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가 야당 추천 위원의 반발을 뿌리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전담팀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통심의위원회 사무처 직제규칙' 개정안을 1일 강행처리 의결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개정안에 반대의 뜻을 밝히고 퇴장했고, 여당 추천 위원과 정부 추천 위원들만 남아 개정안을 처리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함께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관련 예산 2억1900만원이 전액 삭감될 정도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담팀 신설을 강행한 것이다.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 만드는 진짜 이유는?

개정안에는 통신심의국 아래에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은 SNS와 앱 상의 불법 정보를 심의하게 된다. 개정안에는 또 지상파 라디오 심의팀을 신설하고 종합편성채널을 심의하는 별도의 팀을 신설하도록 했다.

방통심의위는 "팀 신설은 보다 더 체계적으로 해당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직제 개편일 뿐"이라며 전담팀의 역할에 대한 의미를 축소했지만, 기존에 이미 SNS와 앱을 심의해왔으면서 굳이 전담팀을 만든 이유에 대한 의문은 남을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는 기존에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 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에 규정된 불법정보의 유형에 따라 불법정보팀, 음란 등 유해정보팀, 권리침해팀 등으로 나눠 심의를 해왔다. SNS와 앱 상의 게시물도 불법정보의 유형에 따라 각자 팀에서 심의를 해왔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의 불법 정보 유형에 따른 심의에서 매체별 특성에 맞게 심의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민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이번 개정안은 인터넷 심의에 대한 법적 논란이 일고 위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팀을 신설해 기존의 심의 권한을 강화해 못을 박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나는꼼수다'와 같은 팟캐스트와 SNS가 강력한 여론을 형성하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정치적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 유력한 매체로 떠오르면서 뉴미디어 전담팀을 신설하는 자체가 자기검열효과를 노린 방통심의위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SNS 규제 실효성 떨어져

팀을 신설하는 것 뿐 아니라 SNS 규제 자체 논란도 뜨겁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불법정보가 발견되면 SNS 계정 자체를 차단시키는 방법으로 규제해 왔다. 예를 들어 140글자 제한이 있는 트위터의 게시물에서 불법 정보가 발견되면 계정 자체를 차단시키면서 다른 합법적인 게시물까지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규제가 과잉 제재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트위터에서 불법 정보가 발견돼 계정을 차단했더라도 해당 트윗을 팔로우 하고 있는 사람의 계정에는 해당 게시물이 남는다. 계정 차단 효과가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방통심의위가 해당 게시물을 완전히 차단하려면 최초 게시물과 관련된 트윗의 모든 계정을 차단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치다. 만에 하나 해당 게시물이 있는 모든 계정을 차단하면 수많은 합법 정보까지 볼 수 없게 되면서 극심한 반발도 예상된다.

규제 이후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대통령 욕설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2MB18nomA'이라는 계정을 차단했지만, 이후 유사한 수십개의 계정이 나와 몸살을 앓고 있다.

사적 공간의 성격이 강한 SNS를 규제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재 국내 통신사업자가 운영하는 오픈마켓에서 유통되는 유해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는 '삭제', '이용해지'와 같은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과 같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현행법 상 '접속 차단'만 가능하지만 차단 기술이 없는 상태다.

3시간 넘는 회의...야당 추천위원 퇴장 속 강행처리

이 같은 논란을 반영하듯 전체회의는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여당, 정부 추천 위원만 남은 채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야당 추천 김택곤, 장낙인, 박경신 위원은 '신설팀을 만드는 것은 방통심의위 조직 자체를 파괴시키는 일'이라고 극렬히 반발하며 퇴장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 신설과 관련된 조항을 빼고 의결하는 ‘분리안’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수용되지 않았다.

박경신 위원은 "개정안을 표결강행처리하는 것은 방통심의위의 조직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표결강행시 "물리적으로 저지하거나 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박 위원은 위원장석의 의사봉을 들고 나가, 박만 위원장이 "잡아와"라고 외치는 등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택곤 위원은 "언론에서조차 방통심의위 조직 신설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 공포 패닉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실효성와 법률적 검토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동참할 수 없다"며 퇴장했다.

장낙인 위원은 "이 부서를 만들지 않더라도 규제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의혹까지 받으면서까지 이 부서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반발했다.

야당 추천위원들은 개정안 처리에 앞서 ''SNS 규제 불가' 내용을 담은 안건을 올려 반격에 나섰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야당 추천위원들이 SNS 규제 불가안, 명예훼손 및 모욕에 관한 내용을 심의에서 빼는 안, 불법정보 게시자가 심의에 참여해 반론권을 보장하는 안 등 3가지를 제시하고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당 추천위원들은 현행 SNS 규제안대로 가야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장낙인 위원은 "SNS와 같은 소셜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 관계를 확장시킨 것인데 국가기관이 이것을 들여다보는 자체가 문제"라며 "방통심의위가 그 짐을 안고 갈 필요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검찰과 사법부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권혁부 위원은 "SNS가 사적 공간이라고 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조폭들도 매스미디어가 아닌 방법으로 소통하고 활동하더라도 불법이라면 공안 차원에서 접근해 감시하고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김택곤 위원은 "'@2MB18nomA'이라는 계정을 차단해서 소기의 목적을 거뒀느냐"라고 묻고 "수많은 변종이 생겨 확산됐다. 이것이 바로 규제 위주의 페단의 극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야당 위원들은 전원 퇴장했다.

박만 위원장은 이번 신설팀 직제 개편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정부 비판적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혹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의 일각에서 이번 개편안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제가 정치적 중립을 가지고 한다는 뜻"이라고 강변했다.

정치권, 시민단체로 논란 확대...거센 후폭풍 예상

방통심의위가 정치적 의혹을 낳고 반발하는 여론 속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도 예상된다.

이날 민주당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넷여론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전담조직을 출범시키겠다는 박만 위원장의 공안검사적 본능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의 신설과 관련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이명박정권에 거슬리는 모든 글이나 사진 등에 대해 형식적 자진 삭제를 권고한 뒤 바로 계정자체를 차단시키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도 논평을 통해 "방통심의위는 국회의 결정마저 무시하고 전담팀 신설을 강행하고 있다"며 "사회적 여론보다 더 중요한 누군가의 의중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연대는 이어 "방통심의위가 사적 소통수단인 SNS까지 통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방통심의위 폐지여론에 기름만 붓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곽동수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 방통심의위의 결정은 주인공만 바꿔서 또다른 미네르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곽 교수는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이 신설되면 일종의 겁주기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 "유신시대의 곤봉과 수갑대신에 압력으로 입을 막겠다는 것인데 사람을 위축시키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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