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장비와 군사력은 결의에 차있는 상대방에겐 한계가 있음을 몰랐다. 전쟁에 질 것을 알고도 소련이 용공 기지를 얻을까봐 계속 병력을 전쟁에 투입했다.”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기용된 뒤 케네디 암살후에도 존슨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직을 맡아 월남전을 확전으로 이끈 맥나마라씨가 월남전 종전 20주년을 맞아 쓴 회고록에 나오는 중요대목이다.

<베트남전의 비극과 교훈>이란 이 회고록의 내용이 알려지자 미국사회는 벌집을 쑤신듯이 소용돌이 쳤다.
“어떻게 지는 전쟁에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을 죽음의 터로 내몰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한편에선 “용기있는 고백이다” “무책임하다”는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는 비판물결 속에 ‘언론의 책임론’도 등장하고 있다. “당시 언론이 백악관과 국방성이 던져주는 보도자료에 매몰돼 함께 춤을 춰 비극적 전쟁을 불질렀다”는 책임론이다. 이와관련, 미국 언론이 냉철히 추적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반성이 미국언론계 내에서 일고 있다.

언론은 ‘허구의 진실’을 스스로 진실로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같은 언론의 속성을 우리 언론에서는 늘상 볼 수 있다. 이 고질병은 요즘 한국통신노조등 올해 노동조합을 둘러싼 보도에서 다시 재발하고 있다.

‘노정갈등’ ‘노사대립’이 오히려 언론에 의해 부추겨지고 확대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언론계 밖에서는 권력의 언론조종 또는 압력때문이라고 보고 있으나 실은 언론의 속성에 더 큰 이유가 있다. 소위 기자들이 말하는 ‘기사감’이나 “상품성있는 기사라야 먹힌다”는 오랜 타성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시야를 가로 막아버리는 것이다.

노동계에 대한 언론의 타성은 정부와 사용자, 그리고 언론이 ‘재야노동계’로 규정하고 있는 민주노조진영관에서 나타난다. 첫째 민주노총준비위는 과격하고 둘째 민주노총준비위는 한국노총과 헤게모니 쟁탈전 때문에 ‘총파업’이라는 힘을 과시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 바탕위의 기사라야 상품가치가 있는 기사라는 태도다. 그러나 민주노총준비위는 산하 노조가 파업에 휘말리게 될 경우 조직이 심대한 타격을 받아 올 10월에 결성하려는 민주노총 발족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하면 분규에 휩쓸리지 않고 소기의 성과를 거둬 민주노총을 건설할 것인가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고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총파업으로 몰고 가는 민주노총(준)’으로 박혀 있다. 민주노총(준)의 아주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법적행동도 과격으로 알려진다. 한국통신노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통신 노조는 지난 29일 조합원들에게 “예전보다 더 친절한 대 국민서비스를 행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친절봉사로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의 넓음을 모두에게 보여줍시다. … 결단코 우리 국민의 생활에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확한 믿음을 주변의 모두에게 심어줍시다”는 간곡한 전문을 내보냈다.

한국통신노조의 이같은 심각한 고민과 사려깊은 행동은 언론을 잘 타지 않는다.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언론에 의해 다시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언론이 타성과 속성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간곡한 호소를 띄워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