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SK텔레콤에서 제공하는 단말기를 천여 명의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과정에서 한 30대 개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규모만 천여 명에 이르고 피해액도 수억 원에 이른다.

KT와 SKT는 계약 관계상 보상 책임이 없고, 자사 역시 피해 당사자라는 입장이다. 사기를 당한 소비자들은 KT와 SKT 측에 민원을 제기하고, 사기 피의자와 단말기 판매점, 개통 대리점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가 늘어 사건이 커지자 KT와 SKT 개통대리점은 소비자에게 보증금 20만~25만원을 보상하기로 한 내용의 '합의서'를 제시하면서 "민형사상의 소송이나 이를 제기하지 아니할 것을 확약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있다.

김씨 사기 행각의 전말

사건은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수천명 고객들의 보증금을 빼돌리면서 발생했다.

김씨는 용산에 위치한 ㄱ단말기 판매점의 실장이란 명함을 가지고 소비자들에게 접근해 스마트폰 개통 시 귀가 솔깃한 조건을 제안했다.

김씨가 제안한 조건은 SKT의 갤럭시 S1,S2, KT의 아이폰으로 단말기를 변경하면 기존 핸드폰의 위약금 발생시 15만원을 보전해주고, 2년간 매월 전체 단말기지원금을 입금시켜주겠다는 것. 단, 20만원 보증금을 입금시키고 3개월 후에 반환해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거의 공짜로 다름없는 제안에 소비자들은 쉽게 현혹돼 20만~25만원을 의심없이 김씨가 알려준 통장에 입금시켰다.  

하지만 김씨는 위약금 15만원 지원, 단말기 대금 지원은커녕 보증금까지 가로채고 연락을 끊었다.

문제는 이 같은 피해자가 수천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김씨에게 단말기 개통 조건을 들은 소비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면서 그 피해 규모가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피해자 중에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소비자들도 많은 것으로 파악돼 전체 피해 규모가 수천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인 장아무개(35)씨는 김씨의 계약조건으로 가족 8명 모두 스마트폰을 개통시켜 총 185만원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 위약금 지원액, 단말기 대금 지원액 등을 합치면 그 피해액은 훨씬 늘어난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통해 지인이 피해를 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 규모는 수천 명, 피해액은 수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김씨가 일을 했던 판매점과 개통대리점, KT와 SKT는 사건을 덮기 급급한 모습이다.

급기야 지난 8월에는 13명의 피해자가 용산 경찰서에 ㄱ판매점과 김씨, 개통대리점을 상대로 사기를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ㄱ판매점 측은 피해자들에게 '김씨의 가해 범위가 너무 넓어 수백명의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없다'며 김씨를 고소하라는 입장이다. 이 판매점 관계자는 "우리도 용산 경찰서에 김씨를 고소했다"고 전했다.

개통대리점도 피해 호소...보상 내용은 중구난방

판매점과 계약을 맺은 개통대리점 측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소비자들의 보상 문제를 법적 소송 없이 하루빨리 마무리하려는 모습이다.

KT와 계약을 맺고 개통을 대리하고 있는 이한전자 측은 300여명 정도의 피해자를 추정하고 있다면서 김씨와 판매점을 상대로 사기 혐의로 고발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한전자 관계자는 "개통에 필요한 정상적인 서류를 건네 받아 개통을 허락했다"면서 "그런데 지난 10월에야 KT 민원실로 클래임이 들어오면서 사기 행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SKT와 개통 업무 계약을 맺은 한유엘엔에스 서울 대리점도 피해 소비자에게 "SKT에서는 고객들에게 보증금 납부요구와 다단계판매 그리고 방문판매 영업을 하지 않으며 김씨가 사람이 판매점의 정식 직원이라고 속여 여러 고객에게 다단계 사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저희 대리점도 김씨에게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입장이기도 하지만, 고객들이 당한 피해를 도의적인 차원에서 보전해 드리려고 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한유엘엔에스 대리점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피해 금액이 다르고, 금액 산정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재 절반 정도 고객분과 합의를 봤고, 절반 정도 합의가 남아있다. 판매점 측을 고소하고 싶어도 정확한 금액을 산정할 수 없어 소장만 준비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도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고 있다. 개통대리점 측이 단말기 대금 보상을 지원했다가 반환을 요구한 사례도 드러났다.

피해자 장씨(35)는 "개통 대리점이 단말기 지원 전액을 완납해 줬는데 사기 사실을 알고 찜찜해서 해지하자 다음 달부터 단말기 대금을 일괄 처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SKT로 개통한 피해자 박모씨(37)도 "KT 쪽에서는 단말기 대금 지원 금액을 보상해준다는 얘기를 들었고, SKT로 개통한 피해자 중에서도 소송을 걸어 단말기 대금 일부 지원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전자 측은 이와 관련해 "처음에는 사기 사건을 알지 못하고 고객들의 클래임이 들어와 판매점 측의 서류 실수로 보고 단말기 대금 전액을 완납해 줬다"고 해명했다.

양측 대리점은 자신들도 피해 당사자라는 입장이지만 소비자에게 제시한 합의서 내용이 일치하는 등 사건을 축소하고 피해 보상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말을 맞춘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 KT 개통대리점과 SKT 개통대리점이 피해자에 보낸 '합의서 및 부당 이득자 고소이행 확약서'는 처음부터 문구하나까지 똑같은 내용이다.

이한전자 측은 "SKT와 개통 계약을 맺고 먼저 피해를 입은 대리점 측이 우리는 법적 책임이 없는데 왜 KT쪽에서 단말기 대금까지 지원하느냐'라면서 항의해 SKT 대리점의 도움을 받아 같은 합의 내용에 따라 보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KT 홍보실 상황 파악조차 못해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개통 대리점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취재가 들어가자 KT와 SKT는 부랴부랴 입장을 밝힌 모습이다. 

KT 홍보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사건 개요를 전해 듣고 '대리점 측도 그렇고 저희도 피해자이다. 서류상으로 김씨가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것도 없는데, 피해자들이 여러명이 발생해서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SKT 홍보실 측도 "올 6월부터 문제가 돼서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개통 대리점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정상적으로 대리점에 방문해서 계약을 해야지 개인이 방문하거나 개인이 쓴 계약서를 가지고 계약을 하는 것에 주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양사의 입장에 소비자들은 김씨가 제시한 조건에 현혹된 것은 맞지만 KT와 SKT 두 회사의 브랜드를 믿었기 때문에 계약을 맺었다고 호소한다. 법적 보상 문제를 떠나서 한 개인이 소비자 뿐 아니라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해서 사기를 친 셈인데 양사 모두 고객의 피해에 대한 도의적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과 만난 피해자들은 수차례 KT와 SKT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본사 내에서 처리 지침 결정이 안 내려왔다’는 답변을 들어야했고, 최근에야 보증금 보상 결정이 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호소했다.

보상 결정은 났지만 소비자들은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개통대리점 측 확약서 내용에 대해서도 소비자를 무시한 대기업의 횡포라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김씨-판매점-개통대리점-KT, SKT'와 관련된 한 사람의 황당한 사기행각에 소비자만 최대 피해자로 남은 셈이다.

지인 20명에게 김씨의 계약조건을 소개시켜줬다는 피해자 정모씨는 "일단 피해를 호소한 사람에게 한해서만 보증금을 보상해줄 테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아니냐"면서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분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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