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12. 2011년 10월 20일 민가협 목요집회,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 마석가구단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몸이 풀어진다. 일기도 쓰고 정리해야 할 것도 있어서 옥탑방에 올라가 노트북을 켰지만 너무 졸려서 금세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잠자다가 둘째 놈 아침도 못 챙겨줬다. 오전 10시 가까운 시간에 다시 짐 가방을 꾸려서 집을 나섰다. 마나님이 안쓰럽게 손을 흔든다. 충정로 사무실에도 열흘 넘어서 나왔다. 모두 반갑다. 회의 끝에 23일 마무리를 남산 안기부 터에서 하기로 했다. 오후 2시에 교통방송 앞에서 만나 옛 안기부터를 돌아보고, 인권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한 다음 막걸리를 마시며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전날 일기를 써서 올리고 천리길 ‘덤앤더머’ 팀원들과 택시를 타고 탑골공원으로 달렸다.

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석하고

   
▲ 탑골공원 민가협 목요집회 모습. 박래군은 "민가협 어머니, 아버님들이 집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데, 재밌게도 노란 깃발을 들었다. 노란 깃발엔 '좋은 어버이들'이라고 새겨 있었다. 어버이연합에 맞서는 '좋은 어버이들'의 출현"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민가협 목요집회가 860회라고 한다. 1993년부터 매주 목요일이면 탑골공원에서 목요집회를 가져왔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는 일정이 안 맞아 참석을 못했다. 다음엔 꼭 수요집회에도 참석해야지 다짐을 해본다.

낯익은 어머님들, 장기수 선생님들을 비롯해 반가운 얼굴들이다. 왕재산 사건 가족들도 오랜만에 해후했다. 목요집회가 김현주 활동가의 사회로 시작되었고, 여는 말씀으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장님이 말씀을 하셨다. 요즘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소개하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60대의 한 아저씨가 다가가 마이크에 대고 “개소리를 집어쳐라”고 외친다. 당장 몇 분이 뛰쳐나가 어수선해졌다. 경찰이 나와서 갈라놓고 그 사람을 끌고나가서야 판이 정리되었다. 다음에 마이크를 잡은 이는 만삭의 임신부와 아들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였다. 남편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어도 아이 잘 낳고, 잘 키우겠다고 끝내 눈물을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만든 생이별의 사연이 매번의 목요집회에서는 거듭 된다.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만들어내는 비극들이다.

마지막으로 내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개소리는 국가보안법이 존속되어야 한다는 게 개소리’라고 핏대를 높였다. ‘당신들 자식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봐야 아냐’면서 악을 썼다. 어머니, 아버님들이 잘 했다고 손을 잡아주신다. 목요집회를 마치고는 이분들이 손에 손에 노란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신다. 무슨 깃발인가 했더니 ‘좋은 어버이들’이라고 쓰여 있다. 어버이연합에 맞서는 좋은 어버이들의 모임이 생긴 거다.

그리고 인사동 천강(평소 이렇게 줄여서 말했더니 본래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서 왕재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처음 사건이 나고 나를 찾아왔을 때의 불안감을 많이 떨치고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남편은 감옥에 있고, 옥바라지 하는 얘기며, 속 터지는 얘기도 많은데 안에서 걱정할까 봐 속으로 삭히는 얘기 등을 즐겁게 나누었다. 검찰 기록이 6만장이나 된다고 한다. 징그럽게 많은 양이지만, 보나마나 뻔하다.

북한 관련 자료들을 끼어 넣기 해서 만든 자료들일 것이다. 심지어는 어떤 것은 책을 통째로 복사해서 붙인 것도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에 수요일에 첫 공판이 있다. 마침 다른 회의와 겹쳐서 참석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그냥 재판에 같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에게는 힘이 될 텐데.

거의 하루에 한 건 꼴로 국가보안법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신문에는 공무원, 조종사 등 수십 명을 ‘민족방위사령부’ 사이트와 관련해서 조사하겠다는 기사가 실리고, 왕재산 사건 관련 참고인 조사도 확대되고 있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보안법 일만은 놓을 수 없어서 ‘국가보안법 긴급대응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영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63주년 준비를 어떻게 할까 고민이다.

여성가족부 앞 성희롱 사건 농성장

   
▲ 청계광장 옆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 모습. 박래군은 "피해자는 해고 당해 거리로 쫓겨났고, 가해자는 여전히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로 현대차 아산공장에 있다. 국가인권위는 성희롱 결정만 하고, 노동부는 해당 업체가 폐업했다며 발뺌하고, 여성가족부는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한다. 직장내 성희롱 실태조사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현대자동차 성희롱 사건 농성장은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있다. 그곳에 개인용 텐트를 두 개 치고 버티고 있은 지 넉 달이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업체에서 14년 동안 차량 검사를 해왔던 피해자는 2009년 이 문제를 공개했다. 대법원의 지난해 판결로 보면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분이다. 소장과 조장이 보낸 핸드폰 문자에는 노골적인 성희롱의 증거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해자인 소장과 조장은 그대로 현대차 아산공장에 있고, 패자는 쫓겨났고, 오히려 2차 가해를 당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사내하청업체는 폐업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당연히 현대차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발뺌을 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서울로 올라와 서초경찰서에 5월 31일 텐트를 치고 농성을 했다. 그게 현대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에서 집회신고를 하러 갔더니 현대차가 용역들을 고용해서 집회신고를 선점하더란다. 삼성도 마찬가지. 그들은 집회를 막기 위한 위장집회를 위해서 1년이면 10억 원 가까운 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집회 신고를 위해서 말하자면 줄을 선 것인데, 6월 들어서 여성가족부로 옮겨왔다. 국가인권위는 성희롱을 인정하는 결정만 하고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고, 노동부는 업체가 폐업했으니 도리가 없다고 하고, 여성가족부는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다만 지금의 김금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와 피해자의 손을 잡고 갔을 뿐이다.

피해자와 함께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권수정 씨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이 두사람의 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여성단체, 사회단체들이 지원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같이 농성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이 MBC <피디수첩>이나 KBS에도 방영되고, 언론마다 소개되었으니 확산은 많이 됐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여론화하고 있는 중이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서류로만 진행될 뿐이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의 조사와 성폭력상담소의 상담 사례 분석,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사건 분석 등이 있을 뿐,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실태조사는 전혀 없다. 이제야 여성가족부가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갑갑하다. 언제고 복직을 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는데, 그렇다면 겨울을 한뎃잠을 자야 한다는 얘기다. 거의 노상에서 혹한기 겨울추위를 고스란히 견디더라도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고, 복직을 한다고 한다. 거기에 힘내라는 인사만 던지고 차에 올라타는데, 머리 뒤통수가 가렵다.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그려지니 다시 가슴이 내려앉는다. 지난 9월 2일 농성장이 한 차례 뜯기는 일도 겪었는데, 한겨울의 농성이 얼마나 힘든데, 이들만이 아니라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겨울 추위를 길거리에서 농성으로 몇 해를 넘기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 경영자를 시험 봐서 뽑자고 나누었던 농담이 생각난다. 사회적인 책임을 할 수 없는 경영자들은 퇴출시키고,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들만 회사를 경영하게 하는 법 같은 걸 만들어야 하나. 노동조합운동이 제대로 해야 하는데, 답답하다.

방글라데시 음식으로 배를 채우다

   
▲ 마석 가구단지 모습. 박래군은 "성공회 이영 신부의 소개로 방문한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집에서 저녁 먹은 즐거운 담소. 그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고향에 집도 샀다고 자랑이다. 위성방송으로 방글라데시 텔레비전도 시청하고, 인터넷으로 가족들과 화상통화도 한다. 단속만 없으면 이들은 우리의 이웃으로 같이 잘 살 수 있다. 한국말도 잘 하므로"라고 밝혔다. ⓒ박래군
 
방글라데시 음식인 로띠(또는 짜빠띠)에 닭고기를 싸고, 카레를 발라서 포만간이 느껴지도록 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다른 나라의 음식을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를 잘 안다. 거의 입에도 대지 못한다. 그 냄새만으로도 힘들다. 그런데 마석가구단지 내 방글라데시 노동자 집에서는 두툼한 로띠 두 장에 이 음식들을 싸서 배부르게 먹었다. ‘덤앤더머’들이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하다.

이영 성공회 신부의 안내로 마석 성생가구단지를 둘러보았다. 이주노동자를 다룬 몇몇 영화는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이 3백 명이고,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8백 명이 밀집해서 살고, 일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들이 없으면 이 가구단지는 돌아가지 않는다. 2008년 10월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있을 때 이곳에서만 1백 명 넘게 잡아갔다. 그때 우리에게 음식을 준 그 노동자의 사촌이 2층 옥상 기숙사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한다.

가구단지의 전시장은 무척이나 화려하다. 그렇지만 전시장을 지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밤인데도 일에 열심인 이주노동자들을 목격할 수 있다. 아주 심한 냄새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그 곳에서 한국 노동자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기피하는 가구 페인트 칠 같은 작업을 도맡아 한다. 일이 몰리는 철에 어떤 노동자는 하루 2시간만 자고 새벽 4시까지 일하고는 했다고 한다. 우리 천리길 팀의 더머인 최현모 활동가는 이주노동운동을 할 때 3년 만에 폐병을 얻어서 죽은 경우를 말해준다.

저녁 6시에 퇴근한 그는 우리에게 맛난 음식들을 대접해줬다. 잠자는 방과 부엌과 씻는 곳이 같이 붙은 방 두 개를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8만 원을 내고 살고 있는데, ‘방세를 올려달라고 하지 않냐’는 이영 신부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적어서 빈 방이 많단다. 회사에 달린 기숙사는 대부분 옥탑에 가건물로 지어져 있다.

단속반이 뜨면 이런 방에 시건장치도 부수고 수갑을 채워간다. 인간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이다. 그들은 눈빛부터 다르고,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더욱 살벌해졌다고 한다. 11월에 집중단속 기간이 있다는데 걱정이란다. 언제 그들에게 남의 방까지 침입하여 잡아가도록 했는지, 출입국관리법의 조항 하나 고쳐서는 출입국관리국 직원들은 경찰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한 번은 경찰 1개 중대가 엄호하는 가운데 마구잡이로 잡아갔다니 이런 현실이 기막히다.

최근에는 E7 비자를 발급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숙련기능공 노동이주를 공식화하는 움직임이 될 것이라는데, 법무부가 이를 반대하고 있단다. 그냥 돈벌이를 위해서 들어온 이들이 노동을 하고, 그들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그러다가 돌아가면 될 것을. 두 시간여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나와 근처에서 이영 신부가 맥주를 샀다. 이영 신부는 이주노동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를 차리고 싶은 계획을 말한다. 말 뿐인 다문화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사는 방법을 통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된 뒤 북은 통일한국의 내부 식민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이 빨리 뜨고, 잘 되기를 빌어본다.

오늘밤은 마석 모란공원에 붙어 있는 후배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후배 부부가 술이며, 안주를 충분하게 준비했다. 술자리에서 세상의 수많은 얘기들, 그리고 요즘의 운동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내일(21일)에는 오전에 마석 모란공원을 돌아보고, 오전 11시에 있는 이소선 어머님 49재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오후 3시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넘어간다. 그리고 오후7시에는 재능교육농성장에서 열리는 문화제에 참석하고, 거기서 1박이다. 텐트도 못치고, 한뎃잠을 자는 그들과 하룻밤이라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1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3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③] 10월 11일 광주 망월동, 인화학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4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④] 10월 12일, 소록도 전북고속 천막농성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5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경남 산청 합동 묘역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9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⑥] 원폭피해자협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3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⑦] 강정보, 달성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7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⑧] 부산 한진중공업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8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⑨] 상지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228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⑩] 한국DMZ생명평화동산, 을지전망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28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⑪] 쌍용차, 유성기업, 삼성백혈병 투쟁 현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284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