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의 인터넷 규제는 국제 사회와 비교해 어느 정도일까?

방통심의위가 24일 신라호텔에서 '불법 유해정보 유통방지 국제사회 공조방안 모색을 위한 컨퍼런스'를 열었지만 우리나라가 과도하게 인터넷을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만 부각시키는 꼴이 됐다. 컨퍼런스에 참가한 각국 방송통신 규제기구 초청 인사는 '인터넷 규제는 자율규제를 장려하고, 규제 대상도 아동 포르노 그래피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물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사회 인터넷 규제 실태는?

아니싸 제글라쉬 국장(프랑스 시청각고등평의회)은 발제문 발표에서 "인터넷 규제는 하지 않는다. 블로그나 UCC 등 비전문화된 콘텐츠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며 "불만을 제기할 경우 법원으로 넘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문재완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방통심의위의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에 "인터넷은 규제 못하는 영역이 아니다. 심의 기구 입장에서 피해자에 대해서 적극 심의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아니싸 제글라쉬 국장은 하지만 "프랑스 사회는 아직은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면서 "EU 지침에 따라 일반적인 인터넷 규제 원칙이 적용되지만 회원국들은 자체적으로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 프랑스 같은 경우 규제는 못하고 자문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아니싸 제글라쉬 국장에 따르면 프랑스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경우 불법 정보를 차단하거나 삭제할 수 있지만 자발적 규제를 권장해 따른 것이다. 2011년 인터넷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인터넷 전문가들로 구성된 디지털 국립 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정부에 자문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규제 대상 콘텐츠는 주로 EU 지침상의 윤리규정과 청소년 아동 보호 규정을 어기거나,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질서를 헤치는 경우가 해당된다.

호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주의 경우 지난 2005년 방송통신상의 소비자와 이용자 보호, 통신산업의 자율규제와 경쟁촉진을 위해 방송청과 통신청을 통합해 설립한 통신미디어청을 규제기구로 두고 있다.

호주 통신미디어청은 방송서비스법에 따라 콘텐츠 내용의 등급을 분류해 주로 청소년 아동 보호를 위한 콘텐츠 유해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호주 통신멀디어청이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을 심의해 처리한 건수는 2만여 건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는 지난해 심의건수 4만 5758건에 달했고 삭제, 이용해지,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 건수는 4만1103건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부터 9월까지 심의건수는 4만 2137건이며 이중 시정요구 건수는 3만 926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간 호주의 심의 건수보다 1년이 채 안된 기간의 심의 건수가 많은 셈인데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규제자판기화되고 되고 있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방통심의위는 대통령 욕설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SNS 계정 자체를 차단하는 등 정치적 표현까지 막아 검열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3일 신라호텔에서  불법 유해정보 유통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방안 모색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인터넷 규제 대상은 청소년 보호 유해물에 초점

우리나라는 규제 대상의 범위도 지나치게 넓다.

국제 사회는 아동 포르노물이나 마약과 같은 명백한 범죄 등에 초점을 맞춰 자율규제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호주는 명예훼손 등과 같은 게시물에 대해서는 아예 조사를 하지 않고 신고된 청소년 유해 정보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고 있다.

말레이사아는 1998년 제정된 방송통신융합 관련 법안을 근거로 설치된 방송·통신·전자·우편 서비스 및 콘텐츠 등을 규제하는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산업포럼'의 민간 자율기구를 통한 자율규제에 주력하고 있다. 산업포럼에는 콘텐츠 제공업자, 인터넷 서비스 업체, 사이트 회원사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도 참여하고 있다. 산업포럼은 음란, 폭력, 비속어, 아동 포르노 게시물 등의 온라인 지침 기준에 따라 신고를 받고 불법유해 정보가 발견되면 자체적으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싱가폴은 개인 웹사이트와 블로그, 이메일 등을 제외한 모든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 자동으로 '클래스 라이센스'라는 사업권을 부여된다. 클래스 라이센스을 얻으면 인터넷 행동 강령을 따라야 하는데 청소년 유해 정보, 폭력성 정보, 범죄적 요소가 있는 정보 등이 발견되면 사업권까지 박탈시킬 수 있다.

일본은 철저히 민간자율규제를 통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정보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제정된 필터링 의무법에 따라 인터넷 서비스 업체는 청소년에 유해한 정보를 거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오쿠보 타카요 인터넷연합 연구위원은 "불법정보라는 것은 외설, 불법 포르노, 아동 성 이미지에 관련돼 있고 유해 정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명시적으로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전했다.

일본 인터넷연합은 명예훼손과 같은 게시물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지만 일본에서 명예훼손은 불법이 아니라서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에만 당국에 전달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방통심의위는 개인 명예침해 표현물까지 심의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정보통신망법상의 비방 목적의 유무, 공익을 위한 표현의 여부, 표현물의 내용과 현실과의 합치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법적 논란이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병성 목사는 시멘트 회사들이 유해한 건설 폐기물을 시멘트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폭로했는데 명예훼손 행위로 방심위의 심의를 받고 해당글이 삭제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국가인권위는 방통심의위의 명예침해 행위에 대한 심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컨퍼런스 자유토론에 참가한 박경신 방통심의위원은 "우리는 명예훼손죄, 모욕죄, 진실 왜곡 죄 등 여러가지 법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합법 콘텐츠는 우리나라에서 불법 콘텐츠가 될 수 있다"면서 "(법에 따라)포괄적으로 콘텐츠를 보기 때문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어느 나라는 규제에 대한 가이드 라인만 제공하고, 대부분은 나라는 아동 포르노 그래피에만 포커스를 둔 것으로 보인다"면서 방통심의위가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박 위원은 미디어오늘과 만나 "다른 나라는 철저히 아동 포르노 그래피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자율규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오늘 컨퍼런스를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 컨퍼런스에는 호주 통신미디어청, 프랑스 시청각고등평의회, 말레이시아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 싱가포르 미디어개발청, 일본 인터넷협회, 국제인터넷핫라인협회, 아시아․태평양인터넷핫라인네트워크 , 대만 인터넷내용등급진흥재단 등 해외 6개국 6개 기관 및 2개 국제기구가 참여했다.

한편, 박만 방통심의위 위원장은 발간사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와 악성댓글 등 권리침해 정보 등은 우리 삶을 무한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며 "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진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불법 유해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각국 단위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으며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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