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고 이소선 어머니는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살아서 돌아오라'는 이소선 어머니의 바람대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이날 오후 2시 영도조선소 정문 앞 광장에서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정리해고 문제에 관한 잠정 합의안의 찬반을 묻는 투표가 가결된 후 오후 3시 30분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만에 땅을 밟았다.

309일…한진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한진중공업 투쟁은 우리 사회의 노동계가 처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12월 15일 사측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들어 400명의 정리해고안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노동계는 경영상의 악화 책임을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12월 20일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2003년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목숨을 끊었던 것을 옆에서 지켜본 김진숙 지도위원.
 
김 지도위원은 지난 1월 6일 김주익 위원장이 목숨을 끊었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노사 갈등은 쉽사리 중재되지 않았다. 사측은 노조 파업에 맞서 영도조선소와 울산공장 등의 3곳을 직장폐쇄 조치시키면서 갈등을 키웠다.

   
부산 한진중공업 85크레인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09일동안의 고공농성을 해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3시 20분경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끝내 사측은 230명을 희망퇴직시키고 170명에 대해서는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이후 170명 중 76명이 희망퇴직으로 전환했지만 나머지 94명은 끝까지 정리해고자로 남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노사 갈등의 현장과 비슷하다. 보통 노사갈등은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시작해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결국 노동자들이 손배 청구나 법적 처벌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태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지난 6월 노동단체, 시민단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희망버스가 부산을 찾으면서부터다. 6월 11일 처음 시작된 희망버스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 5차례 진행됐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부산을 찾은 희망버스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하고 '좌파들의 집결'이라며 낡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댔지만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희망버스에 참가했고, 이번 문제가 개별 노사 문제를 넘어 일자리, 고용, 해고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체험하고 공감했다.

노동계만의 외로운 투쟁은 희망버스를 거쳐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정치권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수시로 현장을 찾았고, 국회로 돌아와 현장을 바탕으로한 논리로 정치권의 중재를 촉구했다. 재개는 정치권의 중재 노력이 자율적인 노사 관계에 대한 개입이라며 반발했지만 이미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상 한진중공업 사태를 외면했을 때의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 8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청문회에서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조 회장을 질타하는 보기드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도 주주들에게는 3년 동안 440억원을 배당하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진중공업 경영진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은 "한진중에서는 주주에게 140억원의 주주배당을 하고, 한진중 홀딩스에 50억원을 현금 배당을 하고, 임원의 임금수준을 인상하면서 근로자는 경영상 해고하면 앞뒤가 안 맞지 않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고,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조 회장을 비롯한 기업주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회피하고, 남탓으로 (이번 사건을) 방관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인 분노가 일고있다"며 책임을 추궁하기도 했다.

결국 노사 교섭은 조남호 회장이 정리해고자들의 1년 안 재고용과 해고기간 생계지원금 2천만원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면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후 노동계 내부에서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해고기간 근속연수 인정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는 지난 8일 합의안 서명 이후 94명 정리해고자에 대해 합의서 체결 이후 1년 내 재취업을 시키고 1인당 2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노사 문제를 시민들이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고 정치권에서 권고안을 마련한 뒤 합의하는 과정을 만들어냈지만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조합원 총회를 무산시켜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내려오지 못했다. 조선일보조차도 '지혜롭지 못한 어설픈 행동'이라며 경찰의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은 11일 오후 조합원 총회 찬반 투표가 가결된 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김진숙 지도위원, 그가 남긴 것은?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한진중공업 경영진들이 명백히 잘못된 전략을 써서 경영악화를 가져왔는데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켰다는 데 사회적 여론이 들끊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특히 '경영상의 악화'라는 명분은 사측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하는 무기인데 이 같은 노사 관계의 잘못된 실태를 노동계뿐 아니라 시민들도 깊이 인식하면서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앰뷸런스에 타기 전,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배우 김여진 씨와 민주당 정동영 의원 등 그간 고공농성에 힘을 보탰던 인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향후 과제도 남았다. 근로기준법 24조는 본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입증해야만 해고가 가능하도록 한 조항이지만 정리해고를 정당화시키는 조항으로 악용해 왔다는 점에서 개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모호한 규정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해고를 엄격하게 하는 동시에 최대한 계속 고용하도록 고용 안전망이 확충되는 방향으로 법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시민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버스'도 큰 성과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정리해고 싸움이 있었지만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은 적은 없다. 쌍용자동차 투쟁에서도 공장점거라는 현상적인 문제가 부각되고 정리해고 문제라는 본질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희망버스는 향후 노동 운동의 '롤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분명 고공농성과 희망버스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지만 고공농성은 현상일 뿐이고 본질은 운동 방식의 변화에 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김진숙 지도위원은 고공농성 중 트위터를 활용해 시민들과 소통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알렸다. 기존 노동운동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매번 노동계의 외로운 투쟁이 이번 투쟁에서는 왜 희망버스로 대변되는 시민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 싸움이 쌍용자동차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조직력과 물리력을 앞세웠는데 활동가들이 문제의식을 키우면서 운동방식을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중재 노력도 빠질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권 중재를 두고 자율적인 노사 관계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을 계기로 이제는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정리해고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해고에 대한 보호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투쟁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역사는 2011년 11월 10일을 정리해고 싸움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날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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