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두 발로 내려온 지난 10일, 쌍용자동차의 한 희망퇴직자 아내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19번째 사망자였다. 그리고 이 날은 자살로 숨진 18번째 희생자의 발인 날이기도 했다.

309일 만에 무사히 해결된 한진중공업과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를 외치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계에 안겨준 희망 뒤에서, 정리해고 2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은 비극적이었다.

이창근 희망버스 대변인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기획실장이었다. 때문에 그는 한진중공업의 희망과 쌍용자동차의 절망을 가장 가까이 느끼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는 날, 쌍용차 희망퇴직자 가족의 비보를 접했고 이 순간에 대해 “눈물의 색이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이창근 대변인과 21일 오후 2시 민주노총에서 약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오른지 309일 만에 한진중공업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끝내고 땅을 밟는 장면을 보며 많은 노동자와 국민들이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온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한진중공업 합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사람들이 간절히 바랐던 것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어떤 이견도 없이 기쁘고 환영한다. 희망버스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도 기쁘게 생각한다.

합의내용에 대해서는 정투위(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 동지들, 한진중공업 지회, 금속노조, 제정당, 김진숙 지도위원의 입장에 결이 좀 다를 것 같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물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조력자 역할을 했던 정당이 권고안을 조급하게 만들어 실제 상황도 조급하게 몰아간 것 아닌가라는 점이다. 각 주체들의 의견과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는 것 보다 다소 일방성을 가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권고안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국회가 민의를 수렴하는 장이니 만큼, 이 지점은 국회가 성찰할 부분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몇 번이나 자살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럴 때 마다 트위터나 희망버스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희망버스는 시민들의 연대라는 점에서 기존 노동연대와 차이가 있는데 희망버스의 역사적 의의를 어떻게 보는가? 또한 향후 희망버스가 확장될 수 있는가?

"종합적 평가는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짧게 말하면 희망버스의 등장은 그동안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이라 본다. 가깝게는 쌍용차 투쟁이 있고, 멀리가면 기륭전자일 수도, GM대우의 2001년 정리해고 투쟁일 수도 있다.

희망버스는 마음의 결사체다. 참가자들은 영도에 가고 싶었고, 연대하고 싶었고, 스스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희망버스는 그 공간을 연 것이다. 그 공간을 열기까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굳건히 웃으면서 크레인을 지켰던 것과, 한진중공업 동지들이 싸워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SNS나 소셜테이너들의 적극적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노동계에 외부세력의 탄압이 심했고 그것이 극에 달한 것이 쌍용차였는데,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그 장막을 걷은 것이 바로 김여진과 날라리로 표현되는 시민들의 참여다.
 
희망버스의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 희망버스는 이제 팔부능선 정도에 온 것 아닌가 생각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있던 CT-85 크레인을 보면서, 아직 물이 끓지 않고 85도 정도에 도달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탄압과 비상식적 행태에 희망버스는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에는 노동현안을 중심으로 희망버스가 모였지만, 희망버스에 함께 했던 퀴어, 장애인, 인권, 종교, 학생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희망버스처럼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고 그렇게 경험은 축적되고, 이로부터 한국사회는 건강하고 활기차게 요동칠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와 안주하지 않으려는 건강한 시민들의 싸움이다."

- 5차례의 희망버스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기억이 많이 남는다. 1차 희망버스 때 공장 담을 사다리를 통해 넘어갔을 때의 희열은 남달랐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당시에는 공장 담벼락에 연대하는 분들과의 소통과 만남이 단절되었다. 단절의 벽이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에 가기 위해 사다리로 담을 넘어가는 과정으로 연결과 연대, 공감의 장으로 변화했다.

많은 분들이 그 기억을 통해 2~3차 희망버스에 계속 온 것 아닌가 싶다. 2차 희망버스 때 185대를 만들겠다 발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꼈다. 1차 때에 비해 불과 20일 만에 10배가 넘는 인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쌍용차, 발레오 노동자 등과 함께 ‘소금꽃 찾아 천리길’로 부산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 도착하기 전날 밤 9시에 185대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굉장히 기뻤다. 천리길을 걸을 때 몸이 무척 힘들었던 것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이창근 희망버스 대변인 ⓒ이치열 기자 truth710@
 

- 한진중공업이 합의에 이르렀지만 쌍용차 합의에 반추해 보면 사측이 과연 합의사항을 준수할까라는 우려의 시선이 있다. 실제 사측은 18일 노조에 대해 순환휴직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노조는 반발했다. 이번 한진중공업 조치가 그러한 불안감을 더 키운 것 같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중요한 기로에 선 것 아닌가? 만약 이번에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를 노사간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한진중공업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합의를 지킬 것으로 본다. 그게 최소한의 상식이다.

게다가 노사 문제를 떠나서 여야가 환노위 차원이나마 합의를 하고 권고안을 만들었는데 이를 거역한다면 국회의 권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해도 국회가 이것마저 제어를 못하면 안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합의사항을 강제하고, 점검하고 체크하는, 국회 차원의 별도의 감시기구가 필요하다."

- 김진숙 지도위원 등 크레인에 올라 농성했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법원이 불구속 방침을 내린데 비해 희망버스의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실장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노사 문제가 합의를 이루더라도 연대단체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겠다는 본보기로 보인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단 하나다. 한진중공업은 단위 사업장 문제를 넘어섰고 때문에 여러 단체에서 연대하고 정치권이 권고안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위사업장의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개입하거나 연대하는 것은 분명히 처벌하겠다’는 메시지 아닌가? 연대의 확장을 두려워 한 무리한 조치다.

지금 두 가지 근거로 구속을 했다.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인데, 특히 시인에 대해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을 할 수 있다고 구속하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는 또한 시인을 포함한 문학계, 예술계에 대한 이 정권의 분명한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진보정당 현직 당직자를 구속수사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트위터에서는 소수정당이기 때문에 구속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진보신당이 아픔이 함께 하는 현장에 늘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실장에 대해서는 현재 탄원서도 받고 있다. (석방을위해)다양한 방법을 쓸 것이다. 구속되었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 희망버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결정체인데 그 마음을 가둘 수 있는가? 송경동 시인은 실례지만 무식한 면이 있다. 본인의 말에 대해서는 자기 혼자 남더라도 지킨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송경동을 통해 모인 것 아닌가? 정진우 실장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는 날을 전후해, 쌍용자동차에서 18-19번째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눈물의 색깔이 바뀌었다. 김 지도위원이 내려올 때는 기뻐서 울고 있었는데, 눈물이 흐르는 중간에 비보를 들었다. 눈물은 똑같이 흘렀는데 눈물의 색이 바뀌었다. 우리가 1차 희망버스를 갈 때, 쌍용차 문제와 한진중공업은 맞닿아있다고 봤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해결되어야 쌍용자동차 등 노동 현안이 해결될 수 있는 하나의 물꼬가 될 것이라 봤다.

사람 목숨에 대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해고문제와 쌍용차 노동자 자살, 사망은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 특히 희망퇴직자들이 자살이나 죽음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면에서 한진중공업도 앞으로 희망퇴직자에 대한 고민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희망퇴직자들은 허탈감이 있고 주변 동료들과도 서먹하다. 한진중공업 희망퇴직자들은 조선소 일을 해왔기 때문에 다시 조선소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쌍용차 노동자처럼 취업이 안된다. 희망퇴직자 문제는 이미 빨간 불이다. 시급한 문제다. 시급히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심각하게 취약하다. 정부가, 지자체가, 정당이 나설 수 있는 일이 많다. 빨리 무엇인가라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왔다."

- 18번째 희생자는 ‘산자’였다. 정리해고 이후 산자와 죽은자를 가리지 않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산자들도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게 어느 정도인가?

"어떤 사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매우 죄송한 일이다. 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곤혹스럽다. 다만 죽음에 이르게 된 계기는 직접적 계기도 있고 간접적 계기가 있다. 이중 유독 쌍용차를 다니거나, 희망퇴직 했거나, 정리해고를 당했거나, 1년 무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이렇게 단시간 내에 많이 죽는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현상이다.

공장안은 파업 이후 굉장히 억눌려있다. 현장에서 홍보물 하나 뿌릴 수 없는, (사측의)통제시스템이 최고로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들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노동조합도 쌍용차 노무팀화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언로가 전혀 없다. 그야말로 공기가 부족한 것 같다. 직장 동료들 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다 할 수 있다면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화도 없어지고 있다."

- 19번째 희생자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희망퇴직자의 직업 전전, 가족의 붕괴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 현실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듯하다.

"그들은 철저하게 개인에 의존해 살고 있다. 사람이 관계에 의존해 많이 살지 않나? 회사 다닐때는 동료나 지역사회, 가족과의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희망퇴직을 하고 나서는 본인이 어렵다보니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노가다’라도 해야지, 공단에서라도 일해야지 하는데 그건 도움이 안 되는 얘기다. 쌍용차 출신으로는 취직이 안 될 뿐 아니라, 중소영세사업장은 관리하는 분들의 나이가 많지 않은데 비해 쌍용차 퇴직자들의 평균 나이는 40세가 넘는다. 중소업체로서는 관리적 차원에서도 어려운 것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데 그걸 왜 우리에게 묻는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데 해법을 우리에게 내놓으라 하면 우리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당장 시급한 것은 희망퇴직자들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공장 밖에 있는 쌍용차 지부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경찰, 평택시, 회사 세 주체만 모이면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사회적 사과가 우선이다. 노조도 사과할 용의가 있다. 노조가 100%잘했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죽은 자(정리해고-희망퇴직자 등)에 대해 노조와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사과를 해야 한다. 죽은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고, 그것이 더 번질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목숨은 공공성이다. 노선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사항이 무엇이고 회사가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회사가 준수하지 않는 것은 너무 많다. 쌍용차 무급휴직자가 462명인데 한 분이 돌아가셨다. 회사는 이들을 1년 뒤 생산량에 따라 복직시키겠다고 했는데, 올 3월 부터는 월 판매대수 1만대가 넘었다. 그럼 연간 12만대를 넘어가는 수준이다. 자기들이 얘기했던 생산량을 웃돈다. 그럼 복직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복직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불법이다.

희망퇴직자에 대해서는 사규를 고쳐라도 여건이 나아지면 불러들이겠다고 했다. 이것이 희망퇴직자들을 많이 발생시키기 위한 말 포장이었는데, 그 약속도 지켜야 한다. 정리해고자, 징계자, 비정규직 13명에 대한 약속도 지켜야 한다. 그건 기본이다.

461명의 무급휴직자들이 쌍용차에서 일할 곳이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쌍용차에 잔업특근이 많아지면서 어떤 팀은 노동 강도가 무리하게 세지고 있다. 회사가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전히 불안한 것이다. 노조를 어용으로 철저하게 길들이고 있는데, 공장 안을 좀 더 장악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 아닌가?

쌍용차는 국내 점유율이 2.7%가 안 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기아차의 70% 독과점 형태다. 비상식적인 비대칭 구조 속에서도 쌍용의 점유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차종의 부족함을 넘는다. 사람이 죽고, 호소하고, 통곡하는데 잘 나가겠나? 철저하게 쌍용자동차를 비토하는 사람들이 넓어지고 있다. 그것이 유가족일 수도 있고 일반 시민일 수도 있다. 쌍용차는 점점 마케팅과 멀어지는 정책을 쓰는 것이다.

희망버스가 이제 쌍용차로 가자는 말을 많이 한다.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한진중공업과는 또 다른 형태의 희망버스가 나와야 한다. 쌍용차는 정말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희망퇴직자에 대해 1가구 1서포터라든지,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분명한 싸인을 보내야 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들은 관계가 파괴된 사람들이다. 관계가 없어 외롭다."

- 한진중공업의 희망과 쌍용자동차의 절망이 우리 노동계-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피니시(Finish)는 완성이라는 의미와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역설적이다. 쌍용차가 끝나면서 노동계가 밀리는 형태로 피니시가 되었고 거기서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이제 한진중공업이 피니시가 되었다. 또 시작이다. 한진중공업의 사태 해결이라는 소중한 결과물이 쌍용차, 재능교육 등 투쟁 사업장과 낡은 모순의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늦었지만 한국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 노동이 중심의제가 되었다. 이는 역사의 정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이 갖고 있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경험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 노하우를 전수시킬 수 있지만 한편으로 상상력을 제한한다. ‘해봐서 아는데, 안돼’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희망버스를 확대하지 못했다. 이들은 수십년 간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에 비춰 ‘안된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 경험이 우리의 상상력과 전진을 가로막았다. 이는 기억에서 소거되고 희망버스로 대체되어야 한다. 가능성이 열려있다면 언제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 문화일보 9월 30일자. 38면.
 

-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접점에는 일부 언론들도 있다. 보수로 분류되는 언론들은 희망버스 등을 곡해한 측면이 있다. 관련 보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오보를 남발한 신문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위협적이지 않았고 가소롭기까지 했다. 이들이 도태되는구나, 이런 논조라면 누가 읽을까? 저들이 죽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팩트와도 전혀 달랐고, 사설은 굉장히 웃긴 수준까지 떨어져 있더라. 확실히 시대 흐름을 못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영향력이 사라지는 과거 권력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느껴 한편으론 측은했다. 특히 문화일보가 석간이라 자주 봤는데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나’ 했는데, 생각 못한 지점을 찔러주니 나름 방어도 할 수 있었다. 제일 웃겼던 것은 문화일보 사설이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시켜 테러리즘까지 얘길 하더라, 정말 상상력이 뛰어나다.

한겨레나 경향, 미디어오늘 등의 매체들은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이 문제에 대해 함께 했고 노력했는데 가끔 기계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모습을 봤다. 특히 노동, 계급 문제에서 양비양시의 스탠스를 가지는 모습이 많이 보여 유감이었다. 노동현안과 계급문제의 공공성까지 나아가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감사했다."

- 이창근 대변인 개인의 향후 계획에 대해 얘기해 달라.

"지금은 성공회대에서 야간 노동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력 한 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못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공부는 꼭 필요한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은 문화기획을 하고 싶다. 부르주아 문화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문화, 노동자 문화, 집회의 문화 같은 것들이다. 희망버스를 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쉴 때, 그들의 스토리가 그대로 전달될 때 사람들과의 교감과 공감이 넓어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역할도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2차 희망버스가 끝나고 어떤 분이 후기를 썼는데, 거기에서 여러 사람들의 묘사가 나온다. 가방을 둘러맨 16살 소녀, 아이 손을 잡은 아주머니…. 그렇게 참여군상을 쓰는데 노조 활동가들은 딱 노조 활동가 다섯 자로 끝나더라. 이렇게 앙상할 수 있는가란 생각을 했다.

그들도 재미있고 진심어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있는 따뜻한 분들인데 외연화 되는 과정에서 머리띠라는 굳어있는 이미지, 조끼라는 형식화된 이미지에 갇혀 걸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넘어 사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고민이 있다.

2009년부터 이런저런 기회가 되어 언론담당을 해서 언론과의 관계, 기자들과의 관계가 있는데 이 부분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투쟁현장에 언론담당이 많이 없고 친절하지 않은 면이 있는데 한편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우리 얘기를 잘 전달하고 보도자료로 교감해야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곳 까지 주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우리 편을 많이 만들자라기 보다는 노동자를 곡해하지 않고 원형대로 그들의 말이 반영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투쟁사업장이나 어려운 곳일수록 기자나 PD, 작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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