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줄 아시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육성’이 나온다. 자신의 도덕성을 둘러싼 각종 의혹제기를 ‘거짓말’로 일축했지만, BBK 등 핵심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신뢰의 위기’,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말이다.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는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입방아의 대상만 됐다. ‘구호 정치’가 통했던 이유는 언론의 역할 때문이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견제의 칼날을 뒤로한 채 ‘청와대 홍보소품’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여권에 ‘선거공포’를 안겨줬다. 민심이 얼마나 여권에 등을 돌렸는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여권은 이대로 가면 2012 선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탈출구가 필요하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CBS노컷뉴스
 
국민, 특히 취약세대인 20~40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변화의 모습이 필요하다. 주목할 대목은 ‘진짜 변화’인지, 변화하는 시늉인지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때도 그렇고 4․27 재보선 때도 그렇고 선거에서 참패할 때마다 변화와 쇄신을 약속했다. 하지만, 4대강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형님예산’ ‘대통령 측근비리’ 등 권력과잉의 '위험한 단맛'을 누렸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 이후 다시 ‘쇄신’과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2004년 차떼기 파문 당시의 ‘천막당사’ 해법을 연상시키는 중앙당사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버핏세(부유세) 도입을 검토한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뭔가 달라지려는 것 같다는 인식을 유도하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방선거 때와 4․27 재보선 패배 때도 이번처럼 쇄신의 목소리가 나왔고, 언론의 관련보도가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두 얼굴의 한나라’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정말로 민심을 수용해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면 언론 홍보용 쇄신이 아니라 말과 행동, 정책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문제는 언론을 통해 쇄신을 공언하면서도 내부의 ‘쇄신 목소리’는 차단하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식, 정태근, 김세연 등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5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 이어 의원들의 서명을 담은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부글부글 끓고 있고, 한나라당 내부도 이들 의원의 행동에 대해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이어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분명한 점은 한나라당이 대외적으로는 쇄신을 공언하고 있지만, 정작 내부의 쇄신 목소리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쇄신 약속이 ‘시늉’이 아니라면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정치’를 상징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재검토 수준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CBS노컷뉴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청와대 거수기’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처리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이다. 한미 FTA 강행처리를 우려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한미 FTA 강행처리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야당은 민심의 뜻을 수용해서 한나라당과 정부에 독소조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목소리를 한나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묵살하는 게 변화된 한나라당의 모습일까.

한나라당이 쇄신을 약속하면서 국회에서는 물리력을 동원해 한미 FTA 강행처리를 시도한다면 한나라당의 그 변화와 쇄신에 대한 주장은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할까.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형님예산’을 놓고 여론이 악화되자 22명의 의원들이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날치기 처리 거부를 선언했다.

당시 그 서명에 동참한 인물 중에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도 포함돼 있다. 진짜 민심을 받드는. 민심을 우롱하지 않는 행동은 무엇일까. 적어도 자신의 입으로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것 아닐까.

하지만 황우여 원내대표와 남경필 외통위원장 모두 한미 FTA를 강행처리하려는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이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쇄신을 약속하고 있지만, ‘두 얼굴의 한나라당’이 존재한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려면 한미 FTA 문제부터라도 ‘민심 경청’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한나라당이 야당의 우려를 무시한 채 ‘강행처리’를 시도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스스로 ‘청와대 거수기’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쇄신에 대한 약속은 “이거 다 거짓말인줄 아시죠”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얘기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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