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하고 아름다운 결정

여론 지지율이 50%를 넘나들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지율 5〜10%를 보여주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그는 그 양보의 이유로서, 박원순 상임이사가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도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기 때문이라 밝혔다. 또한 자신의 서울시장 불출마와 관련해서도 “그 누구도 국민의 민심을 쉽게 얻을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이유로서 이보다 더 분명하고 진실된 말이 있을까? 그것은 여론 지지율에서 자신보다 크게 낮음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상임이사가 서울시장을 맡을 충분한 자격과 의지를 가졌기에 당연히 후보를 양보한다는, 어찌 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엄정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자신에 대한 높은 여론 지지율에 대해서조차 자신이 국민적 민심을 너무 쉽게 얻을 권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에 대한 이 얼마나 냉정하고 절제된 판단인가?

그뿐 아니라 안철수 원장은 다른 한 마디도 덧붙였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가 남긴 이 한 마디는 우리 시대의 아픔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젊은 세대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함께 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기득권 속에서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전망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변화 열망을 그는 회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철수 원장과 그 주변의 행보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이 같은 결정 이전의 며칠 동안, 높은 지지율 속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했던 그와 그 주변의 행보는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환호를,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와 그 주변에 대한 하나의 우려는, 우선 젊은층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그가 그 대중적 인기만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그 귀감은 한순간에 정치 진입의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정직한 사람들이 너무나 필요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너도나도 정치에 투신한다면-손석희씨의 말처럼-정작 자신의 영역에서 “소를 키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6일 오후 4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원장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퇴장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우리가 그와 그 주변의 행보를 우려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선의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개혁진보진영의 후보와 표를 나눠가짐으로써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또한 그가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할지라도 그러한 경향이 정당정치의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안철수 원장의 이번 결정은 이 모든 우려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언젠가 그가 또 다른 모습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그가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졌으면 한다. 하나는 반(反)정치나 탈(脫)정치의 인기로 정치권에 진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상적인 정치 입문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높은 공직의 수행을 위해서는 적어도 다년간의 정치생활을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기성 정치권

안철수 원장의 결정과 관련하여 반드시 살펴봐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그가 기성 정치권에 미친 충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만들었던 그의 서울시장 출마 논란은 기성의 정치권을 크게 동요시켰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그야말로 ‘안철수 현상’이라 지칭할만하다.

물론 ‘안철수 현상’의 충격으로 기성의 정치권이 크게 동요했다 해서 그것이 정치권의 총체적인 위기를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 정치가 제반 사회문제 해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따라서 정치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만성적 정치 위기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들어 우리 정치는 지역주의 정치를 넘어 생활정치 또는 복지정치로의 변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현상’이 기성 정치권에 미친 충격은 매우 크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은 기성의 정치가 시민, 특히 불안한 미래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는 젊은층과의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과 박경철 원장이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통해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때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했을 때, 과연 기성 정치권은 무엇을 했나?

그런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시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능력이 부족한 기성 정치권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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