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11. 10월 19일 쌍용차, 유성기업, 삼성백혈병 투쟁 현장

에바다 해아래집에서 일기까지 올리고 나니 6시 45분이다. 예정 시간보다 15분이 늦었다. 7시 15분 도착이다. 정확히 15분 늦었다. 제법 손이 시려 손을 비비게 된다. 정문 왼쪽에 마련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노조 사무실에서 해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전 7시 20분 넘어서 해고자들과 출근투쟁을 했다. 홀수 날마다 하는 출근 투쟁이란다. 회사와 집회 신고 문제로 실랑이를 하다가 타협한 게 노조는 홀수, 회사는 짝수 날 하는 거랬다. 당연히 회사는 아무 것도 안 한다.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 해고자들이 늘어서고, 우리 일행도 정문의 한 편에 피켓을 들고 섰다. 해고자들 옆에는 백구가 앉았다. 꼭 사람이 시위를 하는 것 같다. 기특하게도 이 개는 출근투쟁을 하는 내내 해고자와 함께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개를 해고자들이 ‘박영태’라고 부르는데 박영태는 파업 당시 회사 대표였다가 지금은 인도 마힌드라가 인수한 회사에서 전무를 맡고 있다. 이 자는 꼭 김종훈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개를 왜 박영태라고 부르는지는 처음엔 몰랐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출근투쟁

   
▲ 쌍용자동차 정문 모습. 박래군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아침 출근투쟁에 함께 했다. 해고자들이 피켓을 들고 선 사이로 노동자들이 출근하고 있다. 더러는 아는 체를 하고, 조합 간부들과 말도 하고 간다. 저들의 심정은 어떨까"라고 밝혔다. ⓒ박래군
 
2천6백여 명의 해고, 그리고 17명의 죽음. 2009년 77일 간의 파업을 정리할 때 회사는 1년 안에 무급 휴직자를 복귀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사는 일언반구도 없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문제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발언도 많이 했다. 10명밖에 안 되는 대상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게 해고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회사는 그 어떤 요구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해고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어떻게 해도 연락이 안 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다. 사람이 말이라도 해야 죽지 않을 것인데, 철저하게 혼자 고립된 속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며 죽어간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첫째, 인도 마힌드라가 인수한 회사가 제대로 경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벌써 700~800억 원 적자라는 소리가 들리고, 인수한 마힌드라가 투자 계획이 없다느니, 신차 개발도 미루는데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해고자의 복직이나 무급휴직자들의 복귀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란 점에서다. 2009년의 8.6 대타협 이후 회사와 정부는 계속 약속을 미루고만 있는 답답한 현실을 그들은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 박래군은 "해고자들이 출근투쟁을 하면 백구도 같이 한다. 이런 모습은 사람보다 낫게 보인다. 마치 시위를 하는 것처럼 출근투쟁 내내 정문 앞을 지켰다. 그런데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손을 콱 물어버렸다. 낯선 이가 건드리면 이렇게 성질을 드러내고는 한다"고 밝혔다. ⓒ박래군
 
둘째는, 또 어디선가 누군가가 죽어갈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노동자와 그 가족이 17명이 죽었는데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방법이 무엇이 있겠냐는 점이다. 연락도 끊고 있는 이들이 문제인데 도저히 찾아낼 방법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줘서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누군가가 죽어갈까 봐 걱정이다. 그것은 단지 회사 밖으로 내쳐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이제는 안의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는가. 동료들 간의 극심한 대립을 조장했던 회사의 야비한 방침,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어용 노조의 쌍용차지부에 대한 비난과 음해 등이 더욱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쌍용차 지부는 월동준비를 한다. 오는 10월 28일(금) 오후에서부터 늦게까지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있는 노조 사무실 뒷마당에서 무대를 만들어 놓고, 주점을 여는 것이다. 주점보다는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더욱 갈망하는 그들이다. 나도 거기에 가기로 했다.

쌍용차 지부에서 나와 잠시 평택연대 회의가 열리는 평택 흥사단 사무실로 갔다. 거기서 인권센터 저금통도 돌리고 천리길 얘기도 간단히 했다.

유성기업 노조는 다시 쫓겨나고

   
▲ 아산 유성기업 정문 모습. 박래군은 "19일부터 아산 유성기업 정문을 용역들이 막아섰다. 해고자와 출근정지자 등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파업 기간 중에 동원되었던 용역과 똑같다고 한다. 다만 용역회사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그리고는 천안으로 가는 중에 유성기업에 들르기로 했다. 유성기업 정문은 용역들로 막혀 있었다. 사실 유성기업이 90일 넘도록 파업을 하고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을 때 찾아와야 하는 것인데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굳이 유성기업을 가겠다고 일정에 잡아 놓은 것인데, 이들은 또 어려운 투쟁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해고자들과 출근 정지자들은 아예 출입을 봉쇄했다. CJ시큐리티라는 용역회사가 파업 투쟁 때 투입되었는데, 그때의 요역들이 또 정문 봉쇄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용역회사가 다른 회사로 이름만 바꾸어서 다시 투입된 상황이다.

유성기업은 회사와 단협을 통해서 올해부터 주간 2교대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노동현실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는 구호로 이런 요구를 대중화시켰다. 그렇지만 직장폐쇄로 노동자를 밖으로 내몬 회사는 용역을 세워 폭력을 휘두르며 온갖 불법을 다 저질렀다. 직장에 복귀한 뒤 어용노조를 앞세워 파업 참가자들을 회유, 협박했다.

회사 고위직 간부가 파업 참여자에게 어용노조로 간다면 징계 수위도 낮춰주고, 민사소송에서 빼주겠다고 노골적으로 회유하는가 하면, 이쪽 노조가 하는 것에는 건건이 징계를 경고하지만 저쪽 노조가 하는 잘못은 ‘사람이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 노골적으로 편을 든다고 한다. 복수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노동자들을 분리통치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가 쌍용자동차나 유성기업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홍종인 노조위원장은 권력과 자본측의 공격은 조직적이고, 전국적이라고 말한다. “경주의 발레오, 구미의 KEC, 인천의 삼화고속 등의 사례를 보면, 이것은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별적으로 대응하다가 개별적으로 깨진다. 공격적인 직장폐쇄를 통해서 저들은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려고 한다. 이럴 때 전국적인 연대파업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언제까지 개별적으로 공격에 대응하다 깨져 나가야 하나. 전국의 노동자가 단 5분만이라도 기계를 실제로 멈추는 일을 하면 달라질 텐데.”

다시 쫓겨난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자들. 이들은 줄줄이 경찰서에, 검찰에, 법원에, 그리고 회사에 끌려 다니며 범죄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와 용역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이 편파적인 회사와 공권력을 이겨내고 민주노조를 지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회사 밖 농성장을 준비하는 이들과 헤어지면서 “꼭 이기세요” 했더니, 그곳의 노동자들과 가족대책위 사람들이 오히려 내 걱정이다. 투쟁 사안마다 결합해서 구속되고는 했던 내 전력 때문이리라.

10월28일을 반도체 노동자의 날로!

   
▲ 천안 철탑공원 모습. 박래군은 "'2011년 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 캠페인이 천안에서 있었다. 공원 한 편에 걸린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 사진. 대부분 20대에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암에 걸려서 사망했다. 그 수가 47명. 더 이상 빈 칸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래군
 
천안 버스 터미널 건너편 철탑공원에는 정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썰렁하다. 캠페인 장소로는 적절치 못한 것 같은데, 어쨌든 거기에 ‘2011년 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약칭 반달) 캠페인을 진행하는 반올림 활동가들이 서명도 받고, 영상도 틀고, 전시도 하고 있었다. 방진복을 입은 공유정옥 씨를 비롯한 반올림 활동가들. 그들은 지난 9월 27일 부산과 수원, 9월 28일 서울 청계광장, 10월 5일 청주, 10월 12일 일산을 거쳐서 전국을 돌면서 심각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알려 왔다. 오늘은 천안이고, 다음 주 금요일 28일에는 서울에서 반달 캠페인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삼성에서 죽어간 반도체 노동자는 47명, 그들은 19살에 삼성에 들어가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작업을 해오다 백혈병이나 암 등에 걸리고, 우울증에도 걸려서 20대, 30대에 죽어갔다. 그들은 “방진복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믿고 일한 노동자. 자신이 취급하는 화학물질과 가스가 어떤 성분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노동자. 흘러나온 화학물질을 보호구도 없이 맨 손으로, 걸레로 닦아내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노동자. 생식독성의 위험성을 모른 채 임산부는 들어가지 말아야할 클린룸에 투입되며 오히려 허리 품이 넓은 방진복이 제공됐다며 좋아했던 노동자. 양산에 앞서 설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설비를 구축했던 노동자. ‘불임가스’, ‘유산가스’라고 지칭되는 유해 물질에 방치되어 코로 냄새를 맡아가며 설비 이상을 찾아냈던 노동자. 10시간, 12시간, 15시간 장시간 일하던 노동자. 잠자리에 들어도 호출 받으면 곧바로 뛰어 들어갔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런 노동자들에 대한 삼성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렇게 죽은 이들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행히 법원의 1심에서 처음으로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상황이다.

거기서 백혈병과 암으로 죽은 이들은 근로환경과는 무관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삼성과 이를 편드는 근로복지공단에 맞서서 사람들에게 죽은 이들, 피해자들을 대신해 말을 하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오는 10월 28일 반도체의 날을 ‘반도체 노동자의 날’로 역규정하고, 근로복지공단을 인간띠로 두르며 항의하고, 저녁에는 문화제를 연다고 한다. 가수 박준, 연영석 씨가 흥을 돋우는 노래,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이 영상이 이어졌고, 공원에서 작은 문화제가 끝난 뒤에는 참가자 모두가 “호~” 기념촬영을 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자는 의미란다. 정말 그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들의 권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세 군데의 노동권이 침해되는 현장을 돌아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 최대의 인권문제는 노동권이다. 노동조합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공권력, 못돼 먹은 자본가들까지. 결국 우리 사회 인권문제의 핵심은 폭력과 차별을 낳는 잘못된 소유구조에 있는 것 같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새로운 지배신분을 획득한 나라에서 노동의 가치는 무시되고, 노동권은 실종되고 있다.

사회복지국가를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노동조합 조직률 10%의 나라,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는 재벌들이 전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런 나라에서 사회복지국가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말이다.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사회복지가 제대로 말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천안 일정을 마치고 열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니 세 여성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환대해준다. 길을 떠났던 노독이 몰려와 일기도 미루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내일부터 4일 동안 천릿길 마지막 여정을 달린다.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1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3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③] 10월 11일 광주 망월동, 인화학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4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④] 10월 12일, 소록도 전북고속 천막농성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5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경남 산청 합동 묘역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9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⑥] 원폭피해자협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3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⑦] 강정보, 달성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7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⑧] 부산 한진중공업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8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⑨] 상지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228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⑩] 한국DMZ생명평화동산, 을지전망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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