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이달 말까지 비준할 거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9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지만 우리는 FTA 비준을 위한 마지막 지점에 와 있다”면서 “미국의 TAA, 무역조정지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한미 FTA에 대한 국내 우려를 완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의 이 같은 돌출 발언은 아직 민주당 등 야당이 10가지 선결 조건을 내세우며 재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를 무시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 신문은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비준안 통과를 밀어붙일 만큼 충분히 힘이 세지만 강력한 반미 정서와 반대 여론이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김 본부장은 민주당의 반대에 조급하고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은 “우리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면서 “(재재협상은)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릴 것이며 협상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비준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본부장은 지난 5일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경우) 상원의 마지막 회기일이 21일이고 상원 원내대표도 그전에 (FTA 이행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며 “그전에 처리되면 좋겠지만 늦어도 21일까지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 10월9일 온라인 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부 전문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한미 FTA 통상교섭 대표로 협상하던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노골적인 미국 편들기로 진짜 국적이 어디냐는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1차 협상 직후 버시바우 주미대사를 만나 쌀 시장 개방 유예가 끝나는 2014년 이후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약속했다. 명백한 이면 협상이고 협상 정보 누설이었다.

김 본부장은 이밖에도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최우선으로 다루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미룰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이슈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김현종 전 본부장 등은 의약품 수입 협상과 관련, “미국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5일 성명을 내고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논하기 전에 이 협정을 이토록 최악으로 만들고 이를 숨겨온 통상관료들에 대한 청문회부터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국본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대표라면 마땅히 거수기가 되기를 거부하고 이 중차대한 협상에서 국민 아닌 다른 주인을 섬긴 외교관료들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찬반 논란은 벌써 5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합의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미 FTA의 장밋빛 전망은 통계 조작 의혹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투자자-국가 소송제 등의 독소조항에 대해서도 아무런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핵심 이익은 협상 과정에서 모두 날아간 상태라는 지적도 있고 저작권법과 의약품 특허 등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야당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데다 당장 이달 26일 재보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날치기 통과를 밀어붙일 경우 거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날치기 통과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본부장의 기대와 달리 10월 말은 물론이고 올해 안에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