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 처리를 놓고 여야의 대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FTA 발효 3개월 내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재협상' 제안에 대해 민주당이 16일 거부하기로 밝히면서다.

민주당은 양국의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오기 전까지는 합의 처리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한나라당은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등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강행처리 명분 쌓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7일자 종합신문들은 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4일, 강행처리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음은 17일 아침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일보 <민주 "선 비준 거부" 한나라 "조속히 처리">
국민일보 <미 정보기관, 한국 군수산업 뒤진다>
동아일보 <대한민국 대통령의 굴욕>
서울신문 <민주 "미 문서 받아와라"...'힘의 FTA' 가나>
세계일보 <'무주택 설움' 저출산 부른다>
중앙일보 <영화같은 추격전...중국어선 11척 밧줄로 묶은 채 도주>
조선일보 <"야, 처음부터 FTA 타협할 생각 없었다">
한겨레 <'윌가시위'기습철거...다시 모인 사람들>
한국일보 <"ISD '즉각 재협상' 합의서 받아오라">

민주당이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FTA 발효 3개월 내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재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5시 30분에 걸친 마라톤 의원총회를 거친 결과다.

민주당은 ISD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의총 뒤 국회 브리핑에서 "한미 FTA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국회 비준 동의 전에 FTA를 재협상하고 FTA에서 최소한 ISD는 제외돼야 한다는 것"며 "이 대통령의 발효 후 3개월 내에 재협상토록 하겠다는 구두 발언은 당론을 변경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여의도에서 당 소속 재선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만장일치 합의했다"고 말해 강행처리를 시사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1면 기사에서 이 같은 뉴스를 전하고 종합면을 통해 FTA 비준 처리 전망을 내놨다. 특히 이번 민주당의 역제안에 대해 보수 신문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면서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주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는 '통큰 결단'이라는 평을 내놓으면서 민주당의 거부 입장에 대해서는 "사대주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맹비난했다.

"민주당 강경파 지도부는 정치 모리배"

조선일보는 "야, 처음부터 FTA 타협할 생각 없었다"라는 제목의 1면 머릿기사에서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한 가지를 양보하면 민주당이 다른 요구조건을 내건다. 협상을 깰 구실을 찾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러고는 '친박계 외통위 내 협상파'인 구상찬 의원의 "대통령의 제안은 큰 물꼬를 터준 것이었다. 이제는 야당도 표결 처리를 막을 명분이 없어졌다. 마지막 노력을 해보겠지만 민주당이 저런 식이라면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발언을 전했다.

국민일보도 종합 3면 "당내 협상파서도 '야 요구 다 들어줬는데...'"라는 기사에서 "한나라당 안팎에서 강행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졌고 야당과의 합의처리를 주장해 온 협상파 입지는 그만큼 좁아졌다"며 민주당 거부 입장 표명 후 한미FTA 비준 강행처리 전망을 내놨다.

한나라당 '협상파 의원'의 말을 인용한 국민일보는 "야당이 요구한 농업 분야 보완책은 정부를 설득해 다 들어줬고 ISD 문제도 대통령이 약속까지 했다"면서 "야당이 그것마저 거부하니 이제 협상할 카드 자체가 없다"고 전했다.

 

   
▲ 국민일보 종합 4면
 

그러면서 국민일보는 종합 4면에서 "모처럼 보여준 'MB정치'라는 꼭지 기사를 통해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을 높히 평가했다.

국민일보는 "선택은 야당 몫이 됐고 여당은 밀어붙일 부담이 줄었으며 국민은 대통령의 '행동'에 정부 입장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새로울 것 없는 카드로 새 국면을 만들어내는 게 '정치'라면 이 대통령이 그걸 한 셈"이라고 썼다.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은 소통의 정치로 보고, 민주당의 거부 입장에 대해서는 불통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보도다.

또 국민일보는 굳이 '민주당의 일부 강경파 지도부'라고 구분하고 '정치 모리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맹비난했다.

사설에서 국민일보는 "일부 강경파 당 지도부가 재협상이 아닌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정도와 상식을 넘은 생떼 부리기"라며 "이쯤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정치 모리배라고 비난을 받아도 싸다"고 맹비난했다.

동아일보는 아예 "대한민국 대통령의 굴욕"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걸고 "결국 한미간 ISD 재협상 서면 약속이 불발되고 한나라당이 비준안 강행처리를 시도하면 민주당이 물리력으로 저지하면서 거대 야당에 '짓밟히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고 썼다.

서울신문도 1면에서 "직접 국회를 찾은 한국 대통령의 구두 약속보다 미국 장관이 서명한 문서를 필요로 하는 여야의 극단적 불신이 국회이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단계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협상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강경파들의 주장만 키우며 대화와 타협을 외면했다. 여당의 '강행처리'를 사실상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파국이다. 협상파들이 전면에 나서 강경파들을 누르고 FTA 처리를 주도해야 한다"고 썼다.

강경한 당 지도부에 맞서 민주당 협상파들이 반기를 들라고 종용하는 셈이다.

중앙일보는 종합 3면에 통째로 하세가와 일본경제동우회 대표의 인터뷰를 실었다.

요지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사실상의 미일 자유무역협정으로 불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를 결단한 배경에는 일본 경제계의 강한 압박이 있었다"면서 히세가와의 입을 통해 FTA 처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식이다.

중앙일보는 "FTA는 리더십을 어느 나라가 먼저 잡고 주도하느냐에서 승패가 갈린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승자"라는 히세가와의 발언을 전하면서 FTA 처리 결단을 촉구했다.

 

   
▲ 중앙일보 정치 5면
 

특히 중앙일보는 정치 5면에서는 몸싸움까지 염두에 둔 한미FTA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내놓으면서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전략을 주문했다.

"지금 한나라당이 과연 강행 처리를 할 만큼의 전력(戰力)을 확보하고 있는지엔 물음표가 붙는다. 강행 처리를 하려면 국회 재적 과반수(148석)를 확보하는 게 기본 요건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석은 169석이기 때문에 숫자상으론 문제가 없다"

"비준안 합의 처리를 요구하며 단식 중인 정태근 의원 등이 제안하는 ‘여야 온건파 절충안’에 서명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날까지 50명에 육박한다. 명단엔 물리적 충돌 시 ‘최전방’에 배치될 초선 의원들이 상당수다. 이들이 대거 빠지면 표결 자체가 정족수 부족으로 불발되거나, 표결을 시도하더라도 야당의 육탄 방어를 뚫기 어렵다. 특히 한·미 FTA 비준안은 본협정뿐 아니라 14개의 부수법안을 함께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표결 시간만 30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안정적으로 회의장 질서를 장악하지 못하면 도중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 제안은 ‘립서비스’"

반면 경향신문은 "독소조항 문제 아닌, FTA 자체가 문제"라는 종합면 뉴스해설 기사를 통해 비준 처리 논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 문제 외에 한미FTA의 본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역진방지 조항, 혐정문에서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열거해두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시장 개방 등 사회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 많다"면서 한신대 이해영 교수의 말을 인용해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독소조항 하나만 뺀다고 해서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한미FTA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이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종합 2면 "'비준 후 재협상'는 착시효과...청와대 '개정 의지' 없어"라는 기사에서 "미국이 최근 투자자국가소송제의 폐지 자체를 반대해온 데다 대외무역 협상권을 가진 미 의회가 최종적으로 개정에 동의해야 하므로 폐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서비스 투자위원회에 개정 폐기에 대한 최종 권한이 없고, 결국 미 의회를 거쳐야 하는 사항을 청와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 한겨레 종합 1면
 

한겨레도 “FTA비준 힘 실어주는 미국의 '립서비스'”라는 1면 머릿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은 미국과의 실질적인 재협상을 통한 ISD 수정 또는 폐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라며 이 대통령의 제안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한겨레는 "미국은 ISD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초안 때부터 집어넣을 만큼 중요하게 다뤄왔다. 미국 기업의 요구도 매우 강해, 의회 비준이 끝난 상태에서 미국 행정부가 한국 쪽에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워싱턴 한 통상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별도의 부속합의를 만들더라도 협정문 본문과 상충하거나 내용이 상당히 바뀌면, 협정문 자체의 개정이 필요해 의회 비준을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미국 행정부가 ISD를 제외하라는 요구를 수용하긴 쉽지 않다"고 전해 재협상의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적극 보도했다.

한겨레는 종합 4면에서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정부가 재협상을 약속했지만 추진되지 않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을 깎아내렸다.

한겨레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국내법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가 협정 발효 후에 재협상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이 지난 7월1일 잠정발효되고 협정 이행 협의체인 무역위원회가 지난달 12일에 서울에서 제1차 회의까지 열었지만 중소상인을 위한 재협상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국방정보국(DIA) 등 미국 3대 정보기관이 우리나라의 무기 생산과 해외 수출 과정에 대해 대규모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국산무기 생산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과 무기생산업체 등을 미 정보기관이 조사 중에 있고, 한국산 무기를 구매한 국가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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