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클럽이 서울시장선거 주요 후보자를 초청, 그 소견을 듣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고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도 클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시민들이 후보자들의 자질을 직접 점검해 볼 기회는 매우 제한돼 있는 형편이고 그런점에서 텔레비젼으로 전국에 방영되는 이 토론회는 비록 화면으로나마 유권자가 후보자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세후보 초청토론이 끝난 지금 그 결과는 기대에 멀리 못 미쳤을 뿐 아니라 몇가지 문제점도 노출됐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관훈클럽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엘리트집단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유독 이 토론회가 텔레비젼으로 전국 방영되는 특혜를 누리는 것도 불편부당의 언론 정도를 선도하는 이 단체의 오랜 전통과 특수성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신뢰와 기대에 비해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패널들은 질문을 준비하는데 충분한 시간과 검증을 갖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질문은 즉흥적인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은 후보에 따른 ‘질문의 차별화’다. 이것은 편파적이란 혐의를 면하기 어렵다.

야당후보에게 사상문제를 거론한 것과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답변을 유도하는 성격의 질문을 몇가지 던진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질문은 사안의 성격이나 경과된 시간으로 볼 때 거론할 가치도 의미도 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위한 질문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이 통한다면 아마 분단현실을 살아온 사천만이 모두 혐의자로 등장할 것이다. 군사정권 시대의 이 뼈아픈 구태를 이런 장소에서 다시 답습한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없다.

그런가 하면 여당후보에게는 계속해서 ‘반가운 질문’을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교육시장론과 공명선거 제안 등 유리한 선거 아이디어까지 제공하고 있다. 전교조사건과 관련, 그 수습에 얼마나 애썼나 하는 답변까지 유도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질문의 차별화가 질문자의 의도한 바가 아니고 단순한 실수라 하더라도 그 자리의 성격으로 볼 때 결코 가벼운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이력과 정치적 입지를 캐묻는 것은 그의 도덕성을 점검하자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본질을 캐기보다 가십성 질문에 치중한 감이 없지 않다. 누구와 어떻게 인연이 맺어졌는가, 경선 결과로 미뤄볼 때 모씨의 영향력이 감퇴됐다고 보지 않는가. 대체로 이같은 가십성 질문들이다.

후보마다 질문이 조금씩 달랐지만 이같은 지엽말단적인 질문들이 홍수를 이뤘다. 이미 주요정당의 후보로 결정돼 그 자리에 등장한 인물인데 후보가 되기까지의 절차나 과정에 지나치게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것은 제한된 시간으로 보나 이 토론의 취지로 볼 때 비생산적인 태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질문내용이 가십성으로 흐르다 보니 일부 패널에게서는 신중성이 결여된 장난끼마저 느껴졌다.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고 활기있게 끌어가는 것과, 쇼에서 보듯 장난끼를 드러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치는 쇼라고 하지만 이 자리는 최소한의 품위와 권위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용어사용에도 적지않은 문제가 따랐다. 이것은 자질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정계획과 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질문내용이 지나치게 정형화되고 요식화된 감이 없지 않았다. 교통문제, 지하철 건설에 따른 시의 부채문제, 그린벨트 문제, 시청공무원 인사문제, 여성문제 등의 질문이 대종을 이뤘는데 특히 교통문제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교통문제 해결이 오늘날 가장 시급한 문제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에 교통문제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선시장이 교통문제만 해결해도 성공이라는 말은 있으나 이것은 다분히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시정에 관해 더 다양하고 미래지향적인 질문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가령, 서울의 도시미관과 관련, 시장후보자가 어떤 비젼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 생각을 들어볼 수도 있었다. 도시미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간판문제 하나만 해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한 후보의 구체적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이 토론회가 후보의 차별화를 이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신문에 수차례 등장했고 누구나 알고있는 요식화된 질문만을 남발함으로써 후보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 각 후보들은 서울이 안고있는 큰 문제들에 관해 서로 약속이나 한듯 대동소이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그 해결책마저 새로운 것은 없었다. 이같은 결과는 질문의 단순성에 그 책임이 있다.

지방선거에 있어 공개적 후보검증 장치를 가동해 본 것은 이번 관훈토론회가 첫번째 시도였다. 이 토론회는 우리 정치발전의 수준을 여러 측면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상징적인 자리인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많이 있을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이 토론회가 우리 정치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아주 기능적이고도 거울처럼 공정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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