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 이 소문의 내용은 중공국가 주석 이선념이 지난달초 평양을 방문하기전에 북한군 일부에서 김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암살기도 가담자들은 중공으로 도주했으며 북한이 중공측에 대해 이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오던중 이 사건에 가담했던 나머지 일파들이 결국 김을 암살했다는 것으로 돼 있다”

86년 11월 조선일보 도쿄특파원이 보내온 기사의 일부분이다. 16일 1면 4단 기사로 처리된 이 기사는 단지 소문을 전달한 것에 불과한데도 한동안 전국을 ‘김일성사망 신드롬‘으로 몰고가는 기폭제가 됐다. 예전에도 김주석을 둘러싼 추측기사가 난무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소문이라면 그냥 넘길 법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언론들은 확인도 없이 예의 경마저널리즘을 동원, 앞다퉈 ‘김일성 죽이기’에 나섰다.

당시 일부 신문들은 ‘낙종’만회를 위해 휴간일인 17일 호외를 내는 등 법석을 떨었으며 18일부터 본격적인 물량공세를 폈다. 처음 ‘피격설’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조선일보는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이날부터 ‘김일성 피격사망’이라고 단정보도하기 시작했다. 총지면 12면중 7면을 관련기사로 채운 조선일보는 ‘주말의 동경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화자찬 기사까지 내보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사들의 보도태도는 처음부터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단지 중앙일보가 ‘사망설’이라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전반적인 흐름에서는 별 다를 바 없었다. “김일성이 열차에서 총을 맞았다”는 것에서부터 “폭탄에 당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등 미확인 정보들로 지면과 화면이 도배됐다. 그러면서 “40년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등 시민들의 반응을 함께 배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언론들이 머쓱해진 것은 조선일보 사망설 보도가 나온지 사흘만인 18일. 이날 오전 김주석이 평양공항에 나타나 몽고주석을 영접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언론이 근거없는 소문 하나만으로 사흘동안 국민들을 우롱해 왔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같은 엄청난 오보가 나오기까지에는 당시 군사정권의 ‘안보만능주의’도 한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대북정보 수집 능력을 자랑하던 정부가 단지 ‘소문’ 하나만으로 연일 대책회의를 갖는다, 북의 도발 가능성을 탐지한다는 등의 법석을 떨면서 적절히 ‘냉전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 오보의 궁극적인 책임은 언론에 있었다. 해외정보원이 내뱉은 한마디를 자가발전시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펜대 하나로 죽여버린 경솔함에는 우리언론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안보상업주의라는 표현도 이때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우리언론은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국민을 우롱하고 세계적인 웃음거리를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네탓이오’만을 외친다. “북한의 폐쇄성이 만들어 낸 오보였을 뿐 우리는 당연히 할일을 했다”는 식이다. ‘세계적인 오보’를 만들어 냈던 언론사의 변명은 그래서 더욱 구차하게 느껴진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