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년간 거주했던 하얼빈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다.

헤이룽장성은 면적이 45.4만㎢로 한반도의 2배보다 조금 더 넓다. 면적상 중국 23개 성과 5개 자치구중에서 6위이다. 인구는 지난해 3831만여명으로 한국보다 적다.

보통 헤이룽장성 하면 우리에게 별로 와닿는 감이 없다. 그러나 “만주 벌판!”하면 “아하~ 그곳”이라고 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낀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그 만주 벌판이 바로 헤이룽장성을 일컫는다.

만주 벌판하면 우리는 황량하고 매마르고 척박한 땅을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본 만주 벌판은 나무숲이 무성하고 물이 넘쳐나고 도처에 습지와 목초지, 끝없이 광활한 비옥한 대지가 펼쳐지는 곳이다. 헤이룽장성은 중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곡창지대다.

중국 최고의 쌀 품질 자랑…쌀의 명품 우창다미(五常大米) ‘가짜 쌀’ 파동
 

이곳은 특히 쌀, 콩과 옥수수가 유명하다. 목이버섯(黑木耳), 원숭이머리 버섯(猴头菇) 등 각종 버섯도 이곳이 특산지다. 또 우리에게 블루베리로 알려져 있는 란메이(藍莓)가 중국에서 유일하게 나는 곳도 이곳이다.

특히 쌀은 헤이룽장성 생산품을 중국에서 최고로 쳐준다. 하얼빈에서 동남쪽으로 120㎞ 떨어진 현급시인 우창(五常)시 일대의 쌀이 유명하다. 우창 쌀은 1835년부터 수전(水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본격적인 벼농사 기술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탄압을 피해 만주 벌판으로 떠나온 조선인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했다. 입쌀외에 찹쌀과 향미(香米), 흑미(黑米)도 생산한다. 1920년대 하얼빈 지역에 보급된 수전 벼농사 기법은 한전(旱田) 생산의 5배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발해(渤海) 유적지 부근의 조선족마을인 무단장(牧丹江) 샹수이춘(响水村)의 쌀도 우창다미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최상품으로 꼽힌다. 헤이룽장성의 쌀은 한국과 같이 알곡이 투명한 자포니카 쌀(중단립종)품종으로 중국 국가 영도들이 사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공납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토질과 수질, 일조량 등 기후조건이 벼농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쌀의 명성이 높다보니 중국 시장에서 가짜 우창다미가 수시로 유통돼 당국이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밥맛에 관한한 입맛이 까다로운 한국 교민들이 특히 좋아해 시장가격을 높인 것도 짝퉁 쌀을 유통시킨 원인이 됐다.

실제 우창다미로 밥을 지어보면 찰기와 윤기가 한국쌀과 유사하다. 어떤 이는 한국 쌀보다 밥맛이 더 있다고 한다. 중국 남방의 쌀은 종류가 달라 우리 입맛에 맞지 않다.

한국 전기밥솥은 최고의 선물…중국 쌀 가격 한국의 절반 이하

하얼빈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한국산 전기밥솥이다. 하얼빈 공항에는 쿠쿠 전기밥솥을 공항 카트에 싣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70~80년대에 일본을 다녀온 한국관광객들이 코끼리 전기밥솥을 즐겨 구입해오던 풍경과 유사하다. 한국에서 5만5천원하는 일반 중소형 전기 밥솥이 하얼빈의 전문점에서는 1천위안(한화 18만원)이나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 전기밥솥에 우창다미 쌀을 앉혀 밥을 해 먹으면 국내의 어떤 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구수한 향기와 맛이 난다.

가격도 저렴하다. 한국은 쌀 한포대가 20㎏이지만 중국은 25㎏이 한 포대다. 지역에 따라 쌀값이 다르지만 하얼빈 일반 슈퍼의 경우 한 포대에 100위안(1만8천원)에서 130위안(2만3400원) 정도 하며 최상급은 180위안(3만2400원) 이상도 있다. 쌀 1㎏당 소비자 가격만을 단순 비교할 경우 중국쌀 가격이 국내가격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필자가 먹은 쌀은 한 포대당 130위안 짜리로 중상품이었는데 한국의 밥맛과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중국은 이 쌀을 상품화하려고 벼르고 있다. 헤이룽장성을 비롯한 동북3성에서 고품질의 친환경쌀을 개발중으로 한국으로 본격 수입된다면 가격경쟁력에서 한국 쌀농업 시장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한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쌀은 대부분이 동북3성의 쌀이다. 2002년 7만여톤에서 2009년 16만여톤으로 수입량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관세화유예기간인 2014년까지 매년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의무수입량중 중국쌀이 미국, 인도 등을 제치고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CJ그룹, 중국의 베이다황(北大荒)과 쌀가공 합작사업…미래의 식량창고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업계인 CJ그룹이 동북 쌀에 눈길을 준 것은 3년전이다.

CJ는 2008년 6월 세계 최초로 미강(米糠, 쌀겨)에서 식품용 단백질 추출기술을 개발했다. 이 단백질은 알레르기에 예민한 유아들의 분유에 주요 성분이 될 만큼 무해한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CJ는 기술개발에 성공하자마자 두달 뒤인 8월 중국의 최대 곡물생산기업인 베이다황(北大荒,북대황) 그룹과 합자계약을 체결해 ‘베이다황CJ’를 설립했다. 베이다황CJ는 2009년 12월 총 700억원 가량을 투자해 쌀단백질 공장을 설립한 뒤 연간 1200톤을 생산하고 있다. 또 현미유(油), 식이섬유 등도 연간 1만4천톤씩 생산하고 이후 콩,옥수수 등 기타작물에 대한 제휴도 강화할 계획이다. 당시 CJ그룹의 투자는 조선족인 하얼빈개발구 외자유치국 김계호 국장의 역할이 컸다.

베이다황그룹은 중국 정부기구인 헤이룽장성 농지개간총국이 소유한 곡물 재배 전문기업으로 자산규모가 64억달러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곡물 생산기업이다.

하얼빈에서 차로 3시간을 달리면 웅대한 삼강평원(三江平原) 들판이 나타난다. 삼강평원은 세 개의 강, 즉 헤이룽장(黑龍江,2,900㎞), 우수리장(烏蘇里江, 890㎞)과 쑹화장(松花江, 939㎞)이 헤이룽장성의 대지를 종과 횡으로, 거미줄처럼 수많은 지류로 휘감으면서 빚어낸 대평원의 이름이다. 삼강평원은 오랜 세월동안 세 강이 범람하면서 만들어낸 충적 평원지대다. 이곳은 토심이 깊고 비료가 필요없을 정도로 유기물의 퇴적량이 많은 흑토지대다.

흙색깔도 한국과 다른 검은 색으로 이 흙을 보고 중국인들은 ‘헤이투디’(黑土地)라고 부른다. 구릉지대 하나없이 거침없는 삼강평원을 베이다황그룹이 관리한다.

‘베이다황’ (北大荒)이란 ‘북쪽의 큰 황무지’란 뜻으로 베이다황그룹이란 명칭은 여기서 따왔다. 베이다황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습지와 잡초가 뒤덮힌 황무지였다. 중국 정부는 1958년부터 인민해방군 15만 병력과 지식청년 5만명 등 20만여만명을 투입해 거친 황무지를 비옥한 옥토로 일궈냈다.

삼강평원은 남한 면적의 절반이 넘는 5만4300㎢(약 164억평)이며 미국, 우크라이나와 함께 세계 3대 흑토지로 꼽히고 있다. 양곡 생산량은 1,132만톤으로 연간 매출액이 40억달러에 달한다. 베이다황그룹이 보유한 농장만 103개가 있으며 그룹 산하에 곡물 재배와 관련된 215개 기업 및 18개의 R&D(연구개발)단지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광활한 만주벌판의 지평선…20년전 한국과 인연 놓쳐

기차를 타고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면 광활하게 뻗은 지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평원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삼강평원(三江平原)은 약 20년전 한국과의 인연을 놓쳤다. 1992년 2월 농림부장관(당시 농림수산부장관) 출신인 장덕진 대륙개발회장이 3억평 규모의 농지 공동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자금사정으로 개발이 중단된 바 있다. 장덕진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억평 규모의 땅은 헬기를 타고 둘러보아도 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눈을 헤치고 만져본 흙은 새까맣게 기름져 개발의 가치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통일 후에라도 한반도가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은 만주뿐이란 생각을 늘상 해 왔습니다…경제적 소득이외에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한국의 기업들이 중국 동북부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경향신문 1992년 2월 10일자 9면 인용>

당시의 계획은 낮은 개발비와 인건비로 콩과 밀 등을 대규모로 경작해 중국과 절반씩 처분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장덕진 회장의 말대로 CJ그룹이 약 16년뒤 삼강평원에 진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하얼빈, 창춘(長春) 등 동북지역을 방문해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것도 만주벌판이 최대 곡창지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만주 벌판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또다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대규모 곡창 지대를 한반도의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 경제적, 민족적, 외교적 측면에서 만주 벌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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