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8. 10월 16일 솥발산 공원, 부산 한진중공업

지난 일요일 천리길을 떠나기 위해서 집을 떠나 제주로 갔으니, 이제 천리길 여정이 일주일을 넘어 8일째다. 나름 일요일이라고 조금은 헐렁하게 일정을 잡아서 느긋하게 시작했다. 이계삼 선생 집에서 아침 7시에 일어났으니 다른 날보다는 2시간 늦은 기상이었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으면 몸이 가벼워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일주일 간 무리하게 달려와 피로가 누적된 탓일 것이다.

아침도 잘 얻어먹고, 그가 쓴 책 두 권도 받았다. 최근에 낸 그의 책은 ‘변방의 사색’이다. 사보고 싶었는데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싶어 염치없이 덥석 받았다. 그러고도 페이스 북에 일기를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올리고 11시 넘어 출발했다.

김주익 열사 8주기에 찾은 솥발산 공원

   
▲ 양산 솥발산공원 열사묘역 안내도. 박래군은 "이곳에 몇명의 열사가 묻혔는지 세지를 말자. 주검은 이곳에 묻혀 흙이 되었어도 누구의 마음 속에 들어가 사는 이들일 수 있으니 가슴 속에 이들의 이름 하나 담아두면 어떨까"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양산 솥발산 공원은 언제 와 보았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묘지 관리소 앞의 표지판을 참고하고 기억을 더듬어서 열사들의 표를 하나하나 찾아가 참배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묘소들 사이에 자리 잡은 열사들의 묏등들. 마석 모란공원에 수도권 열사들이,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호남 지역의 열사들이 주로 묻혔다면, 양산 솥발산 공원에는 영남지역의 노동열사들이 주로 모여 있다. 묘지 하나하나를 돌면서 기억나는 대로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신발업체 노동자였던 권미경은 1991년 회사의 잔인한 노무관리에 맞서다 “나는 공순이가 아니다. 내 이름은 미경이다”는 유서를 팔에 유성 펜으로 쓰고 투신해 죽었다. 배달호는 2003년 1월에 창원 두산중공업의 노조 와해작전에 맞서다가 죽었으며,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그를 사람들은 ‘호루라기 아저씨’로 기억했다. 특히 그의 죽음에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가혹한 법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결정도 한몫했음을 얘기했다.

2004년 2월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박일수가 분신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왜곡과 비방, 탄압은 큰 문제가 됐다. 결국 현중노조는 민주노총 금속연맹에 제명됐고, 박일수의 죽음은 비정규직 차별철폐 투쟁을 촉발했다. 정경식은 1987년 6월 항쟁 직전에 노조 민주화와 관련해 배신한 동료를 만나러 나갔다가 실종, 다음해 3월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됐고, 그의 어머니 김을선은 자식의 진상규명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다가 지난해 10월에서야 23년 만에 이곳에 장례 지낼 수 있었다. 정경식의 어머니 김을선은 마산․창원 지역에서는 이소선의 어머니처럼 ‘어머니’로 불렸다. 이런 식으로 묘지의 주인들이 열사들의 사연을 훑으며 묘지들을 돌아보았는데, 우리는 유난히 한 무덤 앞에 오래 머물렀다. 우선 그의 비문에 쓰인 글을 소개한다.

   
▲ 23년 만에 장례 지낸 정경식의 묘. 박래군은 "그의 어머니는 김을선, 23년 동안 아들의 사인을 밝히겠다고 동분서주해야 했네. 이제 간직했던 유골을 모아 이곳에 영가를 만들었으니, 그의 한과 함께 그의 어머니를 기억하시길"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죽음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 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 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으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이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2003년 9월 9일/ 2003년 10월 4일 작성한 두 장의 유서 중 발췌)

그렇다. 85호 크레인에서 2003년 10월 17일 129일 만에 목을 맸던 김주익 열사의 유서다. 소금꽃 김진숙이 왜 85호 크레인에 올라갔으며, 왜 저리도 처절하게 버티고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가.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온갖 고락을 같이 했던 동지 박창수는 1991년 5월에 의문사로 죽어갔고, 또 다른 동지 김주익은 2003년 10월에 죽었고, 현장 선배였던 곽재규는 2003년 10월 30일에 도크에 몸을 던지며 민주노조를 지켜왔던 것이다. 영남지역에서 핵심적인 노동조합인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은 정치권력이나 자본가에게는 반드시 깨고 싶은 노동조합이었던 것이고, 그런 만큼 가공할 탄압 앞에 노동조합의 투쟁은 힘겹게 이어가야 했다.

1991년 5월 박창수 당시 노조위원장의 장례를 지내려 내려갔던 한진중공업에서 김진숙을 보았고, 지금 85호 크레인에서 112일째 농성 중인 박성호를 그때 만났다. 그들과의 질긴 인연이 20년을 넘어가고 있는데 그들은 지금 크레인에 있는 것이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희망의 버스에 동승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 생각에 젖어 들었다.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를 설명하는 나의 목소리도 울먹였고, 설명을 듣는 일행들도 어느새 훌쩍인다. 마침 오늘이 김주익 열사의 8주기 제삿날이 아닌가.

양산 솥발산 공원, 이미 앞서간 동지와의 약속을 위해 85호 크레인을 지키는 김진숙이 있고, 나 또한 내 동생과 숱한 죽음들 앞에서 내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 서 있으니,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김진숙과 내가 둘이 아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둘이 아니고, 노동자와 소수자가 남이 아니고, 세상의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모두 하나이고 하나여야 함을. 허나 현실에서 조그만 차이로 구분하고, 위계를 만들고, 작은 완장 하나에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이곳에 와서 죽은 이와 말을 나누어 보라.

너무도 묵직해진 마음들을 추스릴 수 없어 근처에 있는 통도사에 들렀다. 오래된 사찰 건물들이 정겹게 맞아준다. 대웅전 뒤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신 주위를 합장한 채로 돌며 ‘억울한 죽음이 더는 없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85호 크레인 앞에서

   
▲ 어둠이 내리는 85호 크레인 모습. 박래군은 "아직 김진숙이 거기 있고, 중간에 있던 그들도 여전히 거기 있다네. 284일과 112일을 버텨온 농성을 아직 그들은 끝낼 수 없다네. 아직은 투쟁 중이고, 교섭은 이제 시작된 것일뿐, 그들이 무사히 내려올 때까지 여기를 지켜보아야 한다네. 그들이 너무 외롭지 않게, 그들이 너무 춥지 않게"라고 밝혔다. ⓒ박래군
 
통도사 앞 경기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우리의 승합차는 곧바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으로 달렸다. 마침 지난 금요일 한진중공업 지회장 선거가 있었고, 선거에서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가 미는, 즉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이들을 지지하는 차해도 씨가 노조위원장에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국회가 제안한 권고안을 조남호 회장이 수용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실무교섭이 지난주에 진행됐지만 지회 위원장 선거를 본 뒤에 교섭을 재개하기로 한 상황에서 찾아가는 길이었다.

부산 영도는 바람이 몹시 세찼다. 거리에서 맞는 바람이 이처럼 세차다면, 저기 지상 35미터 크레인 위는 더욱 거센 바람이 불 것이다. 스케치 북에 “조금만 더 힘내세요.” “우리가 이깁니다.”라고 쓰고는 85호 크레인 맞은편 인도에서 먼저 박성호와 통화했다.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지만 털을 깎지 않은 더부룩한 모습의 그가 손을 흔든다.

이어서 등장한 김진숙, 두 팔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우리 일행도 정신없이 손을 흔든다. 스케치 북에 쓴 글을 전화로 알려주니 좋은가 보다. 너무도 기쁜 탓에 사진을 담당한 이선일은 사진을 찍을 생각은 안 하고 저도 덩달아서 손을 흔들고 기어이 “사랑해요.”라고 큰 소리를 외친다. 이 짧은 만남, 언제나 이렇게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지, 김진숙은 284일을 그곳에서 버텼고, 그 아래에서 박성호 등 3명은 112일을 버텼고, 바깥에서는 조합원과 가족들이 또 버티며 오늘까지 왔다.

그 진정성이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여 희망의 버스가 다섯 번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노동의 문제를 이제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만 해도 김진숙과 그의 동지들은 많은 것을 해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은 아니다. 밀고 당기는 교섭이 끝나고 실질적인 정리해고 철회가 되어야 김진숙과 그의 스머프들은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

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 사람들은 부산민주공원에 가고, 한진 앞에는 담당조 열 명 정도의 조합원들이 지키고 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 지키고 있었다. 마침 강정마을에서 아줌마 둘과 아이 둘이 이곳을 찾아와 크레인에서 보라고 강정마을 노래와 바위처럼 노래에 맞춰 귀엽게 춤을 추었다. 김일수 정투위 부대표는 지회장 선거에서 이긴 게 기쁘지만, 앞으로 교섭이 잘 될지에 대해서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미는 후보가 큰 차로 진 판에 회사는 수세에 몰렸지만 또 어떤 술수를 부릴지 모르므로 교섭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건너편 모습. 박래군(사진오른쪽)은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서 손을 흔든다. 두 팔을 힘차게 흔든다. 그에게 스케치북에 힘내라고 구호를 적어서 보여준다. 그가 크레인에서 나와 손을 흔들 때 사진 찍어야 하는데 저도 신나서 같이 손 흔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고 밝혔다. ⓒ박래군
 
영도에 어둠이 내리고, 밥이 줄에 매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몸 상하지 않게 하라는 요지의 문자를 보내니 “걱정마시고 식사하세요^^”라는 간단한 답 문자가 왔다. 일행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문자를 하라고 하니 너무 신나서 문자질이다.

85호 크레인 앞을 떠났을 때는 이미 어둠이 완전히 내렸다. 대구 수성못 근처에 허름한 여관방을 잡아서 오늘은 묵기로 했다. 내일은 원주 상지대를 거쳐서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DMZ 생명평화동산에 간다. 분단의 현장을 보고, 분단 문제로 인한 인권문제를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찾아간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 무리하지 않고 자기로 한다.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1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13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③] 10월 11일 광주 망월동, 인화학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4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④] 10월 12일, 소록도 전북고속 천막농성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5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경남 산청 합동 묘역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29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⑥] 원폭피해자협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032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⑦] 강정보, 달성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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