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인신매매단이 여고생 세 명을 잡아가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실종됐다.”
“할머니가 여고생을 태우는 것을 목격했다.”
“순천지역 한 공원에서 안구와 장기가 적출된 순천 모 여고생 시신 세 구가 발견됐다.”

경찰이 밝힌 트위터에서 떠돈다는 '순천괴담'의 일부다. 순천경찰서는 지난 18일 “최초로 글을 올린 누리꾼의 아이디를 추적해 악성 유언비어 확산 경위를 조사한 뒤 사법 처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미디어오늘이 소셜 네트워크 분석 업체 유저스토리랩에 의뢰해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인신매매’와 ‘장기적출’, ‘순천괴담’ 등의 열쇳말로 한글 트윗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경찰 수사 발표를 인용한 언론 보도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은 트위터를 통해 괴담이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정작 확산되고 있는 건 실체가 없는 괴담 보도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인신매매'라는 단어로 링크된 게시물 1위는 엉뚱하게도 가수 박재범이 인신매매 피해여성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 현지에서 위문 공연을 했다는 언론 기사였다.

정작 ‘인신매매’에 관련된 트윗은 SBS의 “순천서 인신매매 성행 괴담 확산(3위)”, 한국일보의 “순천서 인신매매 성행 괴담 확산(4위)”, 위키트리의 “인신매매 괴담 경찰수사 착수(5위)”, 미디어다음의 “순천서 인신매매 성행 괴담 확산(7위)” 등 언론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장기적출’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결과 역시 “전남 순천에서 장기 적출을 위한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괴담이 확산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한국일보)”, “장기적출 여고생 사체 발견 꼬리무는 괴담(세계일보)” 등 언론 보도가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했다.

‘순천괴담’으로 검색한 순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SBS가 보도한 “순천서 인신매매 성행괴담 확산” 등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이 상위를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 것은 괴담이 아니라 실체없는 괴담 보도였다.

   
11월 13일부터 20일까지 인신매매, 장기적출, 순천괴담으로 검색한 트윗수 증가 추이 변화. 검찰 발표 이후 트윗이 급증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유저스토리랩.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8일 전후를 비교하면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들어간 트윗 링크는 13일 68건, 14일 71건, 15일 41건, 16일 59건, 17일 11건 수준에 머물다가 18일 192건, 19일 439건, 20일 447건으로 폭증했다.

‘장기적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트윗 링크 역시 13일 0건, 14일 4건, 15일 6건, 16일 0건, 17일 8건이었다가 18일 29건, 19일 187건, 20일 108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순천괴담’이라는 단어는 13일부터 17일까지 단 한 건도 없다가 18일 24건, 19일에는 무려 260건으로 늘어났다.

20일 이후에는 “최근 순천에서 장기 적출을 위한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괴담은 전혀 근거 없는 허위 사실임을 알려드리며, 경찰에서는 악성루머를 퍼트린 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습니다”라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명의의 트윗이 급속히 퍼졌다.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들어가 가장 많은 리트윗을 받은 트윗은 “@gkstjfdbsl RT트친님들 리트윗!!! 제 친구 언니가 인신매매 당할 뻔했어요 막 할머니가 짐을 들어달라 하면서 좀 어두운 곳으로 계속 걸어갔대요 그래서 언니는 괜찮겠지 하면서 갔는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씨익 미소를 띄더래요 알고 보니까 할머니가 언니를 끌고 온 데에는 아저씨 한 명이 봉고차에 타서 기다리고 있었대요 트친님들 조심해요! 알티 고!"라는 내용으로 193번 리트윗됐다. 이 트윗은 ‘장기적출’이나 ‘순천괴담’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괴담인지 아닌지 사실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내용이다.

‘장기적출’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트윗이 확인됐지만, 리트윗 건수는 3건, 이 트윗 계정의 사용자는 팔로워가 112명에 지나지 않는다.

“와룡분수공원에서 할머니가 건넨 음료수를 마신 학생이 기억을 잃고 길에서 발견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장기적출 및 인신매매 등 범죄에 노출될 수려가 있습니다.절대 낮선 사람(노인)이 권하는 것은 향기와 맛을 보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주의 바랍니다.”

정작 ‘순천괴담’의 실체는 트윗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경찰 발표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이 인용 보도한 트윗 가운데 ‘마른 해산물 괴담’ 등은 정작 ‘순천괴담’과는 관계 없는, 몇 달 전부터 떠돌던 것을 모은 것이고 대부분은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 이전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순천경찰서 사이버범죄팀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순천괴담’을 자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지난 17일 민원인의 신청을 받고 18일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민원 접수 하루 만에 경찰이 전격 수사에 착수하고 전국적으로 보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트윗에 여고생의 학교 이름이 거론돼 학교 측을 비롯한 민원인의 신청을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사이버범죄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관련 통계 자료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며 “수사 발표 이후 수사발표 내용이 알려지면서 관련글이 삭제되고 있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1월20일 온라인판.
 

조선일보는 20일 “장기적출·폭우·석해균·방사선·김길태… 막을 길 없는 괴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괴담 수준의 글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횡행하며 네티즌을 현혹하고 있지만, 이들을 처벌할 규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김길태가 탈옥해 여중생을 또 죽였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나 “방사선 비를 맞으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서 초능력이 생긴다” 등의 우스갯 소리까지 끌어모아 트위터 공간을 괴담의 온상인 것처럼 보도했다. ‘순천괴담’을 전하는 다른 보수 언론의 논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7일에는 검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할 경우 구속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에 부딪혀 하루 만에 “유언비어나 괴담 등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체는 형사 처벌할 수 없다”고 번복한 일도 있었다. 보수 언론이 ‘순천괴담’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트위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전반에 불신을 퍼뜨리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을 유괴해 장기적출을 해 판매한다는 '도시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이런 맥락에서 21일 동아일보 칼럼, ‘괴담 생산공장 종사자들’의 한 대목은 보수 언론의 ‘순천괴담’ 보도에 적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괴담생산 시스템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집단은 일부 언론과 인터넷 논객들이다. 그들은 괴담 자체를 지면이나 전파에서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괴담을 사실로 믿고 싶은 이들에게 심정적 확신을 심어줄 온갖 자양분과 배경그림을 제공한다. 무수한 별들을 마음대로 이어서 별자리를 만들 듯 단편적 팩트들을 이리저리 모자이크한다.”

정민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인터넷상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야기들이 올라오면 그게 진실일 수도 있고, 허위일 수도 있는데 자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지, 그것을 일방적으로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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