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열린 한국ABC협회 임시총회에서는 운영기금(1백억 조성계획)을 사용할 때 주무장관(공보처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정관개정안이 통과됐다. 자율기구여야 할 ABC협회가 구조적으로 정부에 예속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같은 결정이 있자 언론계의 눈길은 동아일보로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동아일보는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ABC협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이든 이 기금에 공익자금 50억원이 출자될 것이 확실시되는 마당이니 동아일보의 반대가 예견된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총회에 참석한 동아일보 판매국 관계자는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판매국 책임자인 고의홍 국장도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동아일보의 이같은 변화는 지난 93년 국정감사 이후 보여줬던 입장과 큰차이가 난다.
“정부가 앞장서 제의하고 공익자금으로 운영을 꾀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율원칙에 어긋나는 일”(93년 10.21 사설)이라거나 “공익자금을 쓰면서 정부의 역할을 배제하고 공공성과 독립성이 확보됐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리”(같은해 10.29 사설)라는 게 동아의 ABC협회의 위상에 대한 일관된 입장이었다. 올해 3월22일에도 예의 ‘자율적인 운영’과 ‘공익자금에 대한 우려’를 사설을 통해 거듭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2일 이후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은 정부 돈이라도 지난해는 받을 수 없는 것이었고 올해는 받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다시금 ‘사설’을 통해 동아일보의 변을 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점에서 “손해보는 부수공사는 하지 않겠다”는 판매책임자의 말은 솔직하다 못해 진실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ABC제도의 자율, 독립적인 운영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처럼 각 신문사가 편의와 이해타산에 따라 ‘자율’과 ‘독립’을 달리 해석한다면 정확한 부수공개와 신문사들간의 공정한 판매원칙 마련이라는 ABC 본래의 취지는 근본부터 위협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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