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정부와 언론기업주들은 이 사실을 ‘한국 언론민주화’의 증거로 활용코자 했다. 그러나 언론노련과 방송개혁국민회의는 즉각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언론통제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실상 우리나라의 언론, 그중에서도 방송에 대한 통제는 여러 경로로 행해지고 있다. 청와대 언론대책팀, 공보처 신문방송국, 안기부 심리전국 및 언론대책반, 그외 전 행정부처의 공보관실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방송은 통제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통제는 ‘정권안보를 위한 여론관리’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대구참사 속보방송과 관련해 공보처가 낮방송을 불허한 사건은 이러한 통제 경로의 존재뿐만 아니라 통제의도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장 엄격하게, 그리고 가장 원천적으로 방송내용을 통제하고 있는 부분은 북한 관련 보도였다. 언론인들은 여전히 북한 취재에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남북문제 관련 보도 또한 국가보안법에 묶여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 관련 방송통제는 안기부가 북한 영상자료를 독점하는 원천적인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현재 방송사는 안기부가 제공하는 북한 영상자료를 갖고 북한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는 김일성겚窪ㅐ? 우상화와 관련없는 영상자료는 일체 제공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담은 화면이나 드라마 등은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 방송사가 외국방송사나 재외동포를 통해 자체적으로 입수한 영상자료에 대해서도 안기부와 ‘사전협조’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내용이 삭제되는 것이 다반사다. 자료가 제공될 경우에도 김정일 당비서 관련 화면은 스틸만 사용하게 한다거나 특정 현장음을 지우게 하는 등의 세세한 지침도 함께 내려온다.

방송은 정보전달을 일차적으로 영상에 의존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영상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언어적 논리에 의존할 때보다도 훨씬 현장감 있게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안기부는 그러한 영상을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안기부가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화면만을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안기부가 제공하는 대북관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로 귀착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까지 북한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북한 문제를 제외했을 경우 보수와 진보 개념, 독재와 반독재 개념, 계급 개념 등은 아직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이 북한문제와 결합할 때 그것은 당장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통제의 대상이 된다. 말하자면 안기부는 북한 관련 정보통제를 통해 국민의 생각과 감정을 일정한 방향으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권안보의 핵심적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 방향은 이미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북한에 관한 좀 더 편견없는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안기부는 북한 영상자료에 대한 독점을 포기해야 한다.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영상을 내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방송사의 자율적인 판단력이 정 의심스럽다면 방송내용물에 대한 사전심의권이 있는 방송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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