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초부터 지방자치선거 운동기간이 시작되면서 대중매체가 일체 입을 다물어버려야 하는 중요한 정치정보가 있다. 그것은 통합선거법이 엄격하게 금지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매스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는 일본의 구공직선거법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그 자체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정치에 있어 선거와 같은 중요한 정치행사에서 기본적인 언론자유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1년 말에 개정된 구국회의원선거법은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선거인이 알도록 공표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여 후보자에 대한 여론 조사의 결과 공표는 물론 정당의 지지도까지 공표를 금하고 있었는데 통합선거법은 이 규정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대착오적이며 폐쇄적인 규정으로 자유세계 선거법에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선거 과정의 여론을 외면한다면 여론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정치는 제자리를 잡기 어렵다. 우리가 모델로 하는 일본 선거법의 경우 벌써 한 세대 이상 전인 1962년에 ‘백팔십도 바꾼’ 이래 선거 기간중 정당 지지도의 공표는 물론 유세 활동에 대한 각종 제한이 대폭 완화되어 현재는 후보에 가해지는 제한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진 형편이다.

일본 공직 선거법은 1962년과 1972년 대폭 개정돼 정당의 정치 광고에 대한 제한을 전부 폐지하여 신문이든 방송이든 정치 광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가 선거 기간 중 극히 제한된 건수에 한해 후보 비용부담의 정치광고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선거 기간중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에 대해서는 후보자 이름을 거명하는 인기도는 금하고 있지만 여론 조사의 결과를 이용한 해설·평론은 그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주요 신문과 NHK 등 방송은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선거 기간 중 정당 지지도, 내각 지지도, 수상 인기도와 같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여론 지표를 자유롭게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여론 지표의 공표로 인해 이른바 ‘밴드 웨곤’(최고 득표자를 더욱 부추기는 효과) 또는 ‘언더 독’(차점 득표자를 더욱 몰리게 하는 효과) 현상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도 발생할 수 있으나 이는 민주주의를 하는 모든 나라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오히려 정치 의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유권자의 경우 이러한 역기능은 대단치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민의 정치 참가 과정에서 여론의 흐름이 배제되는 것은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황폐화를 가져오게 한다.

한국편집인협회는 지난 92년 8월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한다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대해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헌법 소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헌법 재판소는 이같은 중요 사안에 대해 벌써 3년 이상 심의를 지연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있다. 헌법 기관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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