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총선과 대선의 화두는 단연 ‘복지’다. ‘정의’나 ‘통합’, ‘심판’이나 ‘개혁’ 등의 단어도 물론 거론될 것이다. 그러나 복지와 복지국가만큼 모두가 입에 올리는 단어도 없다. 민주당은 ‘3+1정책’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자고 말하고, 새로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사회를 실현하자고 역설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마저 일찌감치(!) ‘생애맞춤형(한국형) 복지’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과연 복지국가 시대로 되돌아가는 게 가능할까? 또한 되돌아간다고 해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 서두의 질문은 언뜻 생소하게 들린다. “좌파에게 유토피아 사상을 빼면 뭐가 남는가?”라는 질문 역시 난감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한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정신’ 계승을 표방하는 국민참여당과 손을 맞잡고 ‘진보통합당’을 만든 지금 여기에서, 진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질문들이 더 어렵고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자칫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좌파 순혈주의자’라는 혐의를 사기에 충분한 그런 질문들을 거침없이 던진다. 반(反)자본주의를 말하고, 운동을 말하고, 또 유토피아를 말한다. ‘좌파 사상가 17인이 말하는 오늘의 자본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급진적이지만 풍부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의 오늘과 내일, 위기와 미래,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좌파’와 ‘잃어버린 유토피아의 꿈’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이 17개의 창(窓)을 통해 차분히 펼쳐진다.

   
 
 

대담을 진행하고 서문을 쓴 사샤 릴리는 “일부 좌파는 케인스주의적인 복지국가가 부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무시한 데서 나온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부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현재만 아는 사람, 또는 과거만 아는 사람일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던 케인스의 말을 인용해가며 “케인스주의적인 복지국가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을 대안이랍시고 내놓는 좌파 일부”를 비판하기도 한다. 1870년대의 위기,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위기에 이어 현재 ‘네번째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과거의 조건들을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자본주의와, 전세계적 금융위기다. 17명의 대담자들은 세계화와 금융화, 신자유주의가 이끌어 왔던 자본주의의 ‘최신 모델’이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판’ 자체를 뒤집지 않고 복지 확대나 금융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의 방식으로 위기를 우회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가 곧 좌파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좌파의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고민이 묻어난다. 어쩌면 오가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독자들 역시 각자가 품고 있는 고민과 질문을 만나게 될 지 모른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 문어체로 쓰인 질문과 대답들을 술술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사샤 릴리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무언가 처방을 내리려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나름의 방식을 배움과 동시에, 그 이상의 질문들을 떠안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여기가 다시 ‘해방’을 꿈꾸는 출발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본주의의 성장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올 겁니다. 지금부터 대안을 생각해봐야 하지요. 자본주의는 역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사회조직방식이었지만, 이제는 너무 낡았어요.” (데이비드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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