희망버스, 등록금 투쟁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박씨는 "수사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하면 정치적 목적을 떠나 뭐하는 사람인지 규정부터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누가 납득할 수 있느냐"며 정치적 의혹을 제기했다.

리트윗 글 수사하다가 이적 표현물 소지죄 적용

특히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가져간 물품을 문제삼아 '이적 표현물 소지죄'를 적용해 애초 박씨의 수사가 무리한 수사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경찰이 압수해 문제삼은 책은 '사회주의 문화건설 이론'이라는 책으로 박씨가 친한 북한대학원의 한 교수로부터 받은 것이다.

박씨는 "통일 도서관에 있는 책을 교수가 제본한 것으로 북한 문화에 관심이 있어 빌려본 건데 이런 특수 자료를 구해서 관리를 잘못하면 위법이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어봐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교수와 책을 건네준 친구까지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자신의 주변인까지 수사를 받으면서 박씨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박씨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수사를 받은 것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경찰이 들이닥친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아 병원에서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타운간첩파티, 국가보안법을 조롱하다

지난해 8월 개설된 우리민족끼리의 트윗 계정에는 11월 기준으로 1500여건의 트윗이 올라와 있고 팔로우는 1만 6000여명에 달한다.

박씨는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국가보안법 비상식적인 적용을 몸소 체험하면서 느낀 점이다.

'뉴타운간첩파티'에 주인공으로 참여한 것도 자신을 소재로 써서라도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타운간첩파티는 박씨의 사연을 전해들은 김성일씨 등 주변 친구들이 기획한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고발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자 했다.

지난 3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뉴타운간첩파티는 국가보안법을 철저히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일례로 공연에서 인디밴드인 '밤섬해적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명이인이 사람에 관한 내용을 가사로 쓴 '김정일 만세'라는 노래를 불렀다. 퍼포먼스는 공연이 끝난 팀이 '대공분실'이라고 써진 공간에 갇히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파티 홍보도 국가보안법 위반의 경계가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조롱하는 방향으로 컨셉을 잡았다. 파티 기획단은 홍보 포스터를 만들면서 국가정보원의 자료를 차용했다. 국가정보원 사이트에 접속하면 '진짜 간첩을 찾아보세요'라는 게임이 있는데, '아이 러브 김정일'이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나온 남자를 포스터에 등장시키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4일자 신문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 20대 이번엔 "김정일 만세...간첩들아 모여라"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박씨와 뉴타운간첩파티의 불순함을 강조했다.

박씨는 자신의 이번 수사가 SNS를 검열하기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부당성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경찰 수사를 마치고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는 박씨에게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이다.

"SNS를 규제하겠다고 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검열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똑똑히 드러나고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 계정에 잠금 장치를 하라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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