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YMCA가 국가와 K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제 시민단체가 단순히 언론보도를 ‘수용’하는 위치에만 서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도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주체’적 입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이번 소송은 표면적으로 단일 시민단체가 소송주체로 돼 있지만, 법률상 임의단체인 관계로 소송주체로 참여할 수 없는 방송개혁국민회의(공동대표 강문규 등)가 대구YMCA와 함께 실질적인 준비를 해왔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언론보도에 대해 연대를 통한 조직적인 대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도 지닌다. 현재 방개혁에는 47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편파·축소보도에 대해 시민단체와 방송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의와 성명 차원을 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소송을 통해 보다 다양한 시민언론운동의 영역을 열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용적으로도 눈여겨 볼만한 ‘발전’이 있었다.

지금까지 헌법 제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은 단지 언론자유가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소극적 차원으로만 해석돼 왔다. 그러나 이번 소송을 통해 이들 시민단체들이 “이 조항에는 정보전달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과 사회공동체 통합을 완성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모든 사회구성원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질서의 성격도 포함돼 있다”는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때문에 국가권력이 부당한 방법으로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대구참사 보도를 제한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이며 ‘방송편성·제작·운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방송법에도 저촉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사에 대한 대응도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공영방송인 KBS가 공보처의 방송제한을 구실로 내세우지만 국민의 관심사를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방송은 공익사항에 관해 취재·보도·논평 기타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기여해야 하며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있게 수렴, 그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한 방송법 제4조 2항을 위배했다며 방송의 공익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민단체들의 소제기에 대해 법원이 시민단체를 보도피해 당사자로 인정할 지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의 소제기와 함께 KBS·MBC노동조합이 공보처장관을 집권남용과 법률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하려는 것과 낮방송 제한조항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원래 방송시간 제한은 방송국 허가장에 부가기재된 사항으로 70년대말 석유파동과 전력난이 발생했을 당시 전파낭비를 막고 전력수요를 줄이기 위한 단순한 행정지도 지침에 불과했다. 그런데 공보처장관이 이를 악용, 편성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 두 방송사노조의 주장이다.

한편 이번 손해배상 소송에서 KBS 2TV <추적 60분>이 대구참사 당시 현장관계자에 대한 취재와 인터뷰 내용을 누락시킨 행위에 대해 생소한 개념이지만 ‘기대권 침해’라고 배상을 요구, 그 판결이 주목된다.

방송관계자가 방영을 약속하고 한 취재내용을 이유없이 누락시킨 행위가 정신적 피해보상의 범주에 해당되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언론사와 취재원의 관계 및 의무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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