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1.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오전 7시, 부천역에서 스타렉스 승합차로 네 명이 천리길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400킬로를 넘는 완도항에 가기 전에 시간이 남는 것 같아서 영암 도법사에 들렀습니다. 대웅보전의 임옥상 화백의 작품도 보고, 미륵전에서 석조여래좌상 앞에서는 천리길이 잘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심때를 놓쳐서 완도항에서 컵라면으로 때운 뒤 세 시간을 달려 제주항에 도착, 강정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경. 강정 코사마트 사거리 공터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주민들과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외지에서 달려온 분들이 말씀도 나누고, 노래도 한 자락씩 했지요. 저도 갑작스레 소개를 받아서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노래 한 자락 했습니다. 그 시간만은 서로 얼굴 보니 좋은 시간이었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겨우 60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지만….

   
지난 9일 박래군 이사가 완도항에서 제주로 가는 페리 앞에서 함께 가는 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박래군
 
근처 황제치킨에서 변 위원장과 시작한 술자리에 평화바람 구중서가 합류하더니, 강정마을 정영희 여성위원장, 강동균 마을회장이 구속되어 그 역할을 도맡고 있는 조경철 마을 부회장, 그리고 고동림 주민들이 합류하는 술판으로 커졌습니다. 다들 구럼비 바위만이 아니라 산호초와 다금바리가 자라는 앞바다와 어디나 맑은 물이 나와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짓는 땅과 마을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에까지 그들은 너무도 강정마을에 대해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조 부회장님이 “농사만 짓던 사람이었는데, 경찰서에 법원에 쫓아다닐 줄 몰랐다”는 그 푸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내일 있을 천주교연대의 발족식 준비로 바쁜 천주교인권위 활동가들과 다시 한 잔 하고 솔대왓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숙소에서 바라보는 어느 열대의 이국적인 도시의 밤 같았습니다. 달빛은 고루 세상을 비추고, 인근 바다에서 어로 작업을 하는 어부들의 배의 불빛, 그리고 조용한 밤은 너무도 평화롭게 깊어만 갑니다.

이 밤이 지나고, 파괴된 구럼비 바위, 펜스와 견찰들로 둘러싸인 살풍경을 보아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 밤입니다. 그래도 마주해야 할 진실을 피할 수 없겠지요.

내일은 아플지라도 오늘밤은 깊이 잠들어야겠습니다. 모두 평안한 밤이 되시길….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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