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50년만에 처음으로 대규모의 한일 양국의 현직 언론인들이 얼굴을 맞대고 나눈 대화의 주제는 ‘국가’와 ‘시민’ 그리고 ‘언론’이었다.

양국 국민간에 역사인식의 차이를 불러오고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겨온 주범은 ‘편협한 내셔널리즘’이라는데 양측은 인식을 같이했다. 그것이 ‘가공의 감정’을 만들어냈고 그 감정에 사로잡혀 양국 국민은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양국 언론이 민족감정을 이용한 정치세력의 정략 도구로 ‘동원’됐다는 신랄한 비판도 제기됐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아픔을 함께 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손해는 나에겐 득”이라는 제로섬의 시각이 바로 국가주의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일 관계는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에 한일 언론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안은 ‘시민’이었다. 정부간의 관계나 정치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의 가치 추구라는 ‘시민연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게 한일 언론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정략과 속셈읽기 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살아가는 모습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러한 토론과정을 통해 일본 언론인들은 부전결의 실패 등 일본내 새로운 국가주의의 부활을 비판, 경계할 것을 가슴에 새겼다. 한국 언론인들은 한일관계에 관한 그간의 ‘정부대행자적’ 모습에서 벗어날 것을 다짐했다. 그 바탕을 양국 언론인들은 민주주의의 진전에서 찾았다. 독립되고 자유로운 언론의 존재와 이에 기반한 ‘열린시각’의 보도, 그것이 ‘진정한 국익’이라는데 공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을 서로의 ‘차이’를 솔직히 인정하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얘기였다. 등을 지고 욕하지 말고 서로를 마주보고 대화하자는 것이기도 했다.
이 차이에 대한 양국 언론인간의 체험적 고백도 쏟아졌다. 일본 신문노련 이노구치 부위원장은 “일본에 있을때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해했다.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왕궁을 위압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총독부 건물을 보면서 한국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개방 문제에 대해 일본 언론인들은 “문화침투나 종속의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문화를 통한 양국 국민간의 대화라는 전향적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 한국 언론인은 판문점 견학을 떠나는 일본 언론인들에게 “식민지배의 결과로 생긴 남북 분단이 한국민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지를 마음으로 보고 돌아오라”고 요구하면서 “이런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 문화개방에 대한 한국민의 부정적인 태도가 왜 생겼는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일 언론 심포지엄의 성과는 ‘시민의 발견’이다.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극복을 시민연대에서 찾고 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모색키로 양측은 합의했다. 이것을 만드는데 한국은 ‘해방50년’이라는 시간이, 일본은 ‘패전 5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후지모리 겐 일본 신문노련 위원장이 한국을 떠나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이번 심포지엄의 성과를 압축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만약에 한일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는 동경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을 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심포지엄에서 만난 한국의 언론인들도 서울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생명을 바쳐 싸울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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