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도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가라.” 우리 언론들이 입모아 합창하고 있다.

상업주의 언론이 언제나 보란듯이 내세우는 객관성·공정성·불편부당성 따위 허울좋은 간판조차 노사갈등을 보도하는 태도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정권과 자본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극심한 파당성이 지면을 도배한다. 상식도 도덕성도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한국통신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수구언론의 집단이기주의는 극에 달한다.

지난 6일 경찰의 명동성당및 조계사 진입과 농성노동자 연행을 놓고 한국 상업언론은 겉에서 보면 아주 타당한, 그러나 그 흐름은 희한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곧‘법 앞에 성역 없다’는 법적용의 평등논리를 내세워 경찰투입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시설이 범법자의 공개농성장이나 비호처가 되는 일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 고 본다”(중앙 7일자 사설), “종교의 신성 불가침이나 대화 타협에 의한 노사문제의 평화적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데 선택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한국 7일자 사설), “종교의 신성함과 마찬가지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 투입은 불가피했다”(동아 7일자 사설) 등의 논리를 편 것이다.

서울신문은 아예 사설 제목을 ‘공권력투입은 당연’이라고 뽑고 “공권력투입은 정당하고 불가피한 통치권행사”(7일자 사설)라며 정부 비호에 급급했다.

조선일보는 한 발자국 더나가 정부가 경찰투입을 너무 늦게 결정해 문제가 커졌다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간 정부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와 집행과정에서 다소의 우유부단과 무원칙한 일면들을 노출해왔다.”(조선 7일자 사설)

성소에 대한 경찰투입이 종교의 인도주위 정신에 반한다는 점은 논외로 치자. 그러나 ‘법의 평등한 적용’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한통 사용자측의 범법행위(노조와의 일방적인 대화거부 등)도 따졌어야 옳다.

상업주의 신문들은 여기에 일언반구의 논평도 가하지 않는다. 노조와 종교계가 공동 마련한 중재안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래서 어느쪽의 행동이 얼마만큼 잘못됐는지 차분히 풀어주지도 않는다. 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고 그래서 판을 깨야 한다는 논리만이 날뛴다.
이런 취약한 논리를 메워보려는 듯 정부와 상업언론은 곧바로 전가의 보도, ‘배후’를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미 7일자 사설에서 “이같은 노정대결구도는 애초부터 연대투쟁을 이끌어온 측의 기본전략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8일자 신문들은 거의가 검찰의 ‘배후세력’수사를 사회면 머리 혹은 사이드톱으로 실어 정부 의도를 대변해 주고 있다.

‘배후’가 모든것을 조종한다면 한통노조는 자존심도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노동단체의 강연·교육행위를 모두불법이라 한다면 이는 노동운동을 기초부터 부정하는 행태다. 민주주의 기본을 부정하는 이러한 ‘횡포’에 언론이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