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웃고 있는 아랍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아랍=폭력=테러리스트 등 이런 도식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같은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요리스 루옌데이크라는 네덜란드인이 던진 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면 우리는 이미 저널리즘 쇼비즈니스에 빠진 한낱 소비자일 가능성이 높다.

'저널리즘 쇼비니스를 뒤집는 아랍 특파원 표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웰컴투 뉴스비즈니스'는 미디어가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왜곡하는지, 기자들은 왜 똑같은 기사를 생산하는지 등 미디어 산업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지은이가 이 같은 불편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저널리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 CNN 등 서방의 유력 방송사들의 특파원들이 아랍어에 미숙해 통역사를 둔 반면 아랍어를 할 줄 알며 아랍 친구들을 두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은 지은이가 5년 동안 이집트에서 이라크까지 오간 기록을 담고 있는데 저널리스트의 길에 들어서면서 미디어에 대한 상식이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지은이는 "나는 특파원이란 그 순간을 기록하는 역사가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중요한 일이 터지면 사건을 추적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보도하는 사람 말이다"며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추적하러 가지 않았다. 취재는 진작에 다 되어 있었다. 내가 현장에 가는 것은 단지 그 내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

고국 네덜란드의 편집국에서도 아랍세계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저 경쟁언론사들의 보도를 보면서 "우리에게는 이게 왜 없지"라고 묻고, 편집자들은 모두 동일한 출처에서 사진과 정보를 받아오고 보도자료를 번역하고 재구성한다. 특히나 지은이가 속한 보도팀은 CNN, BBC, 뉴욕 타임스와 같은 미디어가 공급한 뉴스 자료에 의존했다.

지은이는 "그들의 특파원이 아랍세계를 잘 알고 있고, 제대로 보고 있다는 가정 아래 그렇게 한 것인데 알고 보니 그들 중 많은 수는 아랍어를 할 줄 몰랐고, 할 줄 안다고 해도 아랍어로 대화를 하거나 지역 미디어의 보도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 웰컴투 뉴스비즈니스
 

지은이가 미디어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긴 하지만 자신도 저널리즘 쇼비지니스에 경도돼 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카이로 대학에서 만난 이집트인 친구 이마드와 재회한 경험을 얘기한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이집트 나일강에 있는 '진짜 레스토랑'에서 주스 한잔을 마셨는데 아미드는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값을 치렀다. 과일 주스 한 잔 값은 아미드의 한 달 월급의 절반에 해당된다.

지은이는 "아이가 끔찍한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고 500km 떨어진 곳에 병원이 있어 거기에 가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에게 돈이 없다. 그게 바로 가난"이라며 이집트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가난에 대해 아무 기사도 쓰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정상회담, 공격, 폭격, 외교정책 등 자신이 다룰 기사 목록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미디어 전쟁이 시작되다'편에서는 용어 선택의 문제로 한쪽으로 기운 미디어의 실상을 보여준다.

"아랍 세계에서 나는 이미 편파적인 언어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지은이는 무슬림은 근본주의자로 불리지만 그들과 동일한 크기의 종교적 확신을 지닌 미국 대통령 후보는 서구의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복음주의자, 혹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보도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미국인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해서 기독교가 진출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면서 "하지만 코란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는 무슬림이 우두머리가 되면 서방의 수많은 해설자들은 이슬람이 진군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국민에게 폭력을 쓰는 팔레스타인은 '테러리스트' 이지만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폭력을 쓰는 이스라엘인은 매파 혹은 강경파로 불린다.

지은이는 중립성을 잃은 용어의 문제 말고도 이스라엘의 해석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칼날을 들이댄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폭탄을 쏟아부을 때 하는 일은 관련 자료를 기자들에게 제공하고 통역사까지 붙여준다. 특히나 팔레스타인이 자행한 만행을 담은 '블랙북'을 제공해 사건을 희석화시킨다.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는 기자가 확인한 사실에 대해서 '오프더레코드'의 전제를 달고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 수 있는 유명 인사의 존재 자체를 경계한다"

지은이는 "매일매일 제공되는 뉴스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각국이 주는 자료에 의존해야 하니 팔레스타인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뉴스는 이스라엘의 시각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은 또 다시 '유대인들을 죽인'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문제는 미디어다.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를 바로잡지 못하면 미디어가 생산한 이미지에 둘러싸인 세상만을 볼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CNN이 하는 거짓말은 네덜란드 같은 작은 나라의 정부가 거짓말을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거짓말은 뉴스가 되고 CNN의 거짓말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어느 한 미디어가 과장하거나 거짓말하다가 발각되면 다른 미디어들은 거짓말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체를 다룰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은이의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울림이 꽤 크다. 시장 점유율의 과반을 독점한 신문들이 방송사를 소유한,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떠난 사회를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거짓을 일삼는 미디어 매체를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이란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다시 묻는다. “당신은 웃고 있는 아랍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웰컴투 뉴스비즈니스 / 요리스 루옌데이크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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