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 처리 최대 쟁점인 ISD(투자자국가소송제)가 통과되면 국내의 투기세력이 미국 투자자를 앞세워 재산권이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우리나라 부동산 공법과 정책을 뒤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투기 세력들이 ISD를 악용해 부동산 규제 정책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가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흔들고 막대한 배당금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미FTA가 부동산정책에 미치는 영향과 ISD 분쟁 가능성' 토론회에서 "미국 투자자나 이들을 내세운 국내의 투기세력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동산 공법 관련 행위에 대하여 한국 정부로서는 그 승산을 예측할 수도 없는 중재판정을 끌고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어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투자자와 합작하거나, 미국 투자자를 전면에 내세워 토지에 대한 각종 공법적인 규제를 회피하려 할 것"이라며 "결국, 부동산투기를 규제하고 균형 있는 국토개발을 위하여 헌법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일련의 공법적 규제들이 무력화되고, 더 이상 부동산투기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공공정책이 존재하지 아니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 말대로라면 ISD에 따른 중재판정에서 패소하게 되면 정부는 막대한 배상금까지 지급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문제는 한 건의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내국인이 미국 투자자와 역차별을 문제 삼으며, 협정문을 근거로 각종 도시계획구역지정, 개발제한구역지정 등 토지의 이용개발과 관련한 규제에 대하여 부당함을 지적하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고, 내외국인 사이의 부당한 차별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소송들의 인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사태는 ISD가 실질적으로 합헌적인 국내 법률을 개폐할 수 있는 사실상의 권한을 미국 투자자나 이를 내세운 배후의 내국인에게 양도한 것이라는 비판의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시민단체들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이 ISD에 의해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007년 4월 최종 협상안 발표에서 '간접수용'의 예외로서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 일반적인 조세 등을 추가했다며 ISD가 도입되어도 국내 부동산 법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간접수용이란 직접적으로 소유권을 박탈하지는 않으나, 국가가 각종 규제를 통하여 재산적 가치를 현저하게 감소시키거나 재산권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김원보 가람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하지만 협상문을 들여다보면 ISD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FTA 협정문 제11장 '투자' 조항을 보면 투자의 형태로 '면허, 인가, 허가와 국내법에 따라 부여되는 유사한 권리'가 포함돼 있다.

또한 '간접수용' 조항의 예외로 '공중보건, 안전, 환경, 부동산 가격안정화'를 들고 있지만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 을 또다시 간접수용의 예외의 예외로 뒀다.

즉, 중재 판정에서 부동산 공법 등 우리나라 정책을 결정하는 실정법이 FTA 협정문과 충돌되는 상황이 오면 협정문에 따라 패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결국 우리나라 정책을 규정하는 법질서를 흔드는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또한 '수용 및 보상규정은 과세조치에 적용된다'는 협정문 조항에 따라 우리나라 과세조치에 대한 중재신청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예컨대, 양도소득세에 대하여 미국 투자자가 소득세율이 너무 높다는 등 자신의 기대이익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간접수용이라고 주장해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중재를 요청한 경우, 정부는 중재회부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조세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려고 해도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국투자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조세정책의 강화가 기존 미국투자자의 기대이익을 해치는 경우 간접수용으로서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조세정책의 강화라는 현실적 필요에 대하여 정부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앗아가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ISD제도의 절차를 꼬집는 지적도 나왔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남희섭 변리사는 ISD제도의 폐해에 대해 "협정문의 사전동의 조항으로 인해 중재절차의 회부 여부는 오로지 투자자만 결정할 수 있고, 당사국은 절차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을 재량권이 없다"면서 "아무리 우리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당한 부동산 정책이라 하더라도, 투자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ISD 절차는 진행될 수밖에 없고, 결국 정당한 정책인지 여부는 개인 법률가의 사적 판단에 따라 결판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권정순 변호사(서대문구청 인가자문위)는 재개발 지구 선정 등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권한도 ISD의 제소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개발사업 지역에 투자한 미국투자자가 지구지정해제나 승인, 인가의 취소로 인해 기대이익이 침해되었음을 들어 ISD에 제소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끝으로 "ISD 제도가 도대체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 결정권, 국회의 입법 형성권, 자치단체의 각종 인허가 권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신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다만, 우리 법제와 전혀 다른 법제를 받아들이면서 정부가 충분한 논의와 설명없이 경제적 효과만을 내세워 지나치게 성급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한미FTA저지 촛불집회' 에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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