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눈물.

취재기자와 편집기자가 작심을 하고 만든 지면의 굵은 활자다. 인천지역 두 기업의 ‘엇갈린 운명’으로 문패를 단 사회면 머리기사는 ‘14년 무파업 선물’이라는 기사와 ‘7년 파업의 눈물’ 기사를 나란히 사진과 함께 올려놓아 지면의 극적 효과를 높였다. 맞물린 사진으로도 강조했듯이 ‘선물’기사는 14년 파업을 하지 않은 동국제강 인천제강소는 초고속 성장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반면에, ‘눈물’ 기사는 ‘전기-통기타 매출 세계 1위’ 기업인 콜트악기가 파업으로 공장 문을 닫는다는 기사다.

‘콜드악기 피멍울’ 3년 만에 정정보도

동아일보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돋보이게 편집한 지면의 의도는 또렷하다. 공연히 파업하지 말라는 ‘훈계’와 더불어 노동운동에 대한 살천스런 ‘공격’이다. 이를테면 ‘7년 파업의 눈물’기사를 읽었을 대다수 독자는 울뚝밸이 솟을 수밖에 없다. “노조의 강경 투쟁 때문에 직원 120여명이 평생직장을 잃고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됐다”거나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해외 바이어들이 고개를 돌렸다”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노동조합이 해도 너무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더구나 바로 옆에 소개된 같은 지역의 무파업 회사에서 노사가 축배를 나누는 모습은 노동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한층 강화해주었을 터다.

   
동아일보 2008년 8월2일 11면.
 
그런데 어떤가. 콜드악기 노동자와 가족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하고 노동운동에 혐오감을 마냥 부추겼을 그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는 옹근 3년만인 2011년 9월19일자에 정정보도를 실었다. 물론 지면의 크기는 2면 하단의 1단으로 사회면 머리기사(2008년 8월2일자 11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정정보도에서 동아일보는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은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측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노조의 파업은 대부분 부분 파업이어서 회사 전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간결하게 썼다. 

이 신문이 정정보도를 낸 이유는 법원 판결 때문이다. 9월9일 서울고등법원은 “회사의 폐업을 노조의 잦은 파업 때문이라고 보도한 것은 허위로 봐야 한다”면서 정정보도와 위자료 500만원을 판결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다른 도리 없이 낸 짧은 정정에서 나는 그냥 지나칠 수없는 대목을 발견했다.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가 그것이다. 곧장 동아일보의 취재기자와 담당 데스크, 편집국장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한때는 그 신문사 앞에 ‘대’자가 붙었던 동아일보가 법원의 판결로 “사실이 밝혀졌다”고 써야 했는가?

괜스레 던지는 시비가 아니다. 보라. 법원은 판결문에서 “기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콜트악기 및 관련 회사들의 자산상황과 매출, 당기순이익 등 경영 상태에 대한 자료들만이라도 객관적으로 인용했더라면 이 기사에 나타난 오류는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문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다시 정색을 하며 묻는다. 항소심까지 기다려야 했는가? 판결문 앞에서 결국 ‘사실이 밝혀졌다’고 정정보도를 냈어야 옳았는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동아일보 기자들은 판결이 있고 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다. 나는 그 짧은 정정보도문에서 어떤 성찰도 읽혀지지 않는다. 사회면 머리기사로 콜트악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보도는 물론, 3년이 더 지나 ‘사실이 밝혀졌다’는 1단 크기 정정에서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자로서 양식의 문제다.

평기자비판 삼갔으나 ‘재생산’구조에…

언론인으로 10여년 넘게 칼럼을 써오며 알다시피 나는 평기자들에 대해 비판을 삼가왔다. 이유는 명백했다. 언론사 내부의 구조 때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실명으로 비판해온 주필과 논설주간들이 곰비임비 재생산되는 풍경을 보며 모든 것을 구조로 이해하고 넘어갔던 과거의 잘못을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노사관계에 대한 일방적 보도는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과연 그 모든 게 구조의 문제일까? 언론사 사주나 고위간부들이 그렇게 보도하라고 ‘지시’라도 했단 말인가? 

   
고등법원이 콜트악기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됐다는 판결을 내린지 2년이 지나도록 이 회사는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통상 3개월에서 1년을 넘기지 않는 대법원 판결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명토박아둔다. 항소심 판결 이전에 자신의 기사가 진실이 아니었음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기자로서 자질의 문제다. 알고도 항소심까지 버텼다면, 그것은 신문사 편집국 전체의 건강 문제다.

터무니없이 적은 위자료와 작은 정정보도 앞에서 나는 굳이 이름을 적시하고 싶지 않은 그 취재기자가 법원의 판결을 자신이 앞으로 걸어갈 ‘기자 인생’에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길, 자신의 보도에 서러움의 피눈물 쏟았을 사람들 앞에 자성의 눈물 머금길 진심으로 바란다. 세간에서 ‘조중동’으로 비판받는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 진지하게 한번쯤 자신의 글을 톺아보길 권하는 뜻에서 저 살천스런 지면의 제목을 다시 쓸쓸하게 옮긴다.

선물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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