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의 방송사에 대한 북한영상자료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배경이 밖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방송사 북한부 기자들은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이 외신 제공 화면을 통해 방영되고 와병설이 돈 김정일 당비서의 비교적 생기있는 모습이 나가는 등 방송사의 관련 화면 선택이 과거보다 자율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안기부를 비롯한 정부내 매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현재 안기부내에서 북한 영상자료를 관장, 방송사에 배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심리전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북한관련 자료가 활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안기부가 일방적으로 북한 관련 자료를 수집, 방송사에 공급하는 상황에서 방송사는 안기부와 국민 사이의 ‘배달 소년’ 역할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북한 영상자료의 일방적 유통구조하에서 방송사는 안기부에 어떤 화면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러이러한 화면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항의할 근거가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방송사가 외신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집한 자료도 마음대로 내보낼 수가 없다. 모든 북한관련 자료는 특수자료로 분류돼 이를 보도할 경우 안기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 ‘특수자료지침’(88년 9월 개정)에 따르면 방송사를 포함한 특수자료(북한관련 자료) 취급 기관의 장은 “국민의 안보의식 계도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수자료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를 공개할때는 자료내용, 활용목적, 공개시기 및 방법을 명시한 계획서를 작성해 안기부장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북한 관련 방송 보도는 이미 보도가 아니라 국민의 ‘안보의식’ 제고를 위한 정부의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론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행위가 제도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초기에 비해 눈에 띄게떨어지고 있다. 눈길을 끌만한 ‘그럴듯한’ 화면이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비해 별로 달라진게 없는 고만고만한 화면에 시청자들이 식상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응집하고 남북관계에 대한 ‘열린 시각’을 제시한다는 이들 북한관련 프로그램의 초기 의도는 이미 실종된 상태이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안기부의 구태에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방송사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의 지나친 통제에 대해 항의 한번 제대로 한적이 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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