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입장

경찰이 휩쓸고 간 명동성당은 흡사 87년 6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듯 했다. 곳곳에 성명서가 나붙고 농성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국기도회가 부활하고 성당 뒷편 성모마당에서는 신부들이 농성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명동성당 신부들의 시국기도회는 우리사회 변화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보는 국민이나 정부당국의 눈은 예사롭지 않다. 그 격변의 현장을 정리하기에 바쁜 장덕필 명동성당 주임신부를 만났다.

-명동성당이 생긴지 97년만에 처음으로 경찰력이 투입되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교회는 힘에 눌려 호소할 곳을 잃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데 그런 의무가 박탈된데 대해 심한 자괴감을 억누를 수 없다.

지난날 군사정권 시절에도 명동성당은 자신의 힘만으로 불의에 대항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피난처가 돼왔음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현 정권이 이른바 문민정권의 이름으로 탄생한 배경이 된 6·10 민주항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힘을 모태로 해서 태어난 문민정부가 모태를 부인하고 짖밟았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에 앞서 언론은 이른바 성역논쟁에 불을 붙였는데.

“정부와 언론은 ‘법앞에 성역이 없다’는 표현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성역이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도덕적인 영역이다. 성역이란 치외법권적인 특정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는 정신적인 보루라는 뜻이다. 인간의 양심이야말로 보편적인 성역이며 오히려 법이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다.
그것은 정권이나 언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절대적인 가치이다.”

-한국통신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언론보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사실 언론보도에 문제가 많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언론의 공익성을 생각할 때 대화를 통한 해결이 희망적으로 전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론 언론마저 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언론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우리는 처음 한국통신 노동조합이 농성을 시작했을때 그들이 과연 국가전복의 의도가 있는지, 범법자인지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는 상당부분 왜곡과 축소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언론이 일시에 빗나간 성역시비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일부 언론이 ‘성역’문제와 관련해서 마치 교회가 자신의 안전을 향유하기 위해 특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교회의 역사나 가까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 마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며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전혀 모르는 판단임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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