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자 아침 종합 신문의 키워드는 박원순 시장의 등록금 철폐 발언이 차지했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박원순 시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시장은 선동가가 아니다',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 '다른 나라 사례와 직접적 비교는 부적절하다' 등 박 시장의 발언 하나가 낳은 파장은 컸다.

해당 발언은 지난 15일 박원순 시장이 동국대를 찾아 '21세기 리더의 자격'이란 주제로 연 특강에서 나왔다.

박 시장은 특강에서 "여러분이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지만 백날 해도 안 된다. 왜 철폐 투쟁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독일 가보라, 스웨덴·핀란드 가보라, 대학생 등록금 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국민일보는 '선동가 아닌 서울시장 박원순 돼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 시장의 주요 발언을 소개하고 "반값 등록금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대학 측이 반목하는 가운데 나온 박 시장의 강의 내용은 여러 면에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한국이 20.7%인 반면 스웨덴은 34.8%에 달한다. 스웨덴은 조세부담률이 큰 만큼 우리보다 복지 혜택이 많은 것"이라며 우리나라와의 사정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한국의 조세부담률(2008년 기준)은 2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중 하위 8위로 평균(25.8%)보다 훨씬 낮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조세부담률이 30% 안팎이고 덴마크는 47.3%나 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로는 몇 년 후 도래할 초중학생 전면 무상급식도 큰 부담"이라고 썼다.

서울신문도 "인구 1000만 수도 서울을 책임진 시장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경박하고 무책임하다. 스웨덴이 '복지천국'이라면 그것은 국민 세금의 소산이다. 박 시장 또한 이를 모르지 않을진대 그런 사실은 외면한 채 선동적인 발언을 하고 있으니 무슨 저의라도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세계일보는 "대학생 불만과 분노에 기대어 과격시위를 부추긴 것이나 진배없다. 무책임한 짓이 아니었는지 자문해야 한다"라며 "대학생 시위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서울시장이 어떻게 협력과 조정의 힘을 발휘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시민이 허다하다"고 썼다.

   
▲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한발 더 나아갔다.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대학평가 기관인 QS의 올 9월 세계대학평가에서 등록금을 받는 미국 대학은 50위 안에 20개나 됐지만 박 시장이 '이상향(理想鄕)'처럼 거론한 독일·핀란드·스웨덴 대학은 단 한 곳도 없다"며 "등록금을 무작정 공짜로 하면 대학 교육은 부실해지고 학생 수만 늘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종합 6면에서 '자신감 붙은 언행 아슬아슬 브레이크 필요한 박원순'이란 제목으로 박 시장의 등록금 철폐 발언을 비판했다.

그런데, 정말 언론들이 박 시장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고 썼는지는 의문이다.

   
▲ 한겨레 신문 종합2면
 

 

한겨레 종합2면 '현장에서' 꼭지 기사에서 그나마 박 시장의 발언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한겨레는 박 시장 특강 현장에 있었던 엄지원 기자의 입을 빌려 "박 시장은 내내 "남들과 반대로 가라"는 말을 강조했다. 청년에겐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철폐 투쟁' 발언 역시 도전정신을 강조하던 대목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나온 보도는 이렇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목을 치라”며 도끼를 앞에 두고 상소를 올렸던 조선 유생들의 예를 들다, “(대학생) 여러분이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지만 백날 해도 안 된다. 왜 철폐 투쟁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바로 뒤이어 “독일 가보라, 스웨덴·핀란드 가보라, 대학생 등록금 냅니까”라며 “(등록금은) 예산, 재정 문제가 아니고 비전의 문제, 가치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고는 “시민들이 깨고 대학생이 새 세상 맞을 준비를 하면 세상이 바뀐다”며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국민일보, 조선일보 등은 단순히 '워딩'을 문제삼아 관련 팩트를 나열하며 흠집내기식 보도를 한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 사정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 역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등록금 문제의 폐해가 크다는 전제 앞에서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조세부담률을 근거를 내세워 박 시장의 발언을 비판하기 전에 서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조세부담률을 올려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지난 7일 국가 재정 확보의 방안으로 한나라당 내에서 논란이 일었던 ‘버핏세’ 도입 문제을 보도했던 신문들의 논조를 보면 윤곽이 보인다.

버핏세는 높은 연봉을 받는 동시에 높은 금융소득을 올리는 사람에 대해 세금을 더 받겠다는 것이 골자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현재 최고세율(35%)을 적용받는 '8800만원 초과' 구간 상위에 소득구간을 하나 더 신설하거나 증권·이자소득에 세금을 더 물리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는 지난 7일자 1면 톱 기사에서 당내 보수파들의 목소리를 적극 전하면서 "출총제 부활 부유세 도입 같은 정책은 보수 정당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썼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도 "당 쇄신책으로 부유세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 부자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라지만 참으로 한심한 단견"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도 지난 7일자 신문 정치 3면에서 버핏세 도입과 관련해 "대기업에 부가 편중되는 흐름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당의 보수우파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언론도 한나라당내 버핏세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을 겪고 있다고 '중계 보도'하고 당내 이미지 쇄신을 위한 일환이라는 지적으로 일관했다. 버핏세 도입이 논란이 된 만큼 다른 국가 재정 확보 방안을 다룰만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조세부담율을 들어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한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꼴이다.

한겨레는 마지막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던 보수신문들을 겨냥해 이렇게 썼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의 화법이 낯설다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세부담률을 거론하며 “시장이 등록금 철폐 투쟁을 제안했다”고 정색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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